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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문학

데미안(필사본)1 헤르만헤세

by 비사벌 2024. 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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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 안에서 솟아 나오려는 .

그것을 살아 보려 했다.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이야기를 시작하자면, 아주 오래전부터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되도록이면 아주 오래전 유년 시절의 처음까지. 아닌, 아득한 나의 근원까지 되돌아 가야 한다.

작가들은 소설을 마치 자신이 하느님이라도 것마냥 누군가의 인생을 휜히 내려다보는 것처럼 아는 체를 한다. 그러고는 하나님이 직접 이야기하듯 어느 대목에서나 감춰진 하나 없이 핵심을 보여 있는 굴곤 한다. 나는 그럴 없다. 작가들 역시 그래서는 된다. 어떤 작가든지 자신의 이야기가 중요하겠지만, 이야기는 내게 그보다 중요하다. 자신의 이야기이자 인간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소설가가 가공해 인물이나 있을 법한 혹은 이상적인 인물, 어떤 형태로든 존재하기 힘든 그런 인간의 이야기가 아니다. 뿐인 인생을 살고 있는, 아주 현실적인 살아 있는 인간의 이야기다.

현실적으로 살아 있는 인간이란 무엇인가. 아무튼 요즘은 어느 때보다도 혼란스러워져 버렸다. 번뿐인 귀한 사람의 목숨을 무더기로 쏘아 죽이기도 한다. 뿐인 귀한 목숨이 아니라면, 우리들의 존재가 총알 하나로 세상에서 완전히 지워진다면, 이야기를 내려갈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저마다 사람은 자기 자신일 뿐만 아니라, 사람일 뿐이며 어떤 상황에서도 주목할 만한 존재 자체다. 세상의 많은 현상이 오로지 곳에서 교차되고 다시 반복되지 않는 것과 같다. 또한 저마다 살면서 어떻게든 세상에서 뜻을 펼치고 있다는 점에서 각자의 이야기가 중요하고 영원하며 숭고한 것이다. 인간 누구든 신의 피조물로서 괴로움을 느끼며 십자가에 매달린 명의 구세주와 함께 살아간다.

오늘날, 인간이란 존재가 무엇이낙 아는 사람은 적다. 그것을 많은 사람이 느끼고 있기는 해도 느낀 만큼 쉽게 죽어 간다. 역시 이야기를 쓰고 나면 그렇게 것이다.

나를 지식인이라 수는 없다. 나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찾고자 하는 사람이었고 지금고 그렇다. 하지만 이제는 별을 바라보거나 책을 들춰 보며 찾지 않고, 단지 안의 피가 내는 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이야기는 즐겁지 않고, 만들어진 이야기처럼 달콤하거나 조화롭지 않다. 그대신 무의미함과 혼란, 광기 그리고 꿈이 맛이 난다. 마치 자신을 속이며 살지 않겠다는 모든 사람들의 삶처럼 말이다.

저마다 삶은 자아를 향해 가는 길이며, 길을 추구해 가는 것이다. 자기 자신에게 도달하고자 끊임없이 추구하는 좁은 길을 암시한다. 지금껏 어떤 사람도 완전히 자기 자신이 되어 적이 없었음에도 누구나 자기 자신이 되려고 애쓴다. 어떤 이는 모호하게, 어떤 이는 투명하게, 누구든지 나름대로 최선의 노력을 한다. 누구나 출생의 찌꺼기, 태고의 점액과 알껍데기를 삶의 끝까지 갖고 간다. 더러는 전혀 사람이 되지 못한 개구리에 그쳐 버리고, 도마뱀에 그쳐 버리고, 개미에 그쳐 버린다. 더러는 상체만 사람이고 아래는 물고기인 채로 남기도 한다. 하지만 모두가 인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세계가 던진 돌이다. 그리고 모든 사람은 같은 협곡에서 나오고, 어머니가 같고, 유래가 같다.

우리는 같은 심연에서부터 시작된 시도이고 투척이다. 하지만 자신 나름대로 목표를 실천하면 노력한다. 우리가 서로를 이해할 있지만, 삶의 의미는 자기 자신만이 판단할 있다. 

 

 

세계

고향에서 라틴어 학교를 다니던 때의 경험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그때는 추억들이 진하게 밀려들어 가슴을 파고 들며 슬픔과 즐거운 전율로 마음을 뒤흔든다. 어두컴컴한 골몰길과 환한 건물, 교회 탑들과 시계 소리, 사람들의 얼국과 아늑하고 따뜻한 , 비밀에 둘러싸여 유령이 나올 같은 공포로 가득한 방들, 따뜻하고 비좁은 방과 토끼와 하녀들의 냄새, 집에서 달이는 냄새와 말린 과일 향이 난다. 그곳엔 세계가 얽혀 있었고, 밤과 낮이 세계의 양쪽 끝에서부터 나왔다.

세계는 아버지의 집이었다. 그러나 세계는 비좁아서 그곳에서 오직 부모님만이 살고 있었다. 내게 너무도 익숙한 어머니와 아버지라를 이름의 세계는 사랑과 엄격함, 모범과 학교라는 이름의 세계이기도 했다. 세계에 속하는 것은 부드러운 광채, 청명함과 깨끗함이었다. 여기에도 부드럽고 친절한 이야기들, 깨끗이 씻은 , 깔끔한 , 좋은 예의범절이 깃들어 있었다. 아침에는 찬송가를 불렀으며, 크리스마스 파티가 열리는 세계였다. 세계에는 곧바로 미래로 통하는 곧은길이 있었고, 의무와 책임, 양심과 가책과 고해, 용서와 좋은 목적들, 사랑 그리고 존경, 성경 말씀과 지혜가 있었다. 인생이 맑고 명확하여 아름답게 정돈하여 있으려면 세계를 향해야만 했다.

