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르기아스
- 소크라테스 일행이 칼리클레스의 집을 방문하다
- 고르기아스와 나눈 대화
- 고르기아스의 기술 : 수사학
- 수사학은 말하기이다
- 수사학은 설득과 힘이다
- 수사학적 설득의 기능
- 고르기아스적 수사학의 문제점들
- 폴로스와 나눈 대화
- 소크라테스의 수사학 비판 : 수사학은 환심을 사기 위한 아첨이다
- 아첨의 여러 가지 형태
- 힘에 대한 비판 : 연설가들과 참주들은 왜 힘이 약한가?
- 힘에 대한 비판 : 정의가 왜 이득과 행복을 확보하는 관건인가?
- 막간극 : 수사학적 논박과 문답적 논박
- 불의를 행하는 것이 불의를 당하는 것보다 더 나쁘다
- 처벌 받지 않는 것이 처벌받는 것보다 더 나쁘다
- 수사학은 친구들은 처벌받게 하되 적들은 처벌받지 않게 하는 데 써야 한다
- 칼리클레스와 나눈 대화
- 칼리클레스의 반론
- 자연의 정의와 법의 정의
-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 누가 더 훌륭하고 더 우월한가?
-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힘에 대해 칼리클레스가 노하다
- 소크라테스의 비판(1) : 물이 새는 항아리의 비유
- 소크라테스의 비판(2) 쾌락과 고통은 공존할 수 있으므로 쾌락주의는 거짓이다
- 소크라테스의 비판(3) : 쾌락주의가 진실이라면 용기와 지혜는 가치가 떨어질 것이다
- 칼리클레스가 쾌락주의를 포기하다
- 좋은 수사학과 나쁜 수사학의 구분 : 아첨으로서의 수사학 비판
- 좋은 수사학과 나쁜 수사학의 구분 : 혼 안의 질서와 정의
- 막간극 : 칼리클레스가 토론에서 발을 빼다
- 소크라테스가 행복은 절제와 정의에서 비롯된다고 주장을 요약하고 설명하다
- 힘 : 우리에게 가장 해로운 것을 물리치지 못하는 무능이야말로 가장 수치스럽다는 데 칼리클레스가 동의하다
- 힘 : 참주들이나 현 정권의 친구 되기
- 수사학 : 자기 보존이 목표라면 연설가에게는 아첨이 유일한 선택이다
- 정치학 : 정치가를 시험하는 진정한 시금석은 동료 시민들을 더 훌륭하게 만들었느냐이다
- 정치학 : 테미스토클레스, 페리클레스, 기타 아테나이의 유명 정치가들은 이 시험을 합격하지 못했다
- 정치가와 소피스트의 유사점
- 정치학 : 소크라테스야말로 아첨으로 연명하지 않는 아테나이의 하나뿐인 진정한 정치가이다
- 신화 : 사후 심판의 설화
- 신화 : 처벌이 혼에 이득이 되는 방법
- 신화 : 정치가들을 기다리는 운명과 철학자들을 기다리는 운명
- 소크라테스가 대화 내용 전체를 요약하다
작품 소개
소크라테스가 수사학이 무엇인가 정의해달라고 요청하자, 고르기아스가 정치가로서의 성공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조언하는 데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연설로 설득하는 요령을 터득하는 데 달려 있으므로, 수사학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인간사라고 말한다. 그래서 성공적인 연설가는 옳고 그르고를 떠나 무엇이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덧붙인다.
고르기아스가 토론에서 발을 빼고 그의 제자 폴로스가 토론을 이어받자, 소크라테스는 불의를 행하는 것보다는 불의를 당하는 것이 더 좋으며, 불의를 행했으면 처벌받지 않는 것보다 처벌받는 것이 좋다는데 그가 어쩔 수 없이 동의하게 만든다.
