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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개발 경제 일반상식

1일 1페이지, 세상에서 가장 짧은 교양 수업 365 5

by 비사벌 2024. 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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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미켈란젤로

미켈란젤로 디 로도비코 부오나로티 시모니(이탈리아어: Michelangelo di Lodovico Buonarroti
Simoni,
1475년 3월 6일 ~ 1564년 2월 18일)는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의 대표적 조각가, 건축가, 화가, 그 리고 시인이었다.
미켈란젤로는 유년 시절부터
조토마사치오의 작품들을 습작하며 그림에 많은 관심을 쏟아 집안에서 자 주 꾸중을 들었다. 계몽사에서 출판한 《미켈란젤로》(이효성 지음, 최주훈 그림)에 의하면 , 소년 미켈란젤 로의 재능을 알아본 메디치 가에서 아버지를 설득한 덕분에 미켈란젤로는 미술공부를 할 수 있었고, 13세 때 화가 도메니코에게서 그림을 배웠다.14세때부터 메디치 가문의 보호를 받으며 베르트르드 디 조반니를 통하 여 도나텔로 작풍을 배웠다.[1] 또한 성 베드로 대성전의 돔, 성 베드로 대성전의 피에타, 팔레스티나의 피에 타, 론다니니의 피에타 등 세 조상을 미완성으로 남긴 채 89세를 일기로, 외롭고 괴로운 긴 생애를 로마에서 마쳤다
1501년 피렌체로 돌아와, 시청의 위탁으로
다비드를 즉 소년 다윗 조각을 3년에 걸쳐 완성하였다. 계속하여 원형 부조인 성 모자를 만들고, 원형화 성 가족을 그렸다. 1504년 피렌체 시청의 위촉으로 대회장의 벽화 카 시나 수중 접전도를 그리게 되었는데, 맞은편 벽에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앙기아리 기마 접전도를 그렸으 므로 경쟁을 하게 되었다.
1505년에 미켈란젤로는 새로 임명된 교황 율리오 2세의 초대로 로마로 들어왔다. 그는 교황의 묘를 짓는 일 에 위촉되었고, 40개의 조각을 만들어야하는 방대한 양의 작업이 었기 때문에 미켈란젤로에게는 평생의 부 담으로 남았다. 교황의 후원받긴했지만, 미켈란젤로는 이 작업 외에도 수많은 다른 작업들이 있었기에 무덤 을 완공하는데 끊임없는 방해를 받았다. 40년동안 묘 짓는 작업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만족스럽게 끝내지 못했다. 묘는 로마에 있는 산 피에트로 인 빈콜리 성당에 위치하며 중앙에 놓인 1516년에 완공한 '모세' 동상 으로 가장 유명하다. 묘를 위해 만든 조각상 중에서, '반항하는 노예'와 '죽어가는 노예'로 알려진 2개의 조각 은 루브르 박물관에 현재 보관되고 있다.

같은 기간에, 미켈란젤로는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을 4년에 걸쳐 작업하였다 (1508~1512).콘디비 설명에 의 하면, 브라만테가 산피에트로 대성당을 작업하고 있었는데, 미켈란젤로가 교황의 묘 공사에 위촉되었다는 사 실에 분개하다가 교황을 설득해서 미켈란젤로가 실패하도록 그에게 생소한 과제를 주었다고 한다.

미켈란젤로는 원래 천장을 지탱해주는 삼각 궁륭에 열두 제자를 그리고 천장 중앙에 장식으로 처리하라는 위촉을 받았다. 미켈란젤로는 율리오를 설득해 재량권을 얻고, 천지창조/인류의 타락/예언자를 통한 구원의 약속/그리스도의 계보 등 다양한 그리고 더 정교한 작품을 제시했다. 이 작업은 가톨릭 성당의 대부분의 교 리를 표현하는 그림의 일부이다.

작품은 500 평방미터의 천장전체를 아우르며, 300명 이상의 인물을 포함하고 있다. 천장 한가운데는 창세기 에 나오는 9개의 이야기로 구성되어있고, 3개의 부분으로 나뉜다: 하나님의 지구창조; 하느님의 인간창조와 하느님 은혜 밖으로 추락한 인간, 마지막으로 노아와 그의 가족이 보여주는 인간의 상태. 천장을 지탱하는 삼 각 궁륭에는 예수님의 오심을 예언하는 12명의 인간이 그려져있다; 이스라엘 예언자 7명과 고전세계에 나오 는 5명의 무녀. 천정벽화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은 아담의 창조, 에덴동산의 아담과 이브, 노아의 홍수, 예언 자 예레미아, 그리고 쿠메의 시뷜라이다

1508년 교황 율리오 2세미켈란젤로에게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을 그림으로 장식할 것을 명한다. 미켈란젤 로는 4년 동안 발판 위에 누워서 작업을 하는 경직된 자세로 일해야 하였고, 이로 인해 관절염근육 경련을 얻었다.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감안료로 인해 눈병도 생겼다. 1512년 마침내 작품을 완성하였다. 교회를 화려 하게 수놓은 천정벽화에는 복음서에서 언급한 그리스도의 선조로 시작하여 천지창조 이야기 등 구약 성서 의 네 가지 사건이 그려져 있다.

102. 정전기

정전기(靜電氣, Static electricity)는 정지되어있는 전하에 의해 일어나는 물리적 현상이다.
정전기는 물체(주로
유전체)에 전하가 축적되어있는(대전된) 상태지만, 축적되어있는 전하 자체를 지칭하는 경우도 있다. 전하는 항상 전기장에 의한 효과와 자기장에 의한 효과를 가지지만, 정전기는 전기장에 의한 효 과가 클 경우다. 오래전에 발견되어, 기원전 600년경에는 탈레스에 의한 마찰전기에 대한 기술이 존재하고 있다. 전지전자기유도가 발견되기 전까지 전기라고 하면 정전기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반대어로 동전기 가 있지만, 보통의 전기가 곧 동전기이므로 별로 사용되지는 않는다. 흔히 마찰에 의해 대전된 전하를 정전기 라고 부르는데, 본래는 마찰전기도 정전기 현상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압전효과도 정전기에 포 함된다. 번개구름에 축적되어있던 정전기에 의해 발생하는 방전현상이다. 일상생활에서 정전기에 의한 방 전을 접할 때 정전기가 발생했다고 하는데, 이것은 정전기에 의해 불꽃 방전이 일어났다고 하는 것이 보다 정 확하다. 정전기는 방전이 일어나기 전에 마찰 등으로 생긴 물체에 축적되어있던 전하를 말하기 때문이다. 가장 익숙한 종류의 정전기는 두 종류의 유전체의 마찰에 의해 발생한다. 유전체를 서로 마찰할 때 발생하는 정전기의 부호는 물체의 조합에 의해 결정된다. 조합하여 양전하를 띠는 물체는 오른쪽에, 음전하를 띠는 물 체는 왼쪽에 가도록 나열하면 유전체를 일직선상에 나란히 나열할 수 있으며, 이 배열을 대전열이라고 한다. 대전의 극성은 대전열에서 서로 멀리 떨어진 물체와 조합될수록 높아진다.

 

103. 헨델의 메시아

《메시아(Messiah)》는 조지 프레드릭 헨델이 작곡한 오라토리오이다. 그의 작품 중 가장 많이 알려진 곡 이다. 복음서이사야서, 시편을 바탕으로 그리스도의 탄생과 삶, 수난을 담았다. 작품번호는 HWV.56 인 생에 광명을 주는 음악이다.

전체 곡중에서 '주의 영광'’깨끗게 하시리라’’한 아기 우리를 위해 나셨네’’문들아 머리들라’와 '할렐루야'가 가장 유명하다.

이 곡은 원래 교회가 아닌 일반 극장에서 사순주간에 초연되었으나, 헨델이 가고 난 후에는, 보통 성탄을 기 다리는 기간인대림절에 연주된다. 메시아는 교회나 공연장에서 연주된다. 성탄절에 연주될 경우에는 3부 중 탄생을 담은 1부만이 연주되기도 하며, 할렐루야 합창이나 아멘 코러스등을 덧붙인다. 나머지 부분은 부 활절에 연주되기도 한다.

이 곡은 예수의 생애에 따라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는 대림절과 성탄절에 대한 이야기이다. 제2부는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 승천, 그리고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3부는 요한계시 록에 있는 내용을 주된 바탕으로 한다. 메시아는 신약성경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구약성경에서 예수를 묘사하고 예언한 성경인 이사야서, 학개서, 말라기서 등의 구절도 많이 등장한다.

소프라노 아리아 ""I know that my Redeemer liveth"는 기독교인의 장례식에 쓰이기도 한다. 헨델의 웨스 트민스터 수도원 묘비(1762)에는 이 아리아가 새겨져 있다.

104. 르네 데카르트

르네 데카르트(프랑스어: RenDescartes [ʁəne dekaʁt][*], 라틴어: Renatus Cartesius 레나투스 카르테시 우스[*], 1596년 3월 31일 - 1650년 2월 11일)는 프랑스물리학자, 근대 철학의 아버지, 해석기하학의 창 시자로 불린다. 그는 합리론의 대표주자이며 본인의 대표 저서 《방법서설》에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 한다.(Cogito ergo sum)’는 계몽사상의 '자율적이고 합리적인 주체'의 근본 원리를 처음으로 확립한 것으로 유명하다. 1606년 예수회가 운영하는 라 플레쉬 콜레주(Collge la Flche)에 입학하여 1614년까지 8년간에 걸쳐 철저한 중세식 그리고 인본주의 교육을 받게 된다. 1626년부터 2년 동안 수학과 굴절광학을 연구하며 미완성 논문 <정신지도의 규칙>을 썼다. 1628년 말, 네덜란드로 돌아온 그는 다시 저술 활동에 몰두해 《세 계론》(Traite du monde)을 프랑스어로 출판한다. 1637년에는 《방법서설》에 굴절광학, 기상학, 기하학의 세 가지 부분을 덧붙여 익명을 출판했다가 후에 프랑스어로 《방법서설》을 완성한다. 1644년 신플라톤주 의스토아주의를 계승, 자신의 철학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라틴어로 《철학 원리》를 출판한다. 그 후 그 는 여러 사람과 편지로 자기 생각을 전하곤 했는데, 보헤미아의 왕 프리드리히의 딸 팔츠의 엘리자베스에게 최고선에 관한 자기 생각들을 편지로 보낸 것들이 모여 1649년 출판된 그의 마지막 책, 《정념론》(Les passions de l'ame)이 된다. 1650년 2월 11일, 그는 폐렴에 걸려 5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르네 데카르트는 근세사상의 기본 틀을 처음으로 확립함으로써 근세철학의 시조로 일컬어진다. 그는 이원론 을 주장하였는데, 이는 과학적 자연관과 정신의 형이상학을 연결지어 세상을 몰가치적이고 합리적으로 보는 태도와 정신의 내면성을 강조하였다. 대륙철학의 합리주의의 근본이 된 그의 회의론은 다양한 해석으로 받 아들여지고 있다.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의심이 가능한 모든 믿음을 제외함으로써 기본적인 신념만을 남기 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수학을 이러한 의심의 여지가 없는 기본 신념으로 여겨 철학을 포함 한 모든 진리를 수학적인 원리로 해석하기 위해 노력했다. 또한 그는 철학 뿐만 아니라 수학, 과학적인 업적 도 이룩하였다. 1625년부터 파리에 거주하며 광학을 연구한 끝에 빛의 굴절의 법칙을 발견하였다. 1637년 《방법서설》 및 이를 서론으로 하는 《굴절광학》, 《기상학》, 《기하학》의 세 시론을 출간하였다. 수학 자로서의 그는 직교 좌표계를 만들어 해석기하학의 창시자로 알려졌으며 방정식의 미지수에 최초로 를 사용 했다. 그 뿐 아니라 그는 거듭제곱을 표현하기 위한 지수의 사용 등을 발명했다. 데카르트는 다양한 여러 상 황에서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인 수학을 만든 혁명적인 수학자이며 동시에 고대 그리스 과학을 모두 집대성 한 철학자이자 과학자이다. 그의 보편적인 수학은 본인이 예견했듯이 광학, 천문학, 기상학, 음향학, 화학, 건 축학, 물리학, 회계 등에 다양하게 응용되었으며 본인이 미처 예견하지 못했던 분야인 전기학, 인공두뇌학, 미생물학, 유전학, 경제학 등에도 응용되고 있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말로 자신의 존재를 입증하며 이 절대적인 진리를 이용해 구성요소의 진리값을 이용한 다른 진술을 증명하는 법을 개발 했다. 그는 과학을 대하는 데에 있어 크기, 모양, 운동 등의 경험적인 양에 집중하고자 했다. 아리스토텔레스 의 "자연은 진공을 싫어한다."는 이론에 따라 진공의 개념을 받아들이지는 않았으나 세 가지 물질의 연장이 곧 공간을 이루고 있다고 설명했다. 르네 데카르트의 글과 방법론을 곁들인 데카르트적 회의는 서양철학의 특징적인 방법 중의 하나가 되었다. 데카르트의 철학에 관한 부분은 뒤에서 다루기로 한다.