한편 다른 세계가 이미 우리 한복판에서 시작되고 있었는데, 이것은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냄새도 달랐고, 말투도 달랐고, 기대하고 요구하는 것도 달랐다. 번째 세계에는 하녀들과 직공들이 속했고, 유령 이야기와 추한 소문이 있었다. 그곳에는 섬뜩하고 요사스럽고 끔찍한 수수께끼 같은 일들이 넘쳤고, 도살장과 감옥, 주정뱅이들과 고함치는 여자들, 새끼 낳는 암소, 쓰러진 말들, 강도, 살인, 자살 같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아름답고도 무서운, 거칠고 잔인한 이러한 모든 일이 바로 주위에, 골목에, 이웃집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경찰과 불량배들이 거리를 돌아다녔고, 주정뱅이들이 아내를 팼고, 저녁이면 젊은 여자들이 공장에서 쏟아져 나왔다. 늙은 여인들은 주술을 걸어 누군가를 병이 나게 있었고, 숲에는 도둑들이 살았으며, 방화범들이 경찰에게 잡히기도 했다. 어디서나 격렬한 번째 세계가 넘쳐 나고 악취를 풍겼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계시던 우리 집만 빼고, 참으로 다행이었다. 우리 집에 평화와 질서와 안정, 의무와 책임, 용서와 사람이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리고 많은 다른 것들, 소란스럽고 요란한 , 어둡고 폭력적인 것이 가득한 곳에서 한걸음에 어머니 품으로 도망칠 있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세계의 경계가 가깝게 닿아 있다는 사실이었다. 세계가 얼마나 가까운지! 예를 들면 우리집 가정부 리나는 저녁 예배를 드릴 거실 문가에 앉아 깨끗하게 씻은 손을 다림질 앞치마 위에 올려놓고 맑은 목소리로 같이 찬송가를 불렀는데, 그럴 리나는 아버지와 어머니와 우리들의 밝고 올바른 세계에 속했다. 하지만 부엌이나 장작을 쌓아 광에서 머리 없는 난쟁이 이야기를 내게 들려주거나 작은 푸줏간에서 이웃집 여인들과 싸울 다른 세계의 사람이 되어 다른 어두운 세계에 속해 있었다. 모든 비밀에 둘러싸여 있었다. 특히 자신이 그랬다. 분명 나는 밝고 올발른 세계에 속했고 부모님의 자식이었다. 그러나 눈과 귀가 향하는 어디에나 다른 세계가 있었다. 나는 다른 세계 속에서도 살고 있었다. 비록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불안함을 느끼면서도 내가 한동안 살고 싶었던 곳은 그런 금지된 세계였다. 그래서 밝은 세계로 귀환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고 옳은 일인데도 마치 아름답지 않고 지루하며 무미 건조한 세상으로 돌아가는 것만 같았다. 물론 인생의 목표가 우리 부모님처럼 밝고 맑고 훌륭하고 절도 있게 되는 것임을 알고 있었지만, 거기까지 이르는 길은 너무 멀었다. 거기까지 가기 위해선 학교 생활을 견디고 공부를 해야 했으며 온갖 시험을 치러야 했다. 하지만 길은 다른 어두운 세계의 옆이나 한가운데로 이어져 있어서, 어두운 세계에 머무르거나 어쩌면 안으로 빠져 버릴 수도 있는 일이었다. 어둠의 세계로 빠져 버린 방탕아들이 아버지에게로, 선한 것의 품으로 돌아오는 귀환은 언제나 구원받을 있는 위대한 방법이었다. 나는 그것만이 옳고 바람직하다고 느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악당들과 방탕아들에 관련된 일들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어떤 때는 방탕아가 참회를 하고 다시 밝은 생활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그야말로 불만스럽게 여겨졌다. 어둠의 세계를 떠올리며 나는 종종 악마를 상상했다. 악마는 변장을 하고 본래의 모습을 숨기면서 우리 집이 아닌 길거리나 시장, 술집 어딘가에 있으리라 막연히 생각했었다.

이런 생각들을 가진 나와 달리, 누나들은 밝은 세계에 완벽하게 속해 있었다. 눈에 누나들은 나보다 휠씬 , 본질적으로 아버지와 어머니와 가까운 보였다. 나보다 착하고 도덕적이었으며, 나쁜 점이 없었다. 물론 누나들도 부족한 부분과 나쁜 버릇이 있었지만 그렇게 심각하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어두운 세계에 휠씬 가까이 있어서 악과 대면하는 것이 너무나 힘들고 괴로웠던 나와는 달랐다. 누나들은 부모님처럼 칭찬받고 존중받을 자격이 있었다. 누나들과 다튔을 때에도, 시간이 흐른 뒤에 양심적으로 되돌아보면 내가 나빴기 때문에 용서를 빌어야 하는 것도 언제나 나였다. 누나들을 모욕하는 것은 부모님을, 선과 도덕을 모욕하는 일이었다. 내가 가깝게 지낸 타락한 부랑아들은 누나들에 비하면 같이 지내는 시간은 많지 않았지만, 나눌 있는 비밀이 오히려 많았다. 세상이 밝고, 양심에 거리낌 없이 기분 좋은 날에는 누나들과 훌륭하고 품위 있게 같이 놀면서, 속에 착하고 귀한 자신의 겉못습을 때면 뿌듯했다. 천사라면 분명히 그랬을 것이다! 천사가 된다는 , 우리가 알던 중에 최고이고, 달콤하고 경이로운 일이었다. 밝은 음악과 향기 속에 있는 크리스마스의 행복처럼 내가 천사같이 굴었었던 날은 매우 드물었다. 나는 가끔 우리들에게 허락된 어린아이다운 좋은 놀이를 하다가도 못된 성질을 참지 못해 누나들에게 싸움을 걸었다. 그러다 화가 치밀면 스스로의 화를 참아 닥치는 대로 말과 행동을 하고, 내가 생각하기에도 너무한 폭언을 내뱉기도 했다. 그런 후에는 초라하고 어두운 후회로 가득 차서 보내는 시간이 왔다. 그다음에는 용서를 빌어야만 하는 고통스러운 순간이 찾아오고, 후에야 다시 밝은 빛줄기가 내리고 갈등 없는 조용하고 고마운 행복이 시간 혹은 짧은 순간 돌아오곤 했다.