폴로스가 토론에서 발을 빼자 이번에는 칼리클레스가 토론을 이어받는데, 이 젊은이는 미덕과 행복은 만약 그럴 수만 있다면 법을 무시하고 권력 의지를 실현하는 데 있다고 주장한다. 두 사람의 대화는 갑자기 칼리클레스가 옹호하는 정치가의 활동적인 삶과 소크라테스가 대변하는 철학자의 삶 가운데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이냐 하는 토론으로 바뀐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철학자의 삶을 선택한 이유를 제시하는 과정에서 지난날 아테나이의 유명 정치가들이었던 테미스토클레스, 페리클레스, 밀키아데스 등의 업적을 깎아내리며 자신만의 동료 시민들을 도덕적으로 더 훌륭하게 만들었으니 자신이 아테나이의 하나뿐인 진정한 정치가라고 주장한다. 대화의 마지막에는 사후의 혼이 심판받는 설화가 나오는데, 불의를 행하지 말라고 거듭 권고하기 위해서인 것 같다.
- 법정 같은 대규모 집회장에서 군중을 상대로 진행하는 그런 종류의 설득이며, 그것은 정의나 불의와 관련한 것
- 수사학은 일종의 요령
- 모종의 쾌락과 즐거움을 생산하는 요령
- 수사학은 기술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어림짐작에 능하고 조금은 용감하며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재주를 타고난 혼이 활동 = 아첨
- 수사학은 정치학의 한 분야의 모방일 뿐. 수사학은 경멸스럽네(소크라테스 의견)
- 혼을 돌보는 기술을 나는 '정치학', 몸을 돌보는 기술에는 그처럼 한 가지 이름을 부여할 수 없습니다. 몸을 돌보는 겻은 체력단련과 의술, 정치학에서 체력단련에 대응하는 것은 입법, 의술에 대응하는 것은 사법
- 요리술. 의술은 분장한 아첨, 치장술은 체력단련으로 분장한 아첨
- 모든 것이 함께 한 곳에 뒤섞여 있을 것이라는 말이네. 의술과 건강과 요리술 사이에 아무런 구분이 없이. 수사학은 요리술이 몸과 관련있듯 혼과 관련있다네. 수사학은 아첨의 한 분야
- 그가 원하는 것은 자신의 행하는 행위가 아니라 그 행위의 목적이 되는 것
- 어떤 경우든 당하는 쪽은 행하는 쪽이 행하는 대로 당할 수 밖에 없다
- 재산, 몸, 혼 ⇒ 가난, 질병, 불의
- 불의를 행하고도 응분의 대가를 치르지 않는 것은 본성상 가장 나쁜 것이자 나쁨의 으뜸
프로타고라스
- 액자 대화
- 힙포크라테스가 소크라테스를 방문하다
- '소피스트란 무엇인가?' 소크라테스가 힙포크라테스와 토론하다
- 소피스트들이 칼리아스이 집에 모이다
- 프로타고라스가 자기 직업의 본성를 설명하다
- 소크라테스가 인간이 미덕은 가르칠 수 있는 것인지 묻다
- 프로타고라스의 일장 연설
- 프로메테우스와 에피메테우스의 신화, 그 의미를 예를 들어 설명하다
- 징계는 미덕이 가르칠 수 있는 것이라는 보편적인 신념을 반증한다
- 미덕은 특정 전문가가 아니라 아무나 가르칠 수 있는 것이다
- 프로타고라스가 자신의 주장을 정리하고 요약하다
- 소크라테스가 프로타고라스에게 질문하다
- 인간의 미덕은 부분들로 구성되는가? 그럴 경우 부분들은 어떤 종류의 것인가?
- 정의와 경건 : 그것들의 상호관계는 무엇인가?