1649년 2월, 스웨덴의 여왕 크리스티나는 데카르트를 스웨덴 황궁으로 초대했다. “크리스티나는 학문에 대 한 열정과 해박한 지식을 지녔다. 그녀는 여왕으로서 위대한 학자의 시간을 뺏을 권한을 지니고 있었다. 데 카르트는 그녀에게 사랑에 관한 글을 써서 바쳤는데, 이것은 그때까지 그가 무시해왔던 제목이었다.” 여왕은 일주일에 세 번 그에게서 철학 강의를 들었는데 반드시 새벽 5시에 강의하도록 명했다. 데카르트는 그동안 아침에 늦게 일어나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지만 여왕의 명에 따라 일주일에 3일은 한밤중에 일어나서 스웨덴 의 찬 공기를 가르며 자신의 숙소에서 여왕의 서재로 찾아가야 했다. 1650년 2월 1일, 새벽 찬 바람을 맞은 데카르트는 감기에 걸렸고, 곧바로 폐렴으로 악화되었다. 데카르트는 1650년 2월 11일 스톡홀름에서 세상 을 떠났다. 그의 유골은 1667년파리에 돌아왔고 주느비에브 뒤몽 성당에 안치되었다. 1799년 프랑스 정 부는 그의 유해를 프랑스 역사관으로 옮겨 프랑스 역사상 위대한 인물들과 함께 모셨다. 1819년 이후 그의 유골은 다시 생 제르맹 데프레 성당에 안치되었다. 그의 묘비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다. “데카르트, 유럽 르 네상스 이후 인류를 위해 처음으로 이성권리를 쟁취하고 확보한 사람이다.”

105. 예수 그리스도

예수(히브리어: ישוע, 아랍어: يسوع/عيسى, 기원전 1세기 말 ~ 기원후 30년 / 33년 추정) 또는 나사렛 예 수는 기원후 1세기에 활동한 유대인 설교자이자 종교 지도자이고, 기독교의 중심 인물이자 유일신이다. 자 신의 제자들이 33년 이후에 저술한 신약성경에 수록된 문서에서 고대 사회에서 을 부르는 호칭이었던 '의 아들'이라고 말하며 제사장, 바리새파, 서기관 등 당시 권위있는 자와 다른 가르침과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어떤 기적의 사건으로 말미암아 과부, 고아, 병든 사람 등 소외 계층을 중심으로 대중적인 존경을 한 몸 에 받았으나 이에 위협을 느낀 권세가들이 유대인을 선동하여 '자칭 유대인의 왕'(고대 이스라엘에서 자신들 을 구원으로서 메시아를 갈망)이라는 죄목으로 십자가형에 처해졌다. 예수의 죽음 이후 사도들을 중심 으로 만들어진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은 예수가 구약성경에서 말하는 메시아라고 하면서 인류의 죄를 구원하 기 위해 사람의 몸으로 태어난 유일신의 아들이자 살아있는 유일신 그 자체로 믿으며 예수 그리스도라고 부 른다.

오늘날 고대학자들은 예수에 대해 예수의 역사적 실존을 인정하는 부분과 이에 대립하여 예수가 신화적인 존재라는 신화적 예수론으로 나뉜다. 역사적 예수 탐구 과정에서 복음서의 역사적 신뢰성과 성경에 묘사된 예수가 역사적 예수를 반영하는 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예수는 갈릴리 유대인으로, 선지자 요한으 로부터 침례를 받고 자신만의 공생애를 시작했다. 예수는 구전 복음을 했고, "랍비"라고 자주 불렸다. 예수는 신을 가장 잘 따르는 것에 대해 동료 유대인들과 토론했고, 비화를 가르쳤으며, 지지자들을 모았다. 예수는 산 헤드린에 체포되어 재판을 받았고, 로마 정부에 인도되어 유대인 군중이 거세게 압박하는 가운데 유대 총

폰티우스 필라투스의 명령으로 십자가형을 당했다. 예수의 죽음 이후, 예수의 지지자들은 예수가 죽음에 서 부활했다고 믿었고, 지지자들이 형성한 공동체는 초기 기독교가 되었다.

기독교는 "예수는 성자이며, 처녀였던 마리아의 아들이고, 기적을 행하며, 교회를 창립하고, 기독교의 구원 하고 인간을 속죄하기 위해 십자가형을 받고 죽은 가운데서 부활한 이후 가르침을 믿으며 천국으로 간 이후 언젠가 재림할 것"이라는 것을 교리로 삼고 있다. 대부분의 기독교인은 예수가 신으로부터 사람들을 구원하 는 존재라고 믿는다. 니케아 신경은 예수가 삶과 죽음을 판단한다고 단언하고 있다. 기독교인은 예수를 으 로 숭배하며, 삼위일체 중 제2위인 성자로 보고 있다.(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 몰몬는 삼위 삼체로 인 정하고 있다) 예수가 태어난 것으로 알려진 12월 25일기독교 문화권을 중심으로 크리스마스로 기념되고 있으며, 예수의 희생은 성금요일로, 예수의 부활은 부활절로 기린다. 오늘날 세계 각국이 공통적으로 사용하 는 연호서력기원은 라틴어 "Anno Domini"에서 유래되어 예수가 태어난 해로 추정되는 시점을 기원으로 하며, 예수가 태어나기 이전은 기원 전(Before Christ) BC라고 한다. 임시정부가 수립된 1919년을 기원으로 삼다가 단기로 바꿨던 대한민국1962년 1월 1일부터 서력기원을 사용하고 있다.

예수는 기독교 이외의 종교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슬람교 속 예수이사 이븐 마리암이라는 이름으로 불 리고 있으며, 신의 중요한 예언자이자 메시아로 여겨진다. 무슬림도 예수가 처녀로부터 태어났다고 보지만 신이나 신의 아들로 여기지는 않는다. 쿠란에서는 예수가 신성하다고 주장한 적이 없음을 기록했다. 대부분 의 무슬림들은 예수가 십자가형을 당했다는 것을 믿지 않지만, 예수의 육체가 신에 의해 천국으로 올라갔다 고 믿는다. 대조적으로 유대교에서는 예수가 유대인들이 기다리던 메시아라는 믿음을 거부하며 메시아의 조 건을 충족하지 못했고, 신성함이나 부활 또한 믿지 않는다.

106. 스페인 종교재판

성스러운 심판의 재판소(스페인어: Tribunal del Santo Oficio de la Inquisicin), 간단히 스페인 종교재판 (스페인어: Inquisicin espaola)은 1478년부터 스페인 왕국에서 있었던 종교재판이다. 아라곤 왕국페 르난도 2세카스티야 왕국이사벨 1세가 결혼함으로써 하나의 왕국이 된 스페인은 교황 식스토 4세에 게 청원하여 독자적인 종교재판을 열 수 있는 권리를 획득하여 스페인 종교재판을 시작하였다. 1834년 이사 벨 2세에 의해 중지되었다.

스페인 종교재판에 의해 희생된 사람은 적게 잡아도 30만명 이상으로 이 기록에 따르면 31,912 명이 산채로 불에 태워지는 형벌을 받았다. 한편, 희생자의 수를 가장 크게 잡은 기록은 사형이나 고문 등으로 죽은 사람 의 수를 2백만명 정도로 보고 있다.

 

107. 신곡

《신곡》(神曲, La Divina Commedia)은 저승 세계 여행을 주제로 한 13세기 이탈리아의 작가 단테 알리기 에리1308년부터 죽은 해인 1321년 사이 쓴 대표 서사시이다.

신곡은 이탈리아 문학의 중심 서사시이자 중세 문학의 위대한 작품으로 손꼽힌다. 저자와 같은 이름의 여행 자 단테는 베르길리우스, 베아트리체, 베르나르두스의 안내를 따라 지옥-연옥-천국으로 여행한다. 단테는 그 곳에서 수백 명의 신화상 혹은 역사상의 인물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기독교 신앙에 바탕을 둔 와 벌, 기다림과 구원에 관해 철학적, 윤리적 고찰을 할 뿐만 아니라 중세 시대신학천문학적 세계관을 광 범위하게 전하고 있다.

《신곡》은 중세에 쓰였음에도 이탈리아 문학의 꽃으로 손꼽히며, 사후에 대한 중세적인 세계관을 보여준 최정점에 있는 이 작품은 특히 상류층 언어인 라틴어가 아닌 토스카나 방언으로 적혀 이탈리아어의 생성과 발전이 있기까지 적지않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토스카나 방언으로 적혔다는 것은 누구나가 이해할 수 있고, 누구의 마음 속에나 쉽게 받아들일 수 있고, 게 다가 천박함을 저어하는 세심한 배려가 기울어져 있다는 뜻이다.[1] 그러나 이슬람교의 창시자 무함마드가 지옥에 떨어진다든지 예수 이전에 태어난 사람은 기독교인이 아니므로 훌륭한 사람이더라도(플라톤, 호메 로스 등) 천국에 가지 못한다는 등, 그 시대의 가톨릭 신앙에 근거한 세계관을 반영하고 있어 한계를 보인다 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오늘날 세계 문학에서 쓰이고 알려진 서사시 제목 La Divina Commedia (한국에서는 한자어로 神曲:신곡) 는 단테가 붙인 게 아니라 보카치오가 쓴 단테의 생애에서 'Divina(성스러운)'라는 감탄적 칭찬에서 1555년 에 로도비코 돌체(Lodovico Dolce)라는 출판업자가 책을 새로 내면서 붙인 제목이다. 원래는 단테가 쓴 제 목은 Commedia('희극')다.