나는 라틴어 학교에 다녔다. 우리 반에는 시장의 아들과 산림관의 아들이 있었는데, 가끔 우리집에 놀러 오곤 했다. 둘다 난폭한 사내아이긴 했지만 선하고 안정된 세계에 속했다. 그럼에도 나는 같은 친구들이 경멸하던 공립 학교에 다니는 이웃 아이들과 가까운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들 명에 과한 이야기를 지금 시작하려 한다.

어느 수업이 없던 오후 - 번째 생일이 지났을 무렵이었다.-나는 근처를 친구와 배회하고 있었다. 그때 덩치 아이가 다가왔다. 열세 살쯤 되어 보이는, 힘세고 난폭한 공립 할교 남학생니 프란츠 크로머였다. 애의 아버지는 재단사 일을 하는 술주정뱅이이였으며, 가족 모두 평판이 좋지 않았다. 나는 프란츠 크로머를 알고 있었고, 애가 무서웠다. 애가 우리들 사이로 불쑥 껴들자 꺼림직한 기분이 들었다. 애는 벌써 어른스러운 티가 났고, 젊은 직공들의 걸음걸이와 말투를 흉내 내고 있었다. 우리는 애가 시키는 대로 다리 옆에서 강가로 내려갔고, 발로 다리 기둥 밑에 있는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장소로 갔다. 아치형의 다리 기둥과 천천히 흐르는 강물 사이의 강가는 온통 쓰레기, 유리조각, 녹슨 철사 줄과 그밖에 다른 잡동사니들로 지저분했다. 물론 그중에서는 가끔씩 만한 물건들을 발견할 수도 있었다. 우리들은 프란츠 크로머가 시키는 대로 주변을 샅샅이 뒤져 찾아낸 것을 보여야 했다. 그러면 애는 그중에서 물건을 골라 자기 호주머니에 집어넣거나 강물에 던져 버렸다. 크로머는 우리들에게 , 구리, 주석으로 물건이 없는지 살피도록 했고 그런 것은 모두 자기 호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뿔로 낡은 빗도 챙겨 넣었다. 애와 함께 있는 내내 마음은 몹시 조마조마했다. 아버지가 아셨다면 분명 애와이 만남을 말리실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프란츠 크로머가 무섭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한편 애가 나를 한패로 생각해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대해 주는 것이 기뻤다. 애는 명령했고 우리는 복종했다. 그것은 마치 오래전부터 오던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애와 함께 어울리는 일이 처음인데도 말이다.

마침내 우리는 땅바닥에 앉아 쉬었다. 크로머는 어른처럼 강물에다 잇새로 침을 뱉었는데, 원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맞혔다. 크로머가 이야기를 시작하자 친구들은 우리 또래의 학생이 저지를 있는 온갖 허풍과 나쁜 짓들을 자랑삼아 떠들어 댔다. 나는 말없이 있었지만 침묵이 크로머의 신경을 거슬리게 하지는 않을까 두려워했다. 함께 있던 친구는 처음부터 내게 떨어져 크로머에게 붙었고, 나는 그들 사이에서 무리에 섞이지 못하는 이방인이었다. 내가 입고 잇는 옷이나 나의 태도가 아이들에 눈에 거슬리게 느껴질 수도 있었다. 라틴어 학교 학생에 좋은 집안의 아들인 나를 프란츠 크로머가 좋아할 없었다. 친구들도 여차하면 내가 골탕을 먹어도 체할 거라는 알고 있었다. 그것이 두려운 나머지 나는 황당무계한 이야기를 꾸며 대기 시작했다. 대담한 도둑 이야기를 꾸며 냈는데, 영웅적이 도둑이 바로 자신이었다. 변두리 물방앗간 과수원에서 어느 친구와 사과를 자루나 훔쳤는데, 그것도 흔한 사과가 아니라 라이네테와 골드파르메네 같은 최고급 사과였다고 거짓말을 했다. 나는 순간의 어색함을 모면하기 위해 거짓 이야기 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나는 거짓말을 곧잘 그럴듯하게 들리게 했다. 말이 금방 그치면 난처한 일이 생기지 않을 하는 조바심에 온갖 기교를 부렸다. 명이 나무 위로 올라가 사과를 던지는 동안 다른 사람은 밑에서 망을 보아야 했는데, 번에 들지 못할 정도로 자루가 너무 무거워 반만 가져왔기 때문에 삼십 분쯤 뒤에 다시 가서 나머지를 가져와야 했다고 이야기했다.