- 지혜와 절제 : 그것들의 관계를 검토하다
- 정의와 절제 : 그것들의 관계를 검토하는 데 실패하다
- 토론 방법에 관한 막간극
- 시인들에 대한 비판
- 프로타고라스가 시모니데스의 시 한 편을 비판하다
- 소크라테스의 답변 : 언어학적 구분
- 소크라테스의 답변 : 스파르테 철학과 일곱 현인
- 소크라테스의 해석 : 좋은 것과 좋아지는 것
- 소크라테스의 해석 : 일부러 불의를 행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 시에 대한 논의를 그만두다
- 소크라테스가 좋음에 관해 프로타고라스와 다시 토론하다
- 프로타고라스와 나눈 토론의 최종 결론
- 지혜와 용기 : 프로타고라스의 견해를 검토하다
- 쾌락주의 : 프로타고라스와 대중의 견해들
- 지식의 힘
- 대중은 쾌락이 전제되는 견해들을 받아들인다
- 쾌락이 지식을 극복할 수 있다는 생각은 불합리하다
- 쾌락과 고통의 측량
- 쾌락과 고통의 잘못된 선택은 무지 탓이다
- 소피스트들이 마지못해 소크라테스의 주장에 동의하다
- 두려워할 것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것을 아는 것이 용기이다
- 요약 : 소크라테스와 프로타고라스의 입장이 뒤바꾸다
- 마지막으로 주고 받는 말
작품 소개
이 대화편에서는 소크라테스와 '인간이 만물의 척도'라는 명언을 남긴 소피스트 프로타고라스가 미덕은 무엇이며 어떻게 습득될 수 있는지에 관하여 토론한다. 미덕은 가르칠 수 있는 것이라는 프로타고라스의 주장을 놓고 소크라테스와 프로타고라스의 치열한 공방을 벌이다가 모든 미덕은 본질적으로 '좋음'에 대한 지식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따라서 미덕은 사실상 지식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대화 도중 두 사람은 '훌륭한 사람'을 찬양하는 시모데니스가 쓴 시 한 편을 분석한다.
이 대화편에서 프로타고라스는 토론에 성실하게 임하며 소크라테스가 가끔 던지는 신랄한 말에도 흥분하지 않는 차분하고 사리에 밝은 사람으로 등장한다. 그의 논의는 사려 깊고 상식에 근거하고 있는 반면, 소크라테스의 논의가 오리려 더 탐색적이며 때로는 역설적이기까지 하다. 범죄자를 처벌하는 것은 지나간 비행을 응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가 다시는 비행을 저지르지 못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는 프로타고라스의 주장은 주목할 만하다.
- 미덕은 단 하나의 자질이고, 정의 절제 경건은 미덕의 부분들
- 프로타로라스는 미덕은 단 하나의 자질이고, 그대가 묻고 있는 것들은 미덕의 부분들이오
- 정의란 올바른 것
- 정의는 경건하고 경건함은 올바른 것
- 아는 사람이 모르는 사람보다 더 대담하며, 아는 사람도 필요한 것을 배웠을 때 배우기 전보다 더 대담해지지요
- 대담성은 인간들에게 기술이나 분노나 광기의 결과물일 수 있지만, 용기는 타고난 본성과 혼의 적절한 계발의 결과물일 수 있기 때문이오.
- 즐거운 것은 즐거운 것인 한 그것에서 다른 어떤 것이 생기든 그 자체로 좋은 것이 아닐까요? 마찬가지로 고통스러운 것도 고통스러운 것인 한 나쁜 것이 아닐까요?
- '무지'란, 그릇된 의견을 갖고 중대사에 관해 잘못을 저지르는 것
이온
- 서두의 대화 : 소크라테스를 찾아온 이온
- 시인의 말과 사상을 이해하고 청중에게 풀어주는 음유시인
- 지식에 근거한 모방인가, 신성한 힘의 대변자인가
- 시 전반에 대한 기술과 전문지식의 결핍
- 신적인 영감에 의존하는 시인과 시인에게서 전달받은 것을 청중에게 전달하는 매개자인 음유시인
- 기술이나 전문지식 없이 모방하는 음유시인의 특성
작품 소개
'이온'은 소아시아 에페소스 시 출신 음유시인 이온이 아테나이에 갔다가 시의 본질에 관해 소크라테스와 나눈 짧은 대화편으로, '국가' 2권, 3권, 10권과 더불어 플라톤의 시론의 핵심이다.