이 작품이 한국에 들어왔을 때 일본에서 번역한 제목을 그대로 썼으므로 한국에서 '신곡'이라는 제목을 사용 하고 있다.

단테 자신은 서사시를 Commedia(희극)라고 제목을 붙였는데,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희극은 어떤 추한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반면, 그 내용면에서 즐겁게 끝을 맺는다.
(libri titulus est ... comedia vero incohat asperitatem alicuius rei, sed eius materia prospere terminatur) 이 간락한 설명은 <신곡>의 구성에서 쉽게 이해될 수 있다. 다시 말해 독자는 서사시에서 먼저 지옥으로 여 행을 하게 되며, 천국에서 여로를 풀게 된다.

신곡은 지옥(이탈리아어: Inferno), 연옥(이탈리아어: Purgatorio), 천국(이탈리아어: Paradiso) 이렇게 세 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 편은 서른세 절로 이루어져 있으며 신곡의 맨 앞부분에 이 시를 소개하는 절이 하 나 있다. 신곡은 이렇게 모두 100개의 절로 이루어져 있다.

지옥

"지옥"은 지표에서부터 불타올라 지구의 중심에까지 이르는 지하의 심연이다. 늪이나 호수에서는 악취와 증기가 피어오르며, 얼음처럼 차가운 바람, 열풍, 쏟아지는 비와 우박으로 하늘은 잠시도 조용하지 않았다. 미식가들도 더러운 것들을 마구 먹어야만 하며, 낭비가들과 탐욕가들도 결코 재산을 손에 넣지 못한다.

증오심에 불타는 사람들이 서로 뒤엉켜 싸우고,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들이 쉴새없이 피가 흐르는 강 속으 로 빠지고, 뜨거운 사막 위를 걸어야 하는 동성연애자들의 머리에 불이 쏟아진다고 묘사한 지옥에서 단테 와 베르길리우스는 잠시 걸음을 멈추게 된다. 또한 그의 인생을 괴로움 속에 빠뜨렸던 위선적인 피렌체 시 민, 그의 재산을 약탈한 사기꾼들과 탐욕스러운 횡령꾼들이 펄펄 끓는 기름 가마 속을 떠다니는 광경을 보 게 된다.

나락의 밑바닥인 대지의 중심에 악마 중의 악마인 루시퍼(Lucifer)가 거대한 얼음 속에 갇혀 날개를 퍼득이 고 있었다. 그 험상궂은 얼굴은 세 조각으로 갈라져 있었고, 일그러진 뺨 위로 피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세 갈래로 갈라진 턱에는 각기 악의 전형들이 물려져 있으며, 그들은 곧 숨이 끊어질 듯이 헐떡이고 있었다.

루시퍼브루투스, 카시우스, 유다라는 배신자의 전형인 세 사람을 줄곧 물어뜯고 있었다.

이야기 속에서 교황 첼레스티노 5세, 교황 보니파시오 8세, 교황 니콜라오 3세, 교황 요한 22세, 교황 클레 멘스 5세 등의 당대의 부패하고 무능한 교황들을 비판하고 있으며 귀도 다 몬테펠트로, 보카 델리 아바 티, 베네디코 카치 아메네코, 에르콜라노 마코니, 쟈코모 다 산토 안드레아 등 당대의 정적들을 지옥에 등 장시켜 복수하고 있으며 오타비아노 델리 우발디니, 브란카 도리아, 본투로 다티 등 이전 시대의 인물들도 비판하고 있다.

지옥의 구조는 다음과 같으며 역피라미드의 원추형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지옥의 문 - - 단테는 1300년 3월 25일 목요일 밤, 길을 걷다가 인간의 '악'을 상징하는 동물들에게 위협을 당한다. 이 때 베르길리우스가 그를 구해주고, 성모 마리아의 명으로 그를 지옥으로 인도해 주는 길잡이가 될 것을 자처한다. 이후 단테는 베르길리우스를 따라 지옥으로 내려가고, 그 곳에서 ' 지옥의 문'을 보게 된다. 지옥의 문에 새겨져 있는 글귀는 다음과 같다.

"슬픔의 나라로 가고자 하는 자, 나를 거쳐가거라.
영원한 가책을 만나고자 하는 자, 나를 거쳐가거라.
파멸한 사람들에게 끼이고자 하는 자, 나를 거쳐가거라. 정의는 지존하신 주를 움직여
성스러운 힘, 최고의 지혜, 그리고
태초의 사랑으로 나를 만들었노라.
내 앞에 창조된 것이란
오직 무궁(
無窮)이 있을 뿐, 나는 영원으로 이어지는 것이니라. 나를 거쳐가려는 자는 모든 희망을 버릴지어다."

지옥의 문 아래를 지난 단테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아케론 강가에 당도하게 된다. 그 곳에서 단테는 영 혼들을 지옥으로 실어나르는 뱃사공 카론을 보게 되는데, 이 때 카론은 단테가 육신을 가진(살아있는) 사람 임을 알아보고 다른 곳을 통해 가라며 밀쳐낸다. 강가 주변에는 살아있을 적에 선과 악 사이에서 기회만을 노리며 살았던 기회주의자들이 몰려있다. 그들은 말벌과 같은 해충들에게 시달리며 깃발 뒤를 영원히 쫒아 다니는 형벌을 받고 있다. 단테는 이들 중 '비겁한 나머지 엄청난 사퇴를 한 사람'이 섞여 있었다고 썼는데, 당대의 상황을 고려하였을 때 그는 교황 첼레스티노 5세라고 한다. 다만 다른 해석들도 숱하게 존재하여, 말년에 갑작스러운 퇴위를 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라든지, 예수에 대한 재판을 미루었던 본디오 빌라도 라는 설도 있다. 참고로 첼레스티노 5세는 5개월만에 직무를 포기하고 교황직을 후임인 보니파시오 8세에 게 넘겨주었다.