이야기를 끝냈을 나는 박수를 기대했다. 그만큼 내가 꾸며 이야기에 스스로 도취했던 것이다. 친구는 상관없다는 무표정했지만 크로머는 반쯤 실눈으로 날카롭게 나를 쏘아보더니 위협하는 투로 물었다.

이야기 정말이야?”

정말이야.”

내가 말했다.

정말로 그런 짓을 했단 말이지?”

그럼, 진짜로 있었던 일이야.”

나는 단호하게 대답했지만 속으로 불안해서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맹세할 있어?”

나는 깜짝 놀랐지만 그렇다고 말할 밖에 없었다.

그럼 맹세해! 하느님의 이름으로!”

결국 나는 외쳤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렇단 말이지.”

그러더니 크로머는 몸을 돌렸다.

이걸로 일이 끝났다고 생각했던 나는 크로머가 조금 돌아가자고 말하자 기뻤다. 다리 위에 이르렀을 나는 머뭇거리며 이제 집에 가야 한다고 말했다.

집에 가는 그렇게 서둘를 필요는 없어.”

크로머가 웃으며 말했다.

우리 가는 길이 같잖아.”

애가 천천히 걸었는데도 나는 도망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애는 우리 집족으로 향하고 있었다. 우리 집의 대문과 묵직한 구리 손잡이, 햇빛이 반사된 창문, 어머니 방의 커튼이 보이자 나는 저절로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집으로 돌아왔구나! 밝고 평화로운 세계로 돌아갈 있다는 것은 얼마나 좋은 일인가!

재빨리 문을 열고 살짝 들어가 문을 닫으려는 참이었는데, 프란츠 크로머가 뒤따라 문을 밀치고 들어왔다. 문밖의 마당에는 햇빛이 들어왔다. 빛이 들어오지 않는 서늘하고 침침한 타일 복에서, 크로머는 나의 팔을 붙잡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 그렇게 서두르지 !”

나는 깜짝 놀라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팔을 잡은 애의 손은 무쇠처럼 단단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나를 괴롭히겠다는 건다. 지금 내가 소리를 지르면 어떨까 생각해 보았다. 요란하게 소리를 누군가 제때 달려 나와 나를 구해 있을 ? 그러나 나는 체념했다.

어쩌겠다는 거야?”

내가 물었다.

별거 아냐, 잠깐 너한테 물어보려는 것뿐이야. 다른 사람들은 들을 필요 없는 말이야.”

그래? 도대체 나한테 무슨 이야기를 하라는 거야? 올라가 봐야 . 알잖아?”

너도 알고 있겠지. 물방앗간 과수원이 누구네 것인지?”

크로머가 나직히 말했다.

아니, 몰라. 물방앗간 주인 거겠지.”

크로머가 한쪽 팔을 어깨에 두르더니 몸을 자신에게로 바싹 끌어당겼다. 때문에 바로 코앞까지 애의 얼굴이 다가와 있었다. 심술궃은 눈은 음흉한 웃음을 띠고 있는 얼굴에는 잔인한 기운이 넘쳤다.

그래? 그럼, 과수원이 누구네 것인지 내가 말해 주지. 집이 사과를 도둑맞고 있다는 오래전부터 알았어. 게다가 주인이 훔쳐 사람을 말해 주는 사람한테는 2마르크를 주겠다고 했던 것도 알고 있지.”

, 맙소사!”

나는 소리쳤다.

그렇지만 설마 네가 주인에게 말하겠다는 아니겠지?”

나는 애의 양심에 호소하는 아무 소용없다는 확실히 느꼈다. 애는 다른 세계에 살고 있었고, 애에겐 배신 따위는 죄책감을 느낄 만한 일이 아니었다. 이런 일이 다른 세계의 사람들은 우리들과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무슨 말을 하지 말라고?”

크로머가 웃었다.

이봐, 내가 2마르크를 만들어 있는 화폐 위조범이라도 된다고 생각하니? 가난뱅이야. 너처럼 부자 아버지도 없으니, 2마르크를 있는 이런 기회를 놓칠 있나. 어쩌면 주인이 조금 줄지도 모르는데.”   

그러더니 갑자기 나를 놓주었다. 우리 현관은 이상 평화와 안전의 향기가 나지 않았고, 나를 감싸던 세계가 무너졌다. 애가 주인에게 내가 도둑이라고 일러바치겠지, 아버지께도 말할 테고, 어쩌면 경찰이 잡으러 올지도 모르지. 모든 혼돈한 공포가 나를 위협해 왔다. 세상에 존재하는 갖가지 위험이 나에게 맞서고 있었다. 내가 도둑질을 하지 않았다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나는 맹세까지 하지 않았던가! , 이럴수가, 하나님 맙소사!

눈물이 돌았다. 애게게 돈을 주고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자, 절망감에 빠져서 모든 호주머니를 샅샅이 뒤졌다. 내게는 사과 하나, 자루도 없었다. 그때 문득 시계 생각이 났다. 낡은 은시계, 은시계는 할머니의 것이었는데, 고장이 나서 기능을 하지 못했고 할머니는 상태 그대로 나에게 물려주셨다. 나는 재빨리 시계를 꺼냈다.

크로머, 제발 나를 고발하지 말아 . 그건 너한테도 좋은 없어. 내가 시계를 줄게. , . 정말 가진 없어서 그래. 시계를 가져, 은으로 거야. 내부 장치도 고급이야. 고쳐야 되긴 하지만.”