소크라테스는 모방에 바탕을 둔 시적 진리의 불충분함을 비판하면서 "알지도 못하면서 멋진 말을 늘어놓는" 음유시인도 문제삼는다. 그는 철학자가 지식에 근거하여 사물을 탐구하는 것과 달리, 시인이 체계적인 지식 없이 신적인 영감을 받아 신들린 상태에서 작시한다고 주장한다.
소크라테스는 "신에 의해 정신을 빼앗긴" 시인들이 신의 말을 전하는 매개자라고 본다. 그의 자석의 예를 들어 설명한다. 시가의 여신이 시인에게 영감을 불어넣으면 그 영감은 시인을 통해 음유시인에게, 또 음유시인을 통해 청중에게 전달되는데, 그것은 마치 자석이 A라는 금속물체를 당기면 A를 통해 B라는 금속 물체도 당기고 B를 통해 C라는 금속 물체도 당기는 것과도 같다는 것이다.
이렇게 시인과 음유시인을 영감의 대변자로 인정하면서 이들을 지식과 진리의 관점에서 재조명한다. 호메로스가 어떤 주제에 관해서 말하는 것이 참되고 아름다운지에 대해서는 (건강에 관해서는 의사가, 항해에 관해서는 선장이 지식을 지니고 판정하는 것처럼)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제대로 판정할 수 있다. 그런데 특정한 기술은 다른 것과 다르고, 각 기술자는 자신이 기술을 알 뿐이므로, 그 누구도 모든 기술을 알 수는 없다. 그런데 시인이 모든 상황에서 모든 기술을 안다고 주장한다면, 이처럼 아는 체하는 시인은 사실상 무지한 자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시인과 청중 사이의 매개자인 음유시인도 모든 것을 알지는 못한다. 예를 들어, 장군으로서 대원들을 격려해야 할 때, 음유시인인 장군의 직무를 안다면, 그가 장군으로서 아는 것이 아니라 장군을 모방하는 자로서 알 뿐이다. 음유시인은 장군을 모방하는 말을 전달하고 그 말로 감동을 줄 수 있지만 그 자신이 장군일 수도 없고, 장군의 능력을 지닌 자도 아니다.
이런 맥락에서 이온이 호메로스를 찬양할 수 있는 것은 기술, 전문지식 덕분일 수 없다. 이런 이온은 스스로 원하는 것처럼 "호메로스에 관해 아름다운 것들을 많이 안다고 장담"할 수도 없다. 이런 비판에 직면해서 이온은 "호메로스에 사로잡혀서 알지도 못하면서 멋진 말을 늘어놓는 불의한 자"가 되지 않으려면 신적 영감의 매개자로 만족해야 한다. 이처럼 소크라테스는 지식의 관점에서 비극시인과 음유시인을 비판적으로 조명함으로써 비극과 대결하고 그것의 몰락을 예비한다.
크라튈로스 : 이름의 올바름에 관하여
- 이름의 올바름에 대한 두 주장
- 자연주의의 규약주의 비판
- 있는 것들의 본질
- 행위들의 본성과 이름을 부르는 행위의 본성
- 도구의 기능과 이름의 기능
- 장인으로서 도구를 만드는 자와 입법자
- 만들 때는 주목하는 것 : 형상
- 도구를 제작하는 자와 사용하는 자의 관계 : 입법자와 문답법에 능한 자의 관계
- 소크라테스의 주장을 요약함
- 어원에 대한 자연주의적인 설명과 규약주의 비판
- 호메로스의 작품에 나오는 이름들을 비롯한 인명과 신명 고찰
- 우주론의 어휘들을 통한 여러 이름들 고찰
- 윤리적 의미를 담은 이름들 고찰
- 최초의 이름들에 대한 고찰
- 자연주의에 대한 비판
- 이름과 사물 사이에 성립하는 모방 관계 : 올바르지 않는 이름과 거짓된 이름의 가능성, 이름은 사물을 완전히 모방할 수 없다, 규약주의의 부분적 필요성
- 이름을 알면 사물을 알 수 있는가?