  • 제1층 림보(변옥)(Limbo) - 예수가 태어나기 전에 살았던 고대인이나 아기 등 세례는 받지 않았지 만 선하게 살아왔던 자가 가는 곳으로, 어떠한 형벌도 받지 않으나 대신 신을 볼 수 없다. 이렇기에 그들은 늘 탄식과 안타까움 속에서 살아가며, 언제나 구원을 받고 싶어한다. 이 곳에는 고대 그리 스의 철학자들이 모여있으며, 풀밭이 펼쳐져 있는 평화로운 구역으로 묘사된다. 이들 중 가장 생전 의 업적이 위대했던 자들은 일곱 겹의 성벽이 둘러싸인 성에서 살아가고 있다. 본디 아담모세 와 같은 구약성경 이전의 사람들도 이 곳에 있었는데, 이들은 예수가 승천하며 함께 림보에서 빼내 천국으로 데려갔다고 한다. 이 곳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리스와 로마의 위대한 철학자들로, 아 리스토텔레스, 플라톤, 소크라테스, 디오게네스, 아낙사고라스, 데모크리토스, 탈레스, 엠페도클레 스, 헤라클레이토스, 제논, 디오스코리데스, 오르페우스, 유클리드, 프톨레마이오스, 히포크라테스, 리노스, 키케로, 세네카, 갈레노스, 엘렉트라, 카밀라, 펜테실레이아, 라티누스 왕과 라비니아 공주, 유니우스 브루투스, 루크레티아, 율리아, 마르차, 코르넬리아, 율리우스 카이사르, 살라흐 앗 딘, 이 븐 루시드, 이븐 시나 등. 그 외에도 아이네이아스, 헥토르 등의 트로이 전쟁에서 싸웠던 인물들, 위 대한 다섯 시인 중 4명(호메로스, 호라티우스, 오비디우스, 루카누스) 등이 이 곳에 살고 있다. 이 곳을 지나면 그리스의 왕이었던 미노스의 심판을 받게 되는 영혼들, 즉 정말로 고통스러운 형벌을 받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단테는 미노스를 사악한 악마로 묘사했으며, 미노스는 자신의 꼬리로 영혼을 감아, 영혼은 그 감은 횟수대로 그에 해당하는 지옥으로 떨어지게 한다.
  • 제2층'색욕지옥'-색욕에빠져간통을저지른자들이가는곳으로,시도때도없이폭풍에흽쓸려 바람결에 날려 다녀야 한다. 이 중에서는 프란체스카 다 리미니와 파올로 말라테스타도 포함되어 있다. 이들은 서로 이루어질 수 없는 사이였음에도 불구하고 불륜을 저질렀고, 그에 따른 합당한 벌을 받고 있다. 단테는 이들을 향한 동정어린 태도를 보여준다. 그들 외에 이 곳에 있는 자들은 세 미라미스, 디도, 클레오파트라, 헬레나, 파리스, 아킬레우스, 트리스탄 등이 있다.
  • 제3층'폭식지옥'-폭음폭식에빠져욕망을주체하지못한자들이가는곳으로,이곳에서는죄인 들이 더러운 비와 우박을 맞으며 흙탕물에 누워 신음하고 있으며 악마견 케르베로스가 시도때도 없이 죄인들을 물어뜯으며 살아가고 있다. 이 곳에 있는 자들은 '치아코'라고 불리는 피렌체 출신 의 남자와 교황 보니파시오 8세 등이 있다.
  • 제4층'탐욕지옥'-이기적이고탐욕스러운자가가는곳이다.이곳으로내려갈때단테는재화의 신이었던 플루토를 만나게 된다. 플루토는 '파페 사탄, 파페 사탄 알레페'라고 외치며 단테의 앞을 가로막지만, 베르길리우스의 호통에 물러난다. 생전에 재물에 집착하여 인색하게 살았던 사람들 과, 낭비벽이 심하여 돈을 써댔던 사람들이 이 곳으로 오게 된다. 자신들이 모았던 커다란 돈주머 니를 굴리는 형벌을 영원히 받는다. 이 곳의 영혼들은 인색하게 살았던 자들과 낭비를 하며 살았던 자들, 이 두 무리로 나뉘어 서로 다른 방향으로 돈주머니를 굴리는데, 굴리다가 서로를 만나게 되 면 서로를 욕하고 저주하며 서로의 죄를 탓한다.
  • 제5층'분노지옥'-분노의감정을억제하지못하고죄를저지른자들이가는곳인데,그리스신화 에 나오는 스틱스 강이 주변을 두르고 있으며 중심부에는 악마의 도시 '디스'의 성벽이 있다. 이 곳 에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을 불태운 플레기아스, 단테의 정적이었던 필리포 아르젠티 등이 등장한다. 본디 단테 일행이 이 곳을 지나 제 6층으로 들어가려 할 때 악마들이 문을 걸어 잠그고 그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지만, 천사의 도움을 받아 들어갈 수 있게 된다.
  • 제6층'이단지옥'혹은'디스시'-신을믿지않고다른사상이나신을믿었던이단자들이가는곳 으로, 이 곳의 죄인들은 뜨거운 관 속에 갇혀 그 열기에 신음하고 있다. 최후의 심판이 닥쳤을 때, 그나마 열려있던 관 뚜껑조차 닫히게 되고 영원한 고통에 시달릴 것이라 한다. 죄악의 정도에 따라 열의 세기가 심해진다. 이중에는 영혼도 원자와 함께 분해되어 없어진다고 믿었던 그리스 철학
  • 에피쿠로스도 포함되어 있다. 그 외에도 교황의 적이었던 프리드리히 2세, 동로마 제국의 황 제 아나타시우스 1세 등이 이 곳에서 불타고 있다고 한다. 이 곳에서 7층으로 내려가는 길에 괴 물 미노타우르스가 가로막고 있으나, 이 또한 플루토와 같이 베르길리우스의 일갈에 물러난다.
  • 제7층'폭력지옥'-폭력을휘두른자들이이곳으로떨어져형벌을받는다.이들은타인에게해를 끼친 자, 자신에게 해를 끼친 자, 신과 자연에게 해를 끼친 자로 나뉘어 고통받고 있다.이 중 '자신 에게 해를 끼친 자'는 자살한 사람을 일컫는 말로, 당시 중세 사회에서는 자살을 크나큰 범죄로 취 급하였다.
  • 제1원 플레게톤 강 - 타인에게 폭력을 가한 자들이 있는 곳인데, 주로 고대의 독재자들과 폭군들이 이 곳에서 신음한다. 죄인들은 끓고 있는 피의 강에서 고통받고 있으며, 죄악의 정 도에 따라 다른 깊이에 잠겨진다. 강에서 빠져나오려 하는 자들은 켄타우로스가 화살로 쏘 아 맞춘다. 이 곳에 있는 자들로는 알렉산드로스 대왕, 시라쿠사의 참주였던 디오니시우스 1세, 훈 족의 아틸라, 피로스 1세, 로마 시대의 해적이었던 섹스투스 폼페이우스 등이 있다. 이 곳에서는 헤라클레스의 스승이자 켄타우로스인 케이론도 함께 등장하는데, 다른 켄타우 로스와는 다르게 나름대로의 지능과 위엄을 갖춘 이로 묘사된다.
  • 제2원 자살자의 숲 - 자신에게 폭력을 가한 자들(자살자들과 재산 탕진자들)이 가는 곳으 로, 자신의 육신을 저버린 죄로 움직일 수 없는 나무가 되어 고통받고 있다. 때때로 괴물 새 인 하르피이아가 그들을 찾아와 쪼면서 고통을 주며, 이들은 스스로 육신을 포기한 자들이 기에 최후의 심판 때에도 육신을 되찾지 못하고 자신의 나무에 육신을 매다는 것으로 만족 해야만 한다.
  • 제3원 가증의 사막 - 신과 자연 순리에 해를 끼친 자들이 가는 곳인데, 신성 모독자, 동성애 자, 고리대금업자(일하지 않고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것으로만 이익을 얻는 것은 순리 에 위반되기 때문)들이 사막 위에서 뜨거운 불꽃을 맞으며 고통받고 있다. 신성모독자들은 모래 위에 누워있고, 동성애자들은 그 위를 뛰어다니며, 고리대금업자들은 몸을 잔뜩 움츠 린 채 떨고 있다. 단테 일행은 이 불꽃을 피하기 위해 사막 가운데에 있는 개울을 통해 이 곳 을 지나간다. 참고로 당시 중세 시대에 동성애는 사람이 저지를 수 있는 가장 큰 죄악 중 하 나로 치부되었다.
  • 제8층 사기 지옥 혹은 말레볼지아 - 사기와 거짓말로 주변 사람들을 파멸으로 몰아놓은 자가 10가 지 죄로 나뉘어 10종류의 벌을 받고 있는 곳이다. 이 곳은 거대한 원형 극장의 모양을 띠고 있는데, 그 위에 동심원 모양의 구렁이 10개 파여져 있어 그 속에서 각기 다른 죄를 지은 자들을 고문하고 있다. 그리고 이 도랑들 위에는 모두 각각 하나씩 거대한 아치형 돌다리가 놓여 있어, 단테 일행이 쉽게 건너갈 수 있도록 돕는다.
  • 제1 구렁 - 이 구렁 속에 있는 죄인들은 생전에 타인을 고의적으로 착취하고 그들 자신의 이익을 위해 팔아넘긴 자들이다. 이들은 두 열을 이루며 영겁의 시간동안 빠르게 뛰어야만 하는데, 조금이라도 속도가 느려지거나 쓰러지면 뿔달린 악마가 채찍으로 그들을 후려갈긴 다. 이 곳에 있는 이들은 황금 양피를 찾으러 모험을 떠났던 그리스 신화의 영웅 이아손, 여 동생을 팔아넘겨 사익을 추구한 볼로냐의 정치인 베네디코 카치아네미코 등이다.
  • 제2 구렁 - 이 곳에서는 말로 다른 사람들의 욕망과 공포를 부추겨 옳지 못한 일을 하게 한 자들, 즉 아첨꾼들을 가두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이 살아있을 때 지껄였던 거짓말을 상징하 는 똥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으며, 서로를 향해 저주를 퍼붓고 싸우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단테는 이 곳에서 알레시오 인테르미네이, 아첨꾼들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창녀 타이데 등 을 보게 된다.
  • 제 3 구렁 - 이 곳의 죄인들은 생전에 성직을 매매한 이익을 챙긴 자들이다. 죄인들은 뜨거 운 구덩이 속에 거꾸로 처박힌채로 발만 겨우 구덩이 밖으로 내놓고 있는데, 발에는 뜨거운 불이 타고 있어 죄인들을 괴롭게 한다. 이 불꽃의 강도는 그가 생전에 지었던 죄에 비례하 여 뜨거워진다. 나중에 그 죄인의 자리를 대신 채울 죄인이 새로 도착하면, 원래 있던 죄인 은 뜨거운 땅 속으로 파묻혀 발조차도 땅 위로 내놓지 못하고 고통받아야 한다. 단테는 이 곳에서 교황 니콜라우스 3세, 예수의 권능을 돈으로 사려 했던 사마리아의 마술사 시몬, 교 황직에 오르는 대가로 수많은 협약들을 체결해주었던 클레멘스 5세 등을 알아차린다.
  • 제 4 구렁 - 단테가 제 4구렁을 가로지르는 돌다리를 지날 때, 그는 무심결에 아래를 내려 다본다. 그 곳에서 그는 머리가 뒤틀려 뒤를 바라본 채로 거꾸로 걸어가고 있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이들은 생전에 마술사, 연금술사, 마녀, 거짓 예언자 행세를 하여 신의 권능을 모 독한 자들이다. 이들은 지나치게 앞을 내다보려 한 죄로 인하여, 죽은 후에는 뒤만을 보며 영원토록 눈물을 흘리며 거꾸로 걸어가야만 한다. 단테는 이 곳에서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암피아라오스와 테이레시아스, 카이사르의 승리를 예언했던 예언자 아론타, 테이레시아스 의 딸 만토 등을 마주한다.
  • 제 5 구렁 - 타락하고 부패한 정치인들이 이 곳에서 벌을 받고 있다. 이들은 끓는 역청 속에 서 살아가고 있는데, 이 역청은 그들이 살아있을 때 행했던 부패와 악한 행위들의 끈적끈적 하고 더러운 성질을 상징한다. 이들이 역청 밖으로 고개를 들려 하면, 곧바로 그 주위를 순 회하던 악마들(말레브란케)이 삼지창과 갈퀴로 찔러 다시 들어가도록 압박한다. 단테 일행 은 이 곳을 지나며, 악마들의 대장 역할을 하고 있던 '말라코다'를 만나게 되는데, 말라코다 는 제 6구렁에서 7구렁으로 넘어가는 돌다리가 무너졌음을 알려주며 부하 악마들을 시켜 다른 돌다리로 가는 길을 알려주겠다고 제안한다. 물론 악마들의 행동이 다 그렇듯이, 또다른 돌다리 따위는 없었고, 그저 거짓말일 뿐이었다. 단테 일행은 악마들의 호위를 받으며 구렁을 통과하는데, 그러던 중 한 영혼이 역청 밖으로 빠져나오며 소란을 일으키고, 악마들의 정신이 팔린 사이 무사히 도망쳐 다음 구렁으로 당도할 수 있게 되었다.
 