나는 말했다.

애는 웃으며 시계를 손안에 받아 쥐었다. 손을 보며 나는 그애의 손이 얼마나 난폭한지, 얼마나 나에게 깊은 적개심을 갖고 있는지, 삶과 평화를 파괴하려 하는지 확실히 느꼈다.

그거 은시계야.”

나는 떨면서 말했다.

낡아 빠진 은시계가 무슨 소용이야. 너나 고쳐서 .”

경멸로 가득 말투였다.

하지만 크로며.”

나는 애가 바로 버리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떨면서 소리쳤다.

잠깐만 기다려 . 시계를 받아! 정말 은이야, 은이라고. 진짜야. 가진 이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어.”

애는 싸늘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래, 내가 누구에게 가려는지 알긴 아는구나. 경찰에 가서 말할 수도 있어. 순경들을 알거든.”

애는 몸을 돌려서 가려고 했다. 나는 애의 소매를 붙잤았다. 그대로 가게 두어선 됐다. 애가 이대로 버릴 경우 일어날 온갖 일들을 껵느니 차리리 죽어 비리는 편이 휠씬 나을 것이다. 나는 초조한 나머지 목소리로 애걸했다.

크로머, 바보 같은 하지마! 농담이지?”

물론 농담이야, 하지만 비싼 대가를 치러야 거야.”

크로머, 내가 어떻게 하면 되겠니? 말을 해봐. 내가 있는건 뭐든지 할게.”

애는 눈을 내리깐 나를 아래위로 바라보더니 다시 웃었다.

그렇게 멍청하게 굴지 !”

애는 선심이라도 쓴다는 태도를 말했다.

너도 나처럼 휜히 알고 있잖아. 나는 2마르크를 있는 거야. 그리고 그걸 쉽게 포기할 만큼 부자도 아니고. 그건 너도 알겠지. 하지만 부자야, 시계도 갖고 있잖아. 내가 2마르크만 주면 . 그러면 끝이지.”

말을 이해했다. 그러나 2마르크라니! 그건 나에게 10마르크나 100마르크, 1000마르크와 마찬가지로 손에 닿을 없는 큰돈이었다. 나는 돈이 없었다. 어머니에게 맡겨 놓은 조그만 저금통이 있지만, 속에는 아저씨가 오셨을 비슷한 다른 기회에 받은 10페니짜리와 5페니짜리 동전 개가 들어 있을 뿐이었다. 그것 말고는 가진 것이 없었다. 나는 용돈을 받을 없는 어린 나이였다.

가진 없어. 정말 돈이 푼도 없어. 하지만 다른 물건이라면 얼마든지 줄게. 인디언 책과 병정들과 나침반도 있어. 그걸 가져다 줄게.”

내가 슬프게 부탁했다.

크로머는 다만 입술을 심술궃게 씰룩거리다 바닥에 침을 뱉었다.

웃기지 ! 내게 고물 잡동사니들을 주겠다고? 나침반이라고! 이상 화나게 만들지 말고 돈을 가져와!”

애는 명령하듯 말했다.

하지만 정말 돈이 없는걸. 돈을 구할 수가 없어. 장말 어쩔 없단 말이야.”

내일까지 여유를 테니, 내게 2마르크를 가져와. 학교가 끝나고 아래 시장에서 기다릴께. 그러면 되는 거야. 돈을 가지고 오면, 그땐 알지!”

그렇지만 어디서 돈을 가져오란 말이야? 하나님 맙소사, 돈이 없는데.”

너희 집에는 돈이 충분히 있잖아. 다음은 네가 알아서 일이야. 그럼 내일 학교 끝나고 보자. 알았지? 돈을 가지고 오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지….”

애는 무서운 눈빛으로 나를 쏘아보고, 침을 뱉고는 그림자처럼 사라졌다.

나는 계단을 올라갈 없었다. 나의 삶은 산산조각이 버렸다. 이대로 도망쳐 다시는 돌아오지 않거나 물에 빠져 죽어 버릴까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생각들을 실행할 확신이 서지 않았다. 어둠 현관 아래 계단에 웅크리고 앉아 불행에 몸을 맡기고 있을 뿐이었다. 장작을 가지러 광주리를 들고 내려오던 리나가 앉아 우는 나를 보았다.

나는 리나에게 식구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고 방으로 올라갔다. 유리문 옆의 옷걸이에는 아버지의 모자와 어머니의 양산이 걸려 있었다. 부모님의 물건들을 보니 우리 집의 분위기와 애정이 나에게 밀려들었다. 내마음은 세상 모든 것에서 버림받은 방탕아가 그립던 고향에 있는 자신의 방에 돌아와 방의 향기를 맡을 때처럼 애틋함과 감사함으로 가득 찼다. 그러나 모든 것은 이제 것이 아니었다. 모든 것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밝은 세계였으며, 나는 죄를 한껏 짊어진 낯선 홍수 속에 깊숙이 잠겨 있었다. 모험과 죄악에 얽혀서 협박을 받은 나를 기다리는 것은 위협과 불안과 치욕뿐이었다. 모자와 양산,  오래된 사암이 깔린 고급 바닥, 장식당 위에 걸린 커다란 그림, 안방에서 들려오는 누나의 목소리, 모든 것이 어느 때보다도 사랑스럽고 소중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미 이상 그런 것들은 내게 위로가 없었으며, 확실히 것도 아니었다. 오로지 질책일 뿐이었다. 나는 밝고 고요한 세계에 끼어들수가 없었다. 나는 구두에 더러움을 묻혀 왔다. 발깔개에 문질러도 지워지지 않는 더러운 . 나는  우리 집의 세계에 전혀 없는 그림자를 몰고 왔다. 지금까지 수많은 비밀과 불안을 가졌다 해도 오늘 내가 가져온 것에 비하면 모두 장난이나 웃음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운명이 뒤쫓아 내게 손을 뻗쳤다. 운명의 손아귀에서 어머니조차도 나를 구해 없고, 어머니가 내가 처한 상황을 알아서도 되었다. 죄가 도둑질이든 거짓말이든-나는 하나님의 이름을 걸어 거짓 맹세를 하지 않았던가?-그런 이런저런 문젯거리도 아니었다. 나의 죄는 내가 악마에게 손을 내밀었다는 사실 자체였다. 나는 애를 따라갔을까? 아버지 말을 순종하는 이상으로 크로머를 따랐을까? 그따위 도둑질 이야기를 꾸며 대고, 영웅이 것마냥 으스댔을까? 악마가 손을 잡고 있고, 이제 적이 뒤를 쫓고 있다.