- 만물유전설 비판과 형상이론
작품 소개
'크라튈로스'는 언어의 기원과 어원에 관한 대화편으로, 이름의 올바름이 관습적인 것인가, 아니면 사물의 본성(자연)에서 비롯되는 것인가 하는 문제를 다룬다.
이 문제에 대해서 크라튈로스는 자연주의를, 헤르모게네스는 규약주의를 내세운다. 크라튈로스는 있는 것들 각각에는 이름의 올바름이 자연적으로 있으며, 이름은 합의의 산물이 아니고, 이름의 올바름은 그리스인들과 이민족 모두에게 보편적으로 같다고 주장한다. 이에 맞서서 헤르모게네스는 이름의 올바름이 합의와 동의에 따르고, 어떤 것에 무슨 이름을 붙이든 그것은 올바른 이름이며, 이름이 자연적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규칙과 관습에 따른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이름의 올바름이 객관성과 보편성을 두고 서로 의견이 맞선다. 소크라테스는 중재자의 역할을 맡아서 두 견해의 난점을 차례대로 지적한다.
먼저 소크라테스는 헤르모게네스의 입장을 비판한다. 그는 상대주의에 바탕을 둔 프로타고라스의 '인간 각자가 만물의 척도'라는 주장을 비판한다. 각자가 만물의 척도라는 관점은 사물들이 각자에게 저마다 다르게 보인다고 주장하면서 사물들이 지닌 나름의 확고한 본질을 놓치고 만다.
소크라테스는 직조하는 북을 예로 들면서, 도구를 만드는 사람과 사용하는 사람이 있듯이, 이름의 경우에도 사용하고 가르침에 능한 사람(변증론자)과 그것을 만드는 기술을 지닌 입법자가 있다고 본다. 입법자는 이름을 만들 때, 북을 만드는 직공이 북의 형상에 따르듯이, 이름의 본성, 이름인 것 자체를 모델로 삼아서 그것을 자모와 음절로 구현한다. 그런데 도구를 만드는 자와 사용자의 관계에서처럼 이름이 형상을 제대로 구현한 것인지를 아는 사람은 변증론자이므로 이름을 붙이는 입법자는 그의 감독을 받아야 한다.
이런 주장에 동요하는 헤르모게네스가 이름의 본래적인 올바름이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을 요구하자 소크라테스는 호메로스나 시인들에게서 배우고자 제안하면서 호메로스의 말을 분석하면서 다양한 어원 설명하기 시작한다. 이 대화편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이 예들은 100여 가지가 넘는 이름들과 그보다 많은 어원들을 다룬다. 이런 설명은 대상들 각각이 무엇인지를 표현하는 고대 그리스 언어의 다양한 사례를 제시한다. 소크라테스는 호메로스의 작품에 나타난 사람의 이름들과 신들의 이름, 본성상 영원한 존재들인 지성적인 혼과 몸의 이름들을 비롯해서 천체들과 해들, 다양한 미덕들과 정서와 의지에 대한 이름들을 비롯한 참과 거짓에 관한 이름들, 복합적인 것을 이루는 단순한 '일차적인'이름들을 이루는 자모들이 무엇을 모방하는지를 살핀다.