  • 제 6 구렁 - 이 곳에서는 위선자들을 심판한다. 이들은 겉은 금빛으로 번쩍거리지만, 속은 무거운 납으로 만들어져 있어 무게가 엄청난 망토를 입은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영원토록 걸어가야만 한다. 이 곳에는 볼로냐의 '영광의 동정녀 마리아 기사단'에 속했던 수도사 2명이 살아가고 있는데, 이들 은 수도사라는 직책에도 불구하고 사치스럽고 항략스러운 생활을 즐겼던 자들이다. 또한 이 곳에 는 예수 한 명을 제물로 바쳐야 한다고 주장했던 유대인 제사장도 있는데, 그는 바닥에 못이 박힌 채로, 다른 죄인들이 망토를 입고 그를 밟고 지나갈 때마다 그 무게를 느끼며 참회해야만 한다. 참 고로 베르길리우스는 이 곳의 수도사들에게 다음 구렁으로 넘어가는 또다른 돌다리가 없다는 것을 전해 듣고, 그에게 거짓말을 친 악마 '말라코다'에게 분노한다.
  • 제7구렁-이구렁속에는생전에도둑질을생업으로삼았던사람들이있다.이곳으로향하는돌 다리가 무너졌기 때문에, 단테 일행은 어쩔 수 없이 거대한 바위 조각들을 타고 겨우겨우 이 곳으로 이동하게 된다. 단테가 이 곳으로 도착한 후, 그는 그제서야 제대로 제 7구렁의 참혹한 모습을 내려 다보게 된다. 이 곳의 죄인들은 뱀과 도마뱀과 같은 파충류들에게 물리며 고통받고 있다. 이 곳의 진정한 공포는 나중에 가서야 밝혀지는데, 제 7구렁의 진짜 형벌은 사실 영혼들이 뱀과 인간의 형 상을 넘나들며 끊임없이 고통받아야 하는 것이다. 책 속에서도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던 한 영혼이 뱀의 형상을 하고 있던 한 영혼과 그 형체가 뒤바뀌는 내용이 나온다. 참고로 이 곳에서 나온 자들 은 피스토이아의 대성당에서 성물을 훔친 도둑 반니 푸치, 헤라클레스의 소를 훔치려다 맞아 죽은 불한당 카쿠스 등이 있다. 이 중 반니 푸치는 신을 저주하며 하늘을 향해 모욕적인 손짓을 해보이다 가 뱀에게 물리며 끊임없이 고통받는다.
  • 제8구렁-이곳에서는잘못된조언으로타인의악행을부추긴자들이고통받는다.이들은거대 한 불덩어리 속에서 화염에 휩싸여 신음하는데, 주요 등장인물은 그리스의 영웅인 오디세우스, 디 오메데스 등이 있다. 이들은 트로이의 목마와 같은 기만 작전을 펼쳐 적들을 학살한 죄목으로 갇혀 있다. 오디세우스는 이 곳에서 단테에게 그의 마지막 항해에 대해서 들려주는데, 이 이야기는 단테 의 창작으로 신화의 기록에는 이런 내용이 없다는 것을 참고하는 것이 좋다. 오디세우스는 그가 세 상의 경이와 진실을 알기 위해서 대양으로 항해의 돛을 펼친 이야기에 대해서 말한다. 그들은 헤라 클레스의 기둥(지브롤터)를 넘어 대서양 건너편으로 항해하였으며, 북극성이 보이지 않는 곳(남반 구)로 목적지를 잡았다고 한다. 그들은 밤마다 북반구의 인간들은 볼 수 없는 별자리들을 보았고, 끊임없이 신이 허락하지 않은 곳으로 나아갔다. 이들은 마침내 연옥산이 보이는 곳에 당도하나, 연 옥산의 앞바다에서 거친 파도에 휩쓸려 죽었다고 한다. 이들이 죽은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의 재능을 남용하여 감히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은 진리를 탐구한 죄이다.
  • 제9구렁-이곳에서는사회에불화를일으키고분열을조장한자들을처벌한다.단테의지옥도 전체에서 가장 끔찍한 장면이 나오는 곳이기도 하다. 이 곳의 죄인들은 끊임없이 거대한 악마의 칼 에 썰리고 베이기를 반복하며 고통받는다. 이 고통은 끝날 수가 없는데, 이는 그들이 끊임없이 재생 을 반복하기 때문이다. 이 죄인들은 모두 세 부류로 나뉘는데, 첫 번째는 종교적인 갈등을 유발한 자들, 두 번째는 사회적, 정치적인 갈등을 조장한 자들, 마지막은 가족간의 불화를 만들어낸 자들이 다. 이 중 첫 번째 부류에 속하는 사람들 중 이슬람교의 창시자 마호메트가 있다. 단테는 그가 기독 교에서 빠져나갔을 때, 종교를 둘로 쪼갠 죄를 범했다고 생각했다. 단테는 이들 중 이슬람교의 네 번째 칼리프이자 사위인 알리도 이 곳에 있다고 썼는데, 이는 수니파시아파 사이의 갈등을 부추 긴 죄로 갇혀있는 것이다. 두 번째 부류의 사람들 중에는 피에르 디 메디치나, 카이사르에게 루비콘 강을 건너라고 조언해준 호민관 쿠리오 등이 있다. 이들 모두 참혹한 모습으로, 목이 잘리거나 얼굴 이 잘려나간 모습을 하고 있다. 마지막 세 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베르트랑 등이 있는데, 베르트랑은 목이 완전히 잘려나간 모습으로 묘사된다. 그는 자신의 잘린 목을 등불처럼 들고 다니며 단테에게 자신의 잘못을 토로한다.
  • 제10구렁-이곳에는위조범들이넘쳐난다.이곳의죄인들은끔찍한질병과전염병으로괴로워 한다. 움직일 수 있는 자들은 증오에 가득찬 채 서로를 찢어발기거나 저주하고, 움직일 기력도 없는 자들은 바닥에 널부러진 채 끔찍한 악취와 고통으로 괴로워한다. 단테는 이 곳에서 날 수 있는 법을 가르쳐 줄 수 있다고 거짓말하다가 사형당한 연금술사 그리폴리노, 연금술의 죄목을 쓰고 화형당한 카포키오 등과 마주한다.
  • 말레볼지아 한가운데의 샘 - 단테와 베르길리우스는 점차 말레볼지아 속으로 깊숙히 들어 가게 된다. 이 곳에서 그는 마지막으로 거대한 샘을 마주하게 되는데, 그 곳에서는 그리스 의 신들에게 저항한 거인들과 하나님께 대항한 거인들이 갇혀있다. 이들의 크기가 워낙 거 대했기에, 단테는 이들을 멀리서 보고 그들이 마치 산인줄 착각할 정도였다. 거인들은 배 꼽 아래로 차가운 웅덩이 속에 잠겨있고, 쇠사슬로 굳게 감겨 있어 함부로 움직일 수 조차 없다. 이 곳에서 단테는 바벨탑을 쌓았던 거인 님로드, 기간토마키아 도중 올림포스를 공 략하려 했던 에피알테스 등을 만난다. 이 곳에는 100개의 팔을 가진 거인 브리아레스와 그 외에도 티폰과 같은 괴물들도 함께 묶여 있다고 하지만, 단테와의 직접적인 대면 장면 은 묘사되지 않는다. 이 곳에는 올림포스의 신들을 배신하지 않았기에 쇠사슬로 묶이지 않 은 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거인 안타이오스가 있는데, 그가 손으로 단테 일행을 들 어 9층으로 내려 보내준다.
  • 제9층 '반역 지옥' - 국가, 가족, 친구, 스승, 은인 등을 배신한 자들이 가는 곳으로 영원히 차가운 얼음 속에서 신음해야 한다. 루시퍼가 머물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연옥

하의 연옥, 상의 연옥, 지상낙원 하의 연옥

베르길리우스와 단테는 대지의 중심에서 빠져나와 다시 햇살을 받으며 연옥(煉獄, Purgatorio)의 불을 저장한 산에 이른다. "연옥"도 몇 개의 구역으로 나뉘어 있으며, 속죄자들은 자신의 죄를 깊이 통찰함으

로써 정화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그들의 죄는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이 아니다. 피라미드와 같은 형태이 다.

연옥은 정죄(淨罪)와 희망의 왕국으로 영적 구원을 받을 만한 여망이 있는 망령들이 천국에 가기 전에 수 양을 하는 곳이다. 천사들은 이곳에서 칼로 단테의 이마 위에 P자를 새겨주는데, 이는 연옥에서 자기가 참회해야 할 죄(Peccata), 곧 오만·질투·분노·태만·탐욕·폭식·애욕의 일곱 가지로 이러한 죄들은 벼랑을 차례로 지나면서 하나씩 씻어진다.

이 모든 죄를 씻고 나면 영혼들은 구원을 받게 되고 이어 지상낙원으로 오를 수 있다. 이 연옥에서 정죄 하고 있는 죄들이 지옥에서 벌받고 있는 것들과 비슷한 것임을 보고 당혹감을 느끼는 수가 있다. 그러나 지옥의 죄들은 뉘우치지 못한 자들의 것이고 연옥의 죄들은 구원받은 영혼들로서 천국에 올라가기에 앞 서 이곳에서 정죄할 수 있는 죄인 것이다. 이 지상낙원은 지상에서의 완전한 행복을 의미한다. 인간은 하 나님의 의지에 복종하며 교회와 군주국의 보편적인 권력들을 조화시킬 수 안다면 이 행복을 누릴 수 있 지만, 엠피레오에 올라가기 전에 그들은 지상의 죄를 망각케 하는 레테 강에 몸을 씻고 선행의 기억을 새 롭게 하는 에우노에 강물을 맛보는 정화과정을 거쳐야 한다. 단테는 이 두 강에 몸을 적신다.

이윽고 수레를 탄 베아트리체가 모습을 드러내고, 천국 여행에 대비하여 자신과 그리핀의 눈에 비친 태 양빛을 단테의 눈에 반사시켜 눈을 단련시켜 준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르러 베르길리우스와 스타티우스 에게 작별을 고하고 베아트리체의 안내를 받아 천국으로 오른다. 연옥편은 가장 철학적인 부분이어서 < 신곡>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 제1층
  • 제2층
  • 제3층
  • 제4층
  • 제5층
  • 제6층
  • 제7층

천국

단테와 그의 동행자는 차례차례로 여러 구역을 지난 뒤에 드디어 "지상의" 낙원에 도착한다. 시인의 동행 자는 이미 베르길리우스가 아니며, 그를 대신하여 "그의" 베아트리체가 "후광에 감싸여" 그를 천국으로 인 도하게 되는데, "그는 그녀를 눈으로 똑똑하게 확인함으로써가 아니라, 그녀로부터 나오는 신비한 힘에 의해서 옛날의 사랑에 대한 원초적인 힘을 느낄 수 있게 된다."

천국의 구조는 다음과 같다.

  • 화염천-지구와달의중간경로.
  • 제1 영역 월성천
  • 제2 영역 수성천 -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 제3 영역 금성천 - 앙주의 샤를, 쿠니자 다 로마노, 폴케 드 마르셀. 
  • 제4 영역 태양천 - 토마스 아퀴나스, 아시시의 프란체스코
  • 제5 영역 화성천 - 여호수아, 롤랑, 카를 대제.
  • 제6 영역 목성천 - 다윗 왕, 히스기야, 콘스탄티누스 황제.
  • 제7 영역 토성천
  • 제8 영역 항성천 - 초대 교황 베드로.
  • 제9 영역 원동천
  • 제10 영역 최고천

108. 다비드 상

다비드는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 예술가 미켈란젤로1501년1504년 사이에 조각한 대리석상으 로, 높이는 5.17m이다.

미켈란젤로이스라엘의 위대한 왕 다윗의 청년의 모습을 예술적으로 위엄있게 표현해냈다. 현재 피렌 체의 갤러리아 델 아카데미아에 소장되어 있다. 미켈란젤로는 1501년 피렌체에서 시청의 부탁으로 다비 드를 3년에 걸쳐 완성하였다.

도나텔로의 영향을 받고 있으며, 갈고리형으로 굽은 오른편 손목은 츠크네를 모방하였고, 세부의 해부학 적 표현과 고정된 눈에도 전 시대의 잔재를 엿볼 수 있다(석재가 높이에 비하여 얇은 데에도 한 원인이 있 다). 그러나 그의 면모는 표정이 넘쳐 있고 그 거대한 크기와 더불어 전형적인 남성의 나체상이 되어 있 다. 체구를 상반되는 두 방향축에 중심을 두면서 두 어깨의 위치에 높고 낮음을 만들고, 목줄기 근육을 과 장하여 조상(彫像)에 긴박감을 부연하였다. 이 작품이 풍기는 긴장감과 불안정성은 헬레니즘 조각의 다방 향성(多方向性)을 한층 강조한 것이다.

109. 오존층

오존층(Ozone layer)은 지구, 화성, 금성 따위의 행성 대기권에서 관찰되는 공기층으로 상대적으로 높은 함 량의 오존을 포함한다. 지구에서, 이 공기층은 단파 자외선을 흡수하는 성질이 있어 실질적으로 지표에 도달 하는 자외선량이 급감하여, 그 결과 육상생물이 출현하는 계기가 되었다. 오존층은 프랑스 물리학자 찰스 패 브리헨리 뷔슨에 의해 1953년 발견되었다. 영국 기상학자 G.M.B.답슨이 자세히 관측하였다. 답슨은 땅에 서 성층권 오존을 측정하기 위해 사용될 수 있는 단순한 분광 광도계(Spectrophotometer)를 개발하였다. 답 슨은 1928년부터 1958년까지 오늘날까지 이어져온 세계적인 오존 관찰 체계를 구성하였다.

오존을 발생시키는 광화학 메커니즘은 1930년 영국 물리학자 시드니 채프먼에 의해 밝혀졌다. 지구의 성층 권 내의 오존은 자외선에 의한 산소분자의 분리에 의해 생성된다.

산소 원자는 그 후 부서지지 않은 산소 분자와 결합하여 오존을 발생시킨다. 오존 분자 역시 불안하나 성층권 에서는 수명이 길다. 그리고 자외선이 오존과 부딪히면 그것은 다시 산소 분자와 산소 원자로 나뉘며 오존 산 소 싸이클이라는 과정을 계속하게 된다. 이것은 성층권내에 지표로부터 약 10km에서 50km까지의 영역에 오존층을 만든다.