한순간 나는 앞으로 닥쳐올 공포보다, 앞길이 점점 내리막으로 향하다가 마침내는 암흑으로 빠져 들어갈 것이라는 확신에 몸을 떨었다. 지금 잘못으로 인해 새로운 잘못들을 저지를 것이고, 누나들과 다정히 지내는 것과 부모님께 인사하고 입맞춤하는 것도 모두 거짓이 것이며, 나만이 알고 있으며 숨길 밖에 없는 운명과 비밀을 갖게 되리라는 것을 나는 똑똑히 느꼈다.

아버지의 모자를 보는 순간, 잠깐 어떤 믿음과 희망이 마음속을 스쳤다. 아버지께 모든 이야기를 하고 아버지의 처분에 따라 벌을 받으면, 아버지를 비밀의 공유자이자 구원자로 만들 있지 않을까. 그것은 여태껏 왔던 것처럼 잘못을 비는 시간, 힘들고 가슴 아픈 시간, 후회로 가득 차서 용서를 비는 시간에 불과했다.

이런 생각은 얼마나 달콤하게 느껴졌던가! 얼마나 아름다운 유혹이었던가! 그러나 아무 소용없었다. 나는 내가 그러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분명한 것은 내가 지금 비밀 하나와 하나를 가지고 있고, 그것을 스스로 감당해 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어쩌면 나는 지금 갈림길에 있는 것이지도 몰랐다. 순간부터 영원히 나쁜 길로 빠져들어 악한 사람들과 비밀을 나누고 그들이 시키는 대로 복종하고, 분명 그들과 비슷한 사람이 되겠지, 나는 어리석게 어른인 , 영웅인 척했다. 이제 나는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을 없다.

내가 방으로 들어갔을 아버지께서 젖은 신발만 보고 꾸중하신 것은 차라리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아버지는 그것만 꾸중하시느라 내가 지금 껶고 있는 나쁜 상황을 알아차리지 못하셨따. 나는 아버지의 꾸지람을 묵묵히 견뎌 내면서 남몰래 다른 일과 아버지의 꾸지람을 연관시켰다. 그러다 보니 새롭고 묘한 감정이 마음 속에 불꽃처럼 튀었다. 그것은 날카롭게 날이 듯한 반항심이었다. 순간 나는, 내가 아버지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했다. 젖은 신발만 꾸짖으며 나의 상황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아버지가 경멸스럽게 느껴졌다. 아버지가 아신다면! 살인죄를 지어 심문받아야 판에, 조그만 조각을 훔친 것을 심문받는 사람이 심정이었다. 그것은 추악하고도 적대적인 느낌이었다. 하지만 강하고 깊은 매력이 있었고, 느낌은 다른 어떤 생각보다도 단단하게 나를 비밀과 죄에 결박시켰다. 어쩌면 지금 순간 크로머가 경찰에 나를 신고했을지도 모르고-비록 우리 가족들은 나를 어린아이처럼 다루고 있지만- 머리 위로 폭풍이 휘몰아쳐 올지도 모를 일이었다.

지금까지 모든 체험 중에 가장 중요한 순간이었다. 그것은 아버지의 권위에 내가 새긴 최초의 칼자국이었고, 유년시절을 이루는 기둥에 가한 최초의 칼질이었다. 그것은 모든 이가 각자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해 스스로 무너뜨려야 하는 기둥이었다. 누구도 감지하지 못한 이런 체험으로 우리들의 운명에 내면적이고 본질적인 선이 그어져 간다. 그런 칼질과 균열은 점점 늘어나고 아물다가 잊혀져 가지만, 우리 마음속에 가장 비밀스러운 암실에서는 여전히 살아남아 계속 피를 흘린다.

새로운 느낌 때문에 자신이 무서워졌다. 나는 곧바로 엎드려 아버지의 발에 키스라도 용서를 빌고 싶었다. 그러나 마음속 본질적인 것은 무엇도 사죄할 없었다. 어린아이도 정도는 어떤 지식인보다 느끼고 있었다.