이런 소크라테스의 논의는 대략적으로 크라튈로스의 입장을 지지한다고 볼 수 있지만 그는 자연주의까지도 비판한다. 이름이 사물을 모방한다고 할 때 올바른 이름뿐만 아니라 올바르지 않은 이름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름이 사물을 닮으려면 그것을 이루는 자모들이 본래의 사물과 닮아야 한다. 그런데 수처럼 사물과 닮지 않은 경우에 닮은 이름을 붙이기 위해서는 동의나 합의가 요구되므로, 이런 한계를 보완할 관습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
이어서 크라튈로스는 사물이 이름과 닮았으므로 이름을 알면 사물을 알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는 두 종류의 이름들, 곧 '정지' 쪽으로 이끄는 이름들과 '운동' 쪽으로 이끄는 이름들이 있고, 이 가운데 어느 쪽이 참된 이름들인지를 판정하려면 공통의 기준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에 대해서 소크라테스는 (이름이 아니라) '사물들 자체'가 기준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야만 있는 것들 자체를 통해서 있는 것들을 올바르게 배우고 이름 붙이는 방법이 마련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서 소크라테스는 크라튈라스가 지지하는 헤라크레이토스의 만물유전설을 검토한다. 그는 처음에 이름을 붙인 사람들이 '모든 것이 끊임없이 흐른다"고 생각하고 이름을 붙였지만, 모든 것이 끊임없이 변한다면 이름과 지식이 있을 수 없다고 비판한다. 그는 형상이 필요하다고 제안하면서, "언제나 같은 상태로 있고 동일한 것", 예를 들어서 '아름다운 것 자체'와 '좋은 것 자체'를 제시한다. 만일 이런 형상이 없고, 모든 것이 끊임없이 흐른다면, 어떤 X에 대해서 '이것'이나 '저것'으로 대화가 끝난다. 하지만 크라튈로스는 여전히 헤라클레이토스주의를 버리지 않는다.
이 대화에서 소크라테스가 자신의 결론을 제시하지 않기 때문에 두 이론 가운데 어느 쪽을 지지하는지가 분명하지 않다. 소크라테스가 언어와 관련해서 자연주의자인지, 그가 자연주의와 그 반대 입장을 넘어서는 종합을 추구하는지에 대해서 수많은 논란이 발생하고 다양한 해석들이 엇갈린다.
- 사물에는 본래의 이름이 있으며, 누구나 다 이름의 제작자가 아니라 각 사물의 본래 이름에 주목해 그것의 형상을 문자와 음절에다 구현할 수 있는 사람만이 이름의 제작자라는 그의 주장 말일세
- 헤라클레이토스 "만물은 움직이며 머물러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대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 "만물은 유전한다"
- "누가 작은 것에 작은 것을 보탠다 해도 그것은 유익한 일이지" 헤시오도스의 말
소피스트
- 서두의 대화
- 낚시꾼을 예로 들어 분리의 기술을 정의하다. 일곱 가지의 분리 기술로 소피스트를 정의하다
- 분리 (1) : 소피스트는 사냥꾼이다
- 분리 (2~4) : 소피스트는 장사꾼이다
- 분리 (5) : 소피스트는 논쟁꾼이다
- 분리(6) 정화, 모음과 나눔의 방법들
- 모상
- 모상은 닮은꼴과 환영으로 나뉜다
- 사실은 그렇지 않으면서 그렇게 보이는 것들의 문제점들
- 존재하지 않는 것
- 거짓말과 거짓 믿음의 문제
- 존재하는 것. '존재하는 것'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 존재하는 것은 단일하고 나눌 수 없으며 불편한다는 파르메니데스의 주장에 대한 비판
- 신들과 기가스들의 전쟁, 관념론자들과 유물론자들
- 관념론자들은 존재하는 것은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 관념론자가 말하는 '존재하는 것'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 어떤 형상들은 서로 결합하고 어떤 형상들은 결합하지 않는다
- 철학적 담론의 특징
- 변증술에 대한 설명. 형상들의 세계의 구조
- 가장 중요한 형상 세 가지를 예를 들어 설명한다 : 존재, 운동, 정지
- 또 다른 두 형상 : 같음과 다름
- 다섯 가지 형상을 포함하는 참말을 검토해보면 '존재하는 것'이 어떤 의미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참말도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존재하지 않는 것'이 어떤 의미에서는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참말도 얼마든지 있다