우리 대기내의 오존의 약 90%가 성층권에 들어 있다. 오존 농도는 지표로부터 15~40km 부근에 최대인데 그곳에서 오존의 농도는 2~8ppm이다. 만약 오존의 모두가 해수면 공기압력으로 압축되면 수mm 두께에 지 나지 않는다.

대기중의 오존의 10%는 대류권에 포함되어 있는데 그곳에서 우리 기상의 모두가 발생한다. 대류권 오존은 두가지 근원이 있다. 약 19%는 성층권에서 내려온 것인 반면 나머지는 다른 메커니즘으로 더 적은 비율로 발 생된것이다.

오존층의 발견은 성층권의 발견과 함께했다는 것에는 논란이 있다. 성층권의 발견은 19세기 후반에 들어서 열기구를 이용한 대기중의 태양광 분석 실험이 실시되기 시작하면서 부터였다.

대기중에서는 파장이 150~320nm인 자외선을 관측할 수 있지만 지표에서는 거의 관측이 되지 않았다. 이로써 과학자들은 대기중에 파장이 150nm~320nm인 자외선을 흡수하는 것이 있다는 것을 추론할 수 있었다.

그 후 여러 과학자들에 의해 오존의 생성과 파괴시 150 ~ 320nm의 자외선을 흡수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오존층에서 오존의 농도가 매우 작더라도 이것은 태양으로부터 방출되는 생물학상에 해로운 자외선 복사를 흡수하기 때문에 실로 삶에 중요하다. 자외선 복사는 이것의 파장에 의거하여 3가지의 범주로 나뉜다: UV- A(400-315nm), UV-B(315-280nm), 그리고 UV-C(280-100nm) 인간에게 매우 해로운 UV-C는 대략 35km의 고도에 오존에 의해 완전히 차단된다. 피부에 유해하고 햇볕에 타는 주된 원이 되는 UV-B 복사에 과도하게 노출되면 유전학상의 손상을 유발하여 그 결과 피부암과 같은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오존층은 UV- B의 차단에 매우 효율적이다: 지구의 표면에서 강한 290nm파장의 복사는 대기의 맨 꼭대기에서보다 350x10 억배 더 약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간의 UV-B는 표면에 도달한다. 대부분의 UV-A는 표면에 도달하는 데 이 복사는 주목할 정도로 유해하진 않지만 이것은 잠재적으로 유전학상의 손상을 유발할 수 있다.

110. 음악 장르

발레곡 : 18세기까지 프랑스 파라에서 유행했던 대중적인 춤 공연 형태
실내악 : 고전주의 시대와그 이후 시대에 등장한 프란츠 요제프 하이든,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등 협주곡 : 합친다는 의미의 이탈리아어에서 파생된 콘체르토, 즉 협주곡, 여러악기가 한마음로 연주
오페라 : 연극과 열정적인 노래, 오케스트라 음악, 종종 시적인 대본이 모두 결합해 하나의 이야기를 전하는 장르
모음곡 : 춤곡이나 짧은 기악곡을 포함하고 있는 여러 악장으로 된 작품이거나 제목에 맞는 표제 음악 교약곡 : 웅장한 오케스트라 음악으로 여러 개의 악장으로 구성

 

111.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코기토 에르고 숨(라틴어: Cogito, ergo sum, 해석: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은 데카르트 방법적 회의 끝에 도달한 철학의 출발점이 되는 라틴어 명제이다. 데카르트는 애초에 《방법서설》에서 이 명제를 프랑스어로 썼지만( "Je pense, donc je suis"), 라틴어로 된 명제가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데카르 트는 후일 《철학 원리》에서 “우리가 의심하고 있는 동안 우리는 (의심하고 있는) 자신의 존재를 의심할 수 없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은 라틴어 명제를 제시하였다. “라틴어: dubito, ergo cogito, ergo sum 두비토, 에 르고 코기토, 에르고 숨[*], 나는 의심한다. 그러므로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 역시 "생각하는 나"라는 개념에서 코기토를 사용한 바 있다. 아우구스티누스 역시 회 의주의를 배격하기 위해 확고한 진리의 바탕이 되는 개념으로서 코기토를 사용하였다. 데카르트는 중세 초 의 이러한 주장을 근세의 자연 철학을 위해 다시 살려낸 것이다.

데카르트는 여타의 지식이 상상에 의한 허구이거나 거짓 또는 오해라고 할지라도 한 존재가 그것을 의심하 는 행위는 최소한 그 존재가 실재임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인식(이 경우엔 자각)이 있으려면 생각 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라는 이유이다. 데카르트의 코기토 에르고 숨은 인식론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졌으며 서양 철학의 근간에 영향을 준 명제 가운데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

데카르트는 1637년 《방법서설》에서 처음으로 이 명제를 썼다. 그는 1641년 《제1철학에 관한 성찰》에서 명시적인 출처 표기 없이 비슷한 형태의 명제를 라틴어로 서술했다. 보다 명확한 형태의 라틴어 문구는 1644 년 《철학 원리》에 처음으로 쓰였다. 데카르트는 《철학 원리》의 각주에서 "우리가 의심하고 있는 동안 우 리는 (의심하고 있는) 자신의 존재를 의심할 수 없다"고 자신의 주장을 분명히 설명하였다.

이를테면, 우리의 감각은 때때로 우리를 속이기에, 나는 우리에게 나타나는 모든 것이 실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정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합리적인 사람도 종종 오류에 빠지기 때문에, 또한 잘못된 논리에 빠지는데 이를테면 가장 단순한 기하학적 사실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종종 오류를 저지르는 나로서는 여기에 제시된 모든 합리를 거짓이라고 치부할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우리가 깨어있을 때 경험하는 것과 정확히 같은 사상을 꿈속에서 겪는다면 무엇이 진실인지 분간할 수 없을 것이고, 따라서 나는 내가 깨어있을 때 내 마음에 들어오는 모든 대상 역시도 내가 꿈속에서 보는 환상과 마찬가지로 진리가 아닐 수 있다고 가정할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관찰에서 즉각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은 내가 이 모든 것을 거짓이

라 생각한다는 것이고, 이처럼 생각하는 내가 어딘가에는 존재하여야 한다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러한 진실을 발견한 바에 따라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는 명제는 터무니없는 회의주의적 의심으로도 흔들리지 않는 참이다. 따라서 나는 확신을 가지고 이를 철학의 제1원리로 결정할 수 있다.

112. 산상수훈

산상 설교(山上說敎, Sermo montanus)는 예수 그리스도30년 경에 그의 제자들과 군중들에게 설교한 일 을 뜻하는 기독교 용어로 산상수훈이라고도 한다. 일부 현대 기독교인카파르나움 근처의 갈릴래아 호
남쪽 끝에서 설교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산상수훈의 내용은 마태오의 복음서 5장에서 7장까지 기록되 어 있다. 특히 5장의 첫 부분은 내용은 팔복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 설교를 ‘그리스도교의 대헌장’이라고도 부른다.

1.산상수훈
복에 대하여(마 5:3~12)
빛과 소금에 대하여(마 5:13~16)

율법에 대하여(마 5:17~20)
노에 대하여(마 5:21~26)
간음에 대하여(마 5:27~30)

이혼에 대하여(마 5:31~32)

맹세에 대하여(마 5:33~37)

보복에 대하여(마 5:38~42)
원수 사랑에 대하여(마 5:43~48)

구제에 대하여(마 6:1~4)
기도에 대하여(마 6:5~8)

2.예수의 비유
씨 뿌리는 비유(마 13:1~9)

가라지 비유(마 13:24~30)
겨자씨 비유(마 13:31~32)
누룩 비유(마 13:33)
가라지 비유를 설명(마 13:36~43)

보화를 감추는 비유(마 13:44)

진주를 찾는 비유(마 13:45~46)

그물을 치는 비유(마 13:47~50)

113. 마틴 루터

마르틴 루터(독일어: Martin Luther, 1483년 11월 10일 ~ 1546년 2월 18일)는 독일종교개혁가이다. 당 시 비텐베르크 대학교의 교수였으며, 훗날 종교개혁을 일으킨 역사적인 인물이다. 본래 아우구스티노회 수 사였던 루터는 로마 가톨릭교회면죄부 판매가 회개가 없는 용서, 거짓 평안(예레미야 예언자의 가르침을 인용함)이라고 비판했으며, 믿음을 통해 의롭다함을 얻는(der Rechtfertigung durch den Glauben) 이신칭 의를 주장했다. 칭의를 통한 개인 구원의 새 시대를 열어주었다. 면죄부 판매를 비판한 루터는 1517년 95개 논제를 게시함으로써 당시 면죄부를 대량 판매하던 도미니코회 수사이자 설교자 요한 테첼에 맞섰다. 1520 년 교황 레오 10세로부터 모든 주장을 철회하라는 요구를 받았지만, 오직 성경의 권위을 앞세우면서 성서에 어긋나는 가르침들을 거부하였다. 1521년 보름스 회의에서도 마찬가지로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인 카를 5세 로부터 같은 요구를 받았으나 거부함으로써 결국 교황에게 파문당했다. 1517년 10월 31일 비텐베르크 대학 교 교회 문에 95개 논제를 게시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이것이 종교 개혁의 시작이 되었다. 루터의 종교 개혁 은 당시 종교와 사회에 큰 영향을 주었다.

마르틴 루터는 로마 가톨릭교회에 부패와 잘못된 교황의 권위에 항거하여, 로마 가톨릭교회의 교리를 논박 하고, 성서가 지니고 있는 기독교 신앙에서의 최고의 권위와 그리스도에 대한 오직 믿음과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를 통한 구원을 강조했다. 루터의 주장은 "오직 성경,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오직 그리스도, 오직 하나님 께 영광을"(Sola scriptura, Sola fide, Sola Gratia, Solus Christus, Soli Deo Gloria)이라는 표현으로 함축할 수 있다. (다섯 솔라) 루터 본인은 자신이 ‘종교 개혁’을 일으켰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종교 개혁이 하나님 에게 이끌림을 받아, 할 수 없이 한 일이기 때문이라고 말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복음주의자’로서 복음을 전 파하기를 원했고, 자신이 설교자, 박사, 교수라고 불리기를 원했다. 그러나 그의 삶 가운데 그가 행했던 일들 은 엄청난 결과를 가져왔다. 개신교가 태동했을 뿐 아니라, 성서 번역, 많은 저작 활동, 작곡과 설교를 통해 사회와 역사가 크게 변화되었기 때문이다.

루터는 종교개혁을 주장했다는 사실에서 즉, 교회개혁의 신학적 모델을 제시했다는 사실에서 중요한 신학자 이다. 복음주의 클럽 운영자인 양희송은 《복음과 상황》 171호 표지이야기- <불멸의 루터, 한 말씀하시다> 에서 루터를 가리켜 기성교회로마 가톨릭비판하는 지성과 자신의 생각을 95개조 반박문 작성으로 옮 긴 열정을 모두 갖춘 신학자라고 평가했다.