나는 문제를 생각해 내일의 난관을 빠져나락 좋은 방법을 모색할 필요를 느꼈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달라져 버린 집안의 분위기에 익숙해지기 위해 저녁 내내 애를 써야만 했다. 벽시계와 책장, 성경과 거울, 책꽂이와 벽에 붙은 그림들이 나에게 작별을 고했고, 나는 삶의 온갖 행복들이 모두 과거가 되어 버린 나에게서 멀어져 가는 것을 두려운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을 밖에 없었다. 자신이 스스로 어둡고 낯선 세계에, 껶어 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 한가운데에, 흡입력 있는 새로운 뿌리를 내리고 있음을 감지했다. 나는 처음으로  죽음을 맛보았고, 맛은 쓰디쓴 맛이었다. 왜냐하면 죽음은 새로운 생명의 탄생이자 두려운 삶에 대한 불안과 걱정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겨우 침대에 누웠을 비로소 기뻤다! 조금 , 저녁 기도는 최후의 죄를 사하는 지옥 불처럼 위에 쏟아졌고, 가족들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찬송가를 하나 불렀지만 차마 노래를 따라 부를 수가 없었다. 멜로디 하나하나가 나에게는 쓸개즙이자 독이었다. 아버지가 축복 기도를 하실 때도 함께 기도를 없었고, 아버지가우리와 함께하소서!’하고 기도를 끝냈을 때는 심한 마음의 경련이 나를 단란한 가족의 테두리에서 갈라놓았다. 차갑게 떨며 몹시 지쳐서 나는 방으로 갔다.

자리에 누워 있는 동안 따뜻함과 안정감이 부드럽게 나를 감쌌지만 마음은 다시 불안해졌고 지나가 버린 일에 대한 두려움으로 온몸이 떨렸다. 어머니는 여느 때처럼 내게 자라는 인사를 주었다. 어머니 발소리의 여운이 아직 안에 남아 있었으며, 어머니가 촛불의 빛이 아직도 틈새로 들어오고 있었다. 어머니가 다시 내게 준다면 어머니는 느끼실 것이다. 나에게 다정하게 맞추고 물어보겠지. 너그러이 희망을 안기며 묻겠지. 그러면 나는 것이고,  목구멍에 걸려 있는 돌덩어리가 녹아 버릴 것이다. 어머니의 품에 안겨 용서를 빌면 모든 것은 해결되고 나는 구원을 받을 있을 것이다! 틈새로 비치던 촛불의 빛이 사라져 버린 후에도 나는 한동안 귀를 기울이며 그렇게 되기를, 그래야만 한다고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얼마 나는 다시 낮의 일을 떠올렸고 적의 눈을 응시했다. 나는 또렷하게 그를 보았다. 그는 실눈을 뜨고 야비한 웃음을 지었다. 그를 바보면 바라볼수록 이젠 도무지 피할 길이 없다는 절망감이 커졌으며 그의 얼굴을 점점 크고 악마처럼 변해 내가 잠들 때까지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그런데 그날 꿈에 크로머는 없었다. 그저 휴일의 평화와 환희에 둘러싸여 있는 부모님과 누나, 그리고 내가 배를 타고 있었다. 밤중에 잠에서 깨기 전까지 행복의 뒷맛이 느껴졌으며, 누나들의 여름옷이 햇빛에 반짝이던 모습이 눈에 선했다. 그러다 나는 천상의 낙원에서 어느 한순간 현실로 굴러떨어져 다시 사악한 적의 눈과 마주 있었다.

다음 아침, 어머니가 늦게까지 잠자리에 누워 있느냐고 소리쳤을 나는 창백한 안색이었고, 어머니가 어디 아프냐고 묻자마자 토하고 말았다.

덕분에 나는 얼마간 괜찮았다. 조금 아픈 덕에 아침 내내 카밀러 차를 마시며 누워 있을 있었다. 어머니가 옆방에서 청소하는 소리와 리나가 바깥 복도에서 고기 장수와 흥정하는 소리를 재미있게 들었다. 학교에 가지 않는 오전은 어떤 환상과 동화의 세계처럼 햇빛이 찬란하게 안을 어른어른 비추었다. 학교의 초록 커튼에 가린 그런 햇살은 아니었다. 하지만 오늘은 그런 것도 흥미롭지 않았으며 뭔가 박자가 어긋난 멜로디 같았다.

그래 만약 내가 죽어 버린다면! 그러나 가끔 그랬던 것처럼 단지 조금 몸이 아플 뿐이었고 정도로 아무것도 해결할 수가 없다. 학교에 가지 않을 좋은 핑계였지만 열한 시에 시장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크로머에게서는 보호해 주지 못했다. 어머니의 친절한 간호 역시 아무런 도움이 없었고 오히려 귀찮고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나는 잠든 척하고 누워서 이런저런 생각을 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고 나는 열한 시에 시장에 가야 했기 때문에 나는 학교에 가겠다고 했다. 계획 하나를 세워 두었던 것이다.

없이 크로머에게 수는 없었기에, 작은 저금통에 손을 밖에 없었다. 물론 안에도 돈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돈으로 크로머를 달래기는 어렵지만 없이 가는 것보다는 나을 거라고 본능적으로 느꼈다.