- '존재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도 존재하지 않을 수 없으며, '존재하지 않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도 존재할 수 없다는 파르메니데스의 주장은 이로써 반박되었다
- 모든 말은 이질적인 요소들인 명사와 동사의 결합이다
- 모든 말은 어떤 것에 관한 것이고, 참말이거나 거짓말이다
- 참말의 정의
- 거짓말의 정의
- 생각은 입 밖에 내지 않은 말이다. 그러니 잘못 생각하는 것과 사실은 그렇지 않으면서 그렇게 보이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 분리 (7) : 결론적으로 소피스트는 일종의 모상제작자다
작품 소개
플라톤은 대화편 '테아이테토스'에 이어 '소피스트'에서도 엘레아학파가 제기한 문제들과 씨름한다. 주 대담자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는 엘레아학파 철학자와 소년 철학도 테아이테토스이고, 소크라테스와 테오도로스는 사실상 듣기만 한다.
이 대화편은 소피스트를 정의하는 일로 시작하낟. 그 끝에 소피스트가 말하는 것은 '거짓'인가, '거짓' 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 존재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되는데, 엘레아학파는 '존재하지 않는 것' 또는 "거짓'은 존재할 수 없다. 이 대화편은 만물은 '다름'이라는 형상에 관여할 수 있으며, '존재하지 않는 것'은 사실 '존재하는 것'의 반대가 아니라 '존재하는 것'과 다른 것이라는 논리로 이 문제를 해결한다. 그리하여 플라톤은 거짓말과 거짓 생각이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음을 증명한다.
- 거짓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논리는 대담하게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것
정치가
- 소크라테스와 그를 닮은 사람들
- 정치학은 지식 중에서도 실천적이 아니라 이론적인 지식에, 이론적인 지식 중에서도 '판단하는 부분'이 아니라 '지시하는 부분'에 속한다
- 정치가는 동물들 중에서도 인간 무리에게 지시하는 사람이다
- 우주의 역주행
- 정치가를 다시 정의하다
- 직조술을 예로 들어 통치술을 설명하다
- 측정술
- 국가에 필요한 여러 가지 기술
- 올바른 정체
- 법에 대한 비판
- 법의 문제점
- 왕의 경쟁자들
- 미덕은 미덕과 대립할 수 있다
- 통치술이라는 직조술
작품 소개
이 대화편은 철인 왕이 다스리는 이상 국가는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탐색한다. 마치 직조공이 모든 준비 과정을 거쳐서 날실과 씨실을 엮어 천을 짜듯, 이상적인 치자는 국가의 하부 기관들을 통할하여 모든 시민이 최대한 행복해질 수 있도록 정치라는 천을 짜야 한다. 시민들의 행복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이나 특정 집단의 이익을 추구하는 치자는 당파싸움을 일삼는 사이비 정치꾼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상적인 치자를 찾을 수 없을 때는 시민들이 되도록 법을 어길 수 없도록 세심하게 입법하는 것이 차선책이다.
'정치가'는 '국가', '법률'과 함께 플라톤의 정치철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 소수가 국가를 지배하는 정체도 경우에 따라 귀족정치 또는 과두정치
- 민주주의는 대개 이름을 바뀌지 않네. 민주주의 대중이 부자들을 강압적으로 지배하든, 동의를 받고 지배하든 법을 엄격히 지키든 지키지 않든, 언제나 '민주주의'라고 불리니까
언어에 반복에 따른 서로 논쟁이 다소 지루하고 읽으면서도 앞의 문장이 헤갈리게 만든다. 역시 플라톤의 책은 조금 더 신중하고 생각하면서 읽어야 하는 것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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