루터의 종교개혁사상은 철저히 하나님 중심이었다. 그의 종교개혁 작업의 핵심은 하나님을 인간의 눈으로 판단하고 그 위에 자신의 종교를 쌓아가려는 로마 가톨릭 교회에 대항하여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는 것이 었다. 사실 중세 로마 가톨릭 교회라고해서 성서의 권위와 성령의 감도(영감)에 대해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또한 선행(先行)하는 하나님의 은총을 가르치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믿음의 중요성에 무지한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루터에게 있어서 급진적이었던 것은 이 말들 앞에 붙은 한 작은 단어, “오직”(sola) 이었다. 루터는 로마 가톨릭 교회가 이것들을 말하면서도 실은 그 밑바닥에는 인간 중심의 종교가 사로잡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당시 로마 가톨릭교회에서는 성서의 권위를 말하면서도 성서를 해석하는 교황의 권위 를 그 위에 세웠으며, 은총을 하나님이 주신다고 말하면서도 그것을 인간이 율법의 의를 쌓는 데 도움을 주 는 하나의 ‘능력’으로만 이해하였고, 믿음이 중요하다는 말을 처음에는 시작하다가 어느덧 ‘선행(善行)으로 형성된 믿음’을 강조했던 것이다.

그러나 루터는 성서는 그 문자가 자명하고 단순하기 때문에 어느 누구라도 이해할 수 있는 으로서, 자신 이외의 다른 어떤 해석자도 중요로 하지 않는다고 하였으며(성서만으로!), 은총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서 죄인들을 죄인에서 의인으로 바뀌는 것은 아니지만, 그리스도 신앙을 보시고 의인으로 인정해주시는 ‘호 의’(신학용어로 이를 '칭의'라고 한다.)로 이해하였고(은총만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은 단번에 모 든 율법을 성취하며 인간을 의롭게 한다고 하였다(믿음만으로!).

'오직 성서'(Sola Scriptura)는 교권주의에 대한 저항이기도 했다. 신학과 교리의 최우선의 권위는 성서라고 주장함으로써 교황의 권위는 절대적이지 않음을 밝힌 것이다.

114. 베오울프

《베오울프》(고대영어:Beowulf[ˈbeːow̯ ʊlf],영어:Beowulf베이어울프[beiəwulf][*],표준어:베어울프) 는 8세기에서 11세기 사이에 쓰인, 고대 영어로 된 작자 미상의 영웅 서사시이다. 1010년경에 만들어진 필사 본이 유일하게 전해지고 있다. 길이가 3183줄에 달하며, 고대 영어로 된 가장 긴 작품으로 영문학상으로도 중 요한 문헌이다.

서사시의 주인공인 베오울프는 에즈데오우의 아들이며 히옐락왕의 신하로, 기트족의 영웅이다. 웨이문딩그 족 출신. 고귀한 성품에 큰 체구, 그 당시 사람들 가운데 가장 힘센 자로 알려졌으며 서른명의 용사에 맞먹는 악력을 지녔다고 한다. 덴마크에서 그렌델, 그렌델의 어미와 싸워 이기고, 자기 땅으로 돌아와 히옐락사후에 그의 아들 헤아르드레드를 보필하다가 헤아르드레드가 죽자 그의 뒤를 이어 왕이 된다. 말년에 화룡과 맞서 싸워 이긴다. 베오울프는 마지막 전투에서 큰 상처를 입고 결국 죽게 되며 그의 부하들이 고향인 기트랜드에 안장한다.

첫 번째: 그렌델

덴마크왕 흐로드가르(Hroðgar)와 그의 아내 웨알데오우(Wealhþeow)와 전사들이 미드홀(Mead Hall)에서 파티를 여는 도중, 그렌델(Grendel)이 습격한다. (그렌델이 이곳을 습격한 것은 파티 중 노랫 소리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렌델은 흐로드가르의 부하들은 죽여도 흐로드가르를 건드리지 못하는데, 흐로드가르가 "신의 보호" 를 받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이견의 소지가 있음) 이 일이 벌어진 후, 기트족(Geats, 예아트족)의 베오울프가 왕의 허락을 받아 그렌델을 죽이러 온다. 베오울프는 그렌델과 맨몸으로 밤새 처절히 싸우고 한쪽 팔을 어깨부터 뽑아내 그를 죽이는 데 성공했다.

두 번째: 그렌델의 어미

그렌델의 어미는 그렌델의 복수를 위해 미드홀을 습격한다. 흐로드가르가 가장 총애하던 부하를 죽인다. 이 에 베오울프는 홀몸으로 괴물의 동굴을 습격하게되는데. 전투 전에 베오울프는 전날 그를 못마땅해 했던 운페 르트 (Unferth)라는 자에게서 그의 가보인 흐룬팅(Hrunting)이라는 이름의 칼을 받게 되는데, 그렌델과 같이 그렌델의 어미에게도 인간의 무기는 통하지 않았다. 긴 사투끝에 베오울프는 동굴안 벽에 걸려있던 커다란 검 으로 그렌델의 어미를 죽이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검은 녹아버리고 만다.
세 번째: 용과의 전투

그렌델의 어미를 죽인 후, 베오울프는 고향으로 돌아가 왕이 된다. 노년에 어떤 용사의 노예가 금으로 된 술잔 을 의 서식처에서 훔쳐왔고, 화가 난 용이 술잔을 찾기 위해 베오울프를 공격하게 된다. 베오울프는 거대한 옛 검 (회색빛을 발하는 고검 네일링)으로 용을 내리치지만 검은 부서지고 만다. 상처를 입은 베오울프는 위글 라프(Wiglaf)라는 이름의 젊은 전사의 도움을 받아 전투용 단검으로 용을 죽이지만 상처 때문에 죽게 된다. 죽 은 베오울프는 화장되어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절벽에 매장되었다.

115. 시스티나 성당

시스티나 성당(라틴어: Aedicula Sixtina)은 바티칸 시국에 있는 교황의 관저인 사도 궁전 안에 있는 성당이 다. 건축 양식이 타나크에 나오는 솔로몬의 성전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전하며,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산드로 보티첼리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가들이 그린 프레스코 벽화가 구석구석에 그려져 있다. 그 가운데서도 미켈 란젤로는 교황 율리오 2세의 후원을 받으면서 1508년에서부터 1512년 사이에 성당의 천장에 12,000점의 그 림을 그렸다.

시스티나 성당은 1473년에서 1481년 사이에 기독교의 오래된 옛 대성당(Cappella Magna)을 복원했던 교황 식스토 4세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 기간에 피에트로 페루지노, 산드로 보티첼리, 도메니코 기를란다요 를 포함한 화가 무리는 모세그리스도의 생애를 묘사한 프레스코화 벽판 시리즈를 만들었다. 그 그림들은 1482년에 완성되었으며, 1483년 8월 15일 성모 승천 대축일 기념 미사 때 식스토 4세에 의해 축성되었다.

식스토 4세의 치세 이래, 시스티나 성당은 교황이 종교적·직무상의 활동을 하는 장소로서의 소임을 해 왔다. 오늘날에 이곳은 전 세계의 추기경들이 모두 모여 새로운 교황을 선출하는 종교적 의식인 콘클라베를 여는 장 소로 이용되고 있다.

116. 방사성 탄소 연대측정법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법(放射性炭素年代測定法, Radiocarbon dating)은 탄소화합물 중의 탄소의 극히 일 부에 포함된 방사성 동위 원소탄소-14(14C)의 조성비를 측정하여 그 만들어진 연대를 추정하는 방사능 연 대 측정의 한 방법이다. 간단하게 탄소연대측정이라고도 부른다.

탄소연대측정이 가장 많이 사용되는 대상은 유기물이 포함되어 있는 고고학 유물이다. 대기중의 탄소-14 비 율은 일정했다고 알려져 있고 식물광합성, 동물호흡을 통해 대기중에 있는 탄소를 주고 받기 때문에, 살아 있는 동물과 식물이 가지고 있는 탄소-14의 비율은 공기중의 비율과 일치한다. 사후에는 외부와 격리 된 상태에서 탄소-14만이 방사성으로 시간에 따라 감소하므로 반감기를 통해 경과시간 추정이 가능해진다.

탄소-14의 반감기는 약 5730년이며, 이를 이용하여 6만년까지의 연대를 측정할 수 있다. 보정(calibration) 을 거치지 않은 순 연대에 대해 흔히 1950년을 기준으로 거꾸로 올라가는 BP(Before Present)라는 단위를 쓰 며, 보정을 통해 실제의 날짜와 일치시킨다. 1950년을 기준으로 삼는 것은 핵실험에 의해 대기중 탄소-14의 양이 인위적으로 변화한 시점이 1950년이기 때문이다. 보정에 있어서는 일반적으로 매우 오랫동안 살아있 는 나무를 이용한다. 나무는 나이테 분석을 통해 그 나이를 정확히 알수 있기 때문이다.

이 기술은 시카고 대학교윌러드 리비와 그의 동료들이 1949년에 발견하였다. 리비는 탄소-14를 이용하 면 1분에 단위 그램 당 14개의 14C가 붕괴한다는 결과를 얻었고, 이로 인해 1960년 노벨 화학상을 받게 되었 다.

탄소-14의 양을 실험적으로 측정하는 방법으로 방사선 계측법과 가속기 질량 분석법이 이용된다.

방사선 계측법은 시료 속에 포함된 탄소-14가 자연적으로 붕괴하면서 방출하는 전자의 수를 액체 섬광 검출 기나 기체 비례 계수기와 같은 장비로 정밀 측정하여 탄소-14의 양을 역산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이 방법은 탄소-14의 반감기가 상대적으로 길기 때문에 적은 수의 전자만을 관찰할 수 있고, 이에 따라 상대적으로 큰 통계적 오차를 발생시킨다.

이에 비해 가속기 질량 분석법은 매우 적은 양의 시료로도 탄소-14의 비율을 정확히 알 수 있다. 가속기 질량 분석법은 시료속의 탄소 원자를 이온화 시킨 후, 입자 가속기로 가속한다. 가속된 이온을 자기장을 통과 시키 면 그 질량에 따라 다른 궤적을 보이는데, 이를 통해 탄소-14 및 다른 탄소 동위원소를 구분할 수 있다.

 

117. 고전주의 음악

고전주의 음악(古典主義音樂, Classical Music)이란, 음악에서 1750년경부터 1810년경까지 주로 오스트리 아 빈을 중심으로 발전한 서양음악사조를 말한다.

'고전'이라는 말뜻에는 '모범적 예술, 균형적 형식, 누구에게나 쉽게 이해되는 성격, 시대초월적 성격'이 포함 되어 이미 질적인 가치를 함축하고 있다. 고전주의 음악의 개념을 처음으로 사용한 음악사학자는 아마데우 스 벤트하이든모차르트의 음악을 독일문학에서의 바이마르 고전주의를 모델로 삼아 고전적이라고 명 명하였다. 음악에서 '고전(Klassik)' 이라는 개념이 처음 나왔을 때는 시대 개념이 아니라,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의 음악과 다른 음악을 구별하는 질적 개념으로 쓰였다. 이들의 교향곡이 1800년 초 음악회장의 모범 적 레퍼토리로 고정되면서, 호프만(E.T.A Hoffmann)과 같은 사람들이 이를 기악음악의 절정으로 평가하였 다.[1] 반할, 보케리니, 클레멘티, 케루비니, 메율 등도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과 같은 작곡 양식을 썼으므 로, '고전'은 음악사에서 이들 전체를 통칭하는 시대 개념으로 쓰이게 된다.

고전파 음악은 '자연스러움', '단순성', '보편성'을 강조한 결과이다. '자연스러움'은 파악이 어려운 변화나 이론 적 딱딱함을 가지고 듣기를 강요하지 않는, 감정적으로 자연스럽게 '같이 느끼게 하는' 방식을 추구하게 된 다. '단순성'의 추구는 예술 음악의 출발점을 민요적인 것으로 삼게 한다. '보편성'은 세상 사람 누구나 알아들 을 수 있는 세계성을 지향한다. 물론 이러한 생각은 초기에만 강력하였고, 시간이 지나면서 약화되어 베토벤 과 같이 예술가의 독창성과 작품성이 강조된다.

고전파 음악의 특징으로는 주요 3화음을 중심으로 한 기능 화성법의 확립, 소나타 형식에서의 제1, 제2주제의 조성을 으뜸음딸림음과의 관계에서 파악하여 두 주제의 성격적 대비를 갖게 했다는 점, 그리고 주제를 유 기적으로 전개하는 '주제노작(主題勞作)'원리의 확립, 2관편성의 오케스트라, 소나타 형식에 바탕을 둔 교향 곡, 협주곡, 실내악곡, 독주곡과같은 악곡형식을 낳았다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바로크 시대와 고전파 사이에서 고전파에의 디딤돌 구실을 한 시대를 전 고전파(1720-1760경)라고 한다. 로 코코 음악은 18세기의 화려한 궁정생활을 반영한 것이나 로코코 시대의 경쾌하고 우아한 양식을 '갈랑 양식 '(gallant style)이라 하며 대위법적인 수법에서 화성적 수법으로의 이행을 나타내며 섬세하고 우아한 멜로디 와 단순한 형식, 세속적이며 사교적인 성격을 지닌 소곡 등을 그 특징으로 한다. 이 양식을 전형적으로 나타낸 것이 18세기 중엽 프랑스의 클라브시니스트프랑수아 쿠프랭, 장 필립 라모, 다캥 등의 작품이다. 그리고 이 경향에서 18세기 후기에 북독일에서 빌헬름 프리데만 바흐칼 필립 엠마누엘 바흐, 게오르그 벤다, 요한 요 아힘 크반츠 등에 의하여 대표되는 자연스럽고 풍부한 감정표출을 지향한 감정 과다양식이 일어났다.

또 1770년에서 1790년경 독일에서 발생한 헤르더, 괴테, 실러 등의 문학운동인 슈투름 운트 드랑(질풍노도양 식)이 음악에도 영향을 미쳐 디나미크멜로디크, 관현악법에 두드러진 대조적 효과를 주었다. 슈베르트, 슈 타미츠의 기악곡, 요한 프레데릭 라이히아르트, 첼터, 츰시티크 등의 가곡에서 그 예를 볼 수 있다. 빈에서는 게 오르크 크리스토프 바겐자일 등이 교향곡의 악곡구성 면에서 기초를 이룩하였다. 그리고 만하임에서는 예술 을 애호했던 선제후 카를 테오도르의 궁정에서 요한 벤젤 안톤 슈타미츠, 홀츠바우어, 리히터, 카나비히 등이 활발히 활동하였다. 빠름-느림-빠름의 3악장에 미뉴에트를 쓴 4악장의 악곡 구성, 제1, 2주제의 성격적 대 비, 크레셴도, 디미누엔도, 포르테, 피아노 등의 음량변화, 관악기의 중시, 장식법 등이 고전파 음악에 대하여 많은 공적을 남기고 있다. 그 밖에 이탈리아에서는 스카를라티, 사키니 등의 쳄발로 소나타, 파리에서는 고세 크, 런던에서는 크리스티안 바흐 등이 전기 고전파에 활약한 사람으로 유명하다.

 

118. 정신-신체 문제

데카르트는 물질 이원론자이다. 그는 정신과 신체가 별개의 것이고 하나가 없더라도 다른 하나가 존재할 수 있다고 믿었다.

사고실험을 해보자. 나와 완전히 같은 뇌를 가지고 있고 모든 신경 세포가 똑같은 방식으로 활성화되지만 어 떤 것도 경험하거나 느끼지 못하는 존재가 있을 수 있을까? 이 같은 좀비가 있으리라 믿는다면 여러분은 이원 론이 사실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는 마음과 몸이 상호작용하며, 그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곳이 어디인지 안다고 생 각했다. 그는 골단 또는 송과선이라 알려진 뇌 영역에서 상호작용이 일어난다고 주장했다.

 

119. 선한 사마리아인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Good Samaritan Law) 또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법은 위험에 처한 사람을 구조하는 과 정에서 자신이 위험에 빠지지 않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구조 불이행(Failure-to-Rescue)을 저지른 사람을 처벌하는 법규이다. 구조거부죄 또는 불구조죄라고도 하며, 사형 제도, 신념에 의한 병역 거부와 함께 찬반 양 론이 팽팽하게 맞서는 법적 쟁점 가운데 하나이다.

신약성경 누가복음서 10장 30절~37절에서 유래된 것이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게 된다. 제사장, 레위인은 이 다친 사람을 보고 지나가게 되지만 유대인들에게 멸시당하며 사는 사마리아인은 이를 보고 구제해준다. 법적인 의무는 없지만, 도덕적 차원에서 인간이 당연히 해야할 일이라는 의미를 보여준다.

120. 신대륙의 스페인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영어: Christopher Columbus 크리스토퍼 컬럼버스[*], 이탈리아어: Cristoforo Colombo 크리스토포로 콜롬보[*], 라틴어: Christophorus Columbus 크리스토포루스 콜룸부스[*], 스페인 어: Cristbal Coln 크리스토발 콜론[*], 포르투갈어: Cristvo Colombo 크리스토방 콜롬부[*], 1450
년 10월 31일 제노바
~ 1506년 5월 20일 바야돌리드)는 이탈리아 제노바 출신의 탐험가이자 항해가이다. 1484년 포르투갈의 왕 주앙 2세에게 대서양 항해 탐험을 제안하고 지원을 요청하였으나, 희망봉 루트를 준 비 중이던 왕이 허락하지 않자, 스페인으로 갔다. 당시 스페인은 카스티야아라곤으로 구분되어 있어, 카 스티야 여왕 이사벨 1세와 아라곤 왕 페르난도 2세가 카스티야를 공동 통치하고 페르난도가 아라곤을 단독 통치하는 상태였다. 정치, 지리, 종교적 통일을 이룩하고 국가의 비상을 꾀하던 이사벨과 페르난도 부부는 해외 진출에 관심을 갖고 있었지만, 콜럼버스가

  1. 기사와 제독 작위
  2. 발견한 땅을 다스리는 총독의 지위
  3. 얻은총수익의10분의1

이라는 실현 가능성없는 조건을 제시하자 포르투갈에서와 마찬가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당시 스 페인 교회의 성직자들은 포르투갈 교회에 대한 경쟁 의식으로 더 넓은 선교지를 필요로 했고, 때문에 콜럼버 스를 위해 여왕을 설득했다. 결국 이사벨이 콜럼버스를 등용하였다.
이사벨 여왕은 콜럼버스를 해군 제독에 임명하였고, 그가 발견하는 것의 10퍼센트(%)를 콜럼버스의 소유로 한다는 조건 하에 선박 2척(핀타호와 니나호)을 내주고 과거에 죄를 지은 자들은 면죄해 준다는 조건으로 승무원 모집에도 협력해 주었으며, 또
팔로스항(Palos)에 사는 핀손이라는 선장이 자기 소유의 선박인 산타 마리아호와 함께 참가하였다.

계약 후에도 이사벨 여왕이 계속 지원을 미뤘기 때문에, 실질적인 항해까지 걸린 시간은 6년이나 되었다.(당 시 콜럼버스의 나이는 39세였다)
콜럼버스가 탐험을 시작한 것은 당대 유럽인이 가지고 있던 중요한 사명인
기독교의 전파 혹은 미지의 세계 에 대한 순수한 탐구심이 아닌 각종 향신료의 수입을 위한 인도의 교역으로 얻을 수 있는 금과 보물이 가장 큰 이유였다. 실제로 콜럼버스의 항해 일지를 보면 금과 보물에 대한 언급이 10일 분량에 수백 차례나 등장 한다. 또한 이사벨 여왕과의 계약 내용에서도 알 수 있듯이 가장 중요한 목적은 부의 축적이었다. 콜럼버스 는 총 4차례나 유럽에서 아메리카 대륙을 항해하였는데, 아메리카에 상륙한 것은 그 가운데 제1 항해의 일 이다.

제1회 항해의 출범은 1492년 8월 3일이었으며, 같은 해 10월 12일에 현재의 바하마 제도(Bahamas)에서 과 나하니 섬(추정)에 도달했고, 이 섬을 산살바도르(San Salvador, 구세주의 섬)이라 칭하였다. 이어서 그는 쿠 바·히스파니올라(아이티, Haiti)에 도달하여, 이곳을 인도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원주민을 인디언이라 칭하 였다. 이후 항해 도중, 산타마리아호가 파손되어 한 섬에 약 40명의 선원을 남긴 후에 에스파뇰라(Espaola, 후 스페인)라고 이름지었다.

제1회 항해 후 1492년 12월에 귀국하여 왕 부부로부터 ‘신세계’의 부왕으로 임명되었다. 제1회 항해 후 아 메리카에서 그가 가져온 금제품이 전 유럽에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콜럼버스의 달걀’이란 일화도 생겨났 다. 17척에다 1,200명의 대선단에 따른 제2회 항해(1493년)는 그의 선전에 따라 금을 캐러 가는 사람이 대 부분이었다.

히스파니올라에 남겨 두었던 식민지 개척자는 인디오의 저항으로 전멸해 버렸으나, 콜럼버스는 여기다 식 민지 행정관으로서 이사벨라 시를 건설하는 한편, 토지를 스페인인 경영자에게 분할해 주고 인디언에게는 공납(貢納)과 부역(경작과 금 채굴)을 명령하였다. 그러나 금의 산출량이 보잘것없자, 항해자들은 인디언을 학대·살육하였으며 노예화하였다. 이 항해에서 스페인으로 보낸 산물은 주로 노예였으며, 이 때문에 본국으 로 돌아오자(1496년) 문책당하였다.

제3회 항해(1498년 ~ 1500년)에서 트리니다드 토바고오리노코 강 하구(河口)를 발견하였다. 콜럼버스 는 제3회 항해에서 칼데아 신아람어히브리어에 능통한 선원 두 명을 데리고 갔다. 목적지인 남아시아에 다다르게 될 경우, 에덴 동산의 거주자들이 이 두 언어를 쓸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리 노코 강 하구를 에덴 동산의 관문이라고 착각했다. 하지만 신의 명으로 불꽃의 검을 들고 그곳을 지키고 있 는 케루빔이 자신의 배들을 공격하지 않을까 두려운 마음에 그 강을 거슬러 올라가지는 않았다. 제3회 항해 도중, 히스파니올라에서 내부 반란으로 그의 행정적 무능이 문제화하여 본국으로 송환되었다.

제4회 항해(1502년 ~ 1504년)의 허가는 바스쿠 다가마의 성공에 자극을 받은 것 때문으로 보이나, 그 사정 은 명백하지 않다. 이 항해에서 그는 온두라스파나마 지협(地峽)을 발견하고 귀국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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