양말 바람으로 살그머니 어머니의 방에 들어가 책상에서 저금통을 꺼냈을 때는 기분이 아주 나빴다. 하지만 어제만큼 나쁘지는 않았다. 가슴이 거칠게 뛰어 숨이 막힐 지경이였다. 계단 아래로 내려와서야 처음으로 저금통을 살펴보고 잠겨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도 심장이 두근거렸다. 저금통을 깨뜨려서 뜯는 일은 아주 쉬웠다. 얇은 양철 막대 하나를 동강으로 부수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나 저금통이 부서진 자리를 보니 무척 슬펐다. 이것으로서 나는 처음 도둑질을 셈이었다. 나는 그때까지 나쁜 짓이라곤 사탕이나 과일 같은 간식을 몰래 꺼내 먹은 정도의 일밖엔 없었다. 이것이 비록 저금통이다 하더라도 나는 지금 도둑질을 셈이었다. 크로머와 그가 속한 세계에 내가 한발 가까워졌고 세계에 빠져들지 않도록 저항했지만, 계속해서 타락의 길로 빠져들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이제 와서는 악마가 나를 데려간다 해도 되돌아갈 길이 없었다. 나는 불안함에 돈을 세어 보았다. 저금통 안에 가득 찼던 돈이 막상 안에 쥐고 보니 비참하게도 적었다. 65페니였다. 나는 아래층에 마루 밑에 저금통을 감추어 놓고 동을 집을 나섰다. 지금까지 현관을 지나던 때와는 다른 기분이었다. 누군가 층에서 나를 부르는 것만 같아서 얼른 도망쳐 나왔다.

아직 정도의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나는 일부러 지름길이 아닌 새로운 길로 걸어갔다. 나를 내려다 보는 듯한 집들과, 나를 의심스럽게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고 싶었다. 언젠인가 학교 친구 하나가 가축 시장에서 1탈러(독일의 화폐 단위) 주웠던 것이 문득 떠올랐다. 하나님이 내게도 그런 행운을 주시기를 기도하고 싶었지만 나는 이미 기도할 권리가 없었다. 기도를 있다 하더라도 저금통이 이전 상태로 되돌아오지는 않을 것이다.

멀리서 프란츠 크로머가 나를 알아보았다. 나를 신경도 쓰지 않다는 천천히 나에게 걸어왔다. 내곁에 가까이 오더니 명령하는 따라오라는 눈짓을  하고 번도 뒤돌아보지 않고 슈트로 거리를 따라 계속 내려가 좁은 다리 하나를 건너 작은 골목 끝에 있는 공사 중인 앞에서 멈춰 섰다. 그곳에는 작업하는 사람도 하나 없었고 문도 창문도 없는 담벼락만이 덩그러니 있었다. 크로머는 주위를 살핀 안으로 들어갔고 나도 뒤를 따라갔다. 애는 뒤로 돌아가더니 나에게 오라고 신호하고는 손을 내밀었다.

갖고 왔어?”

그는 싸늘한 말투로 물었다.

나는 주머니에서 움켜쥐고 있던 돈을 빼서 애의 손바닥에 떨어뜨렸다. 마지막 5페니짜리 동전의 찰랑거리는 소리가 그치기도 전에 애는 돈이 얼마인지 알았다.

“65페니뿐이야?”

애가 나를 쳐다보았다.

그래

나는 겁에 질려 대답했다.

이게 내가 가진 전부야. 너무 부족하다는 나도 알지만 어쩔 수가 없었어. 이젠 정말 푼도 없는걸.”

똑똑한 녀석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는 비교적 온화한 말투로 나를 비난했다.

명예를 중요시하는 남자들 사이에는 질서가 있어야지. 결코 너한테 부당한 요구하려는 아니야. 그런 니켈 따위는 집어치워. 너도 알겠지. 내가 곧장 일러바치러 가면 과수원 주인은 값을 깎지는 않겠지. 값을 정확하게 전부 받을 있어.”

하지만 나한테는 이것밖에 없어. 더는 없다고! 이건 내가 저금한 전부야.”

그런 사정이지. . 괴롭히려는 아냐. 나한테 아직 1마르크 35페니를 빚진 거야. 언제 같을 거지?”

크로머! 그래 줄게. 내일이나 모레, 어쩌면 많이 생길지도 몰라. 내가 이걸 아버지한테 말할 없다는 너도 알겠지.”

그건 나완 상관없어. 괴롭힐 생각이 없다고 했잖아. 다만 오늘 중에 돈을 받았으면 . 너도 알다시피 가난해. 아마도 나보다 좋은 옷에, 휠씬 맛있는 점심을 먹었을 거야. 그렇지만 아무 않을게. 조금 기다려 주지. 모레 오후에 휘파람을 테니 그땐 정확히 가지고 와야 ! 휘파람 소리 알지?”

애는 앞에서 휘파람을 불었다. 전에도 들어 적이 있는 소리였다. 나는 대답했다.

, 알고 있어.”

단지 우리 사이에 거래가 있었을 , 더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와는 아무 상관도 없다는 애는 나를 두고 버렸다.

지금도 다시 크로머의 휘파람 소리를 듣는다면 나는 깜짝 놀랄 것이다. 그때부터 나는 가끔 휘파람 소리가 들리는 같다. 어디에 있든, 무슨 일이나 놀이를 하든, 무슨 생각을 하든 휘파람 소리가 나를 뚫고 들어와 따라다니며 나를 구속했다. 그리고 끝내는 그것이 나의 운명이 되어 버렸다. 온화하고 풍요로운 어느 가을 오후에 나는 가끔 아끼던 정원에 나와 있곤 했다. 그때 나는 어린 시절 즐겨 했던 놀이를 다시 보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 어리고 착하고 자유롭고 없이 보호받던 소년 역할을 맡았다. 그럴 때면 예상은 했지만 두려운 마음을 들게 하는 크로모의 휘파람 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와 마음의 줄을 끊어 놓았고, 어린 시절 추억과 상상들을 산산조각 냈다. 또다시 협박하는 이의 뒤를 따라가야 했다. 추하고 증오심을 일으키는 곳에서 애에게 계속 변명을 하고 돈을 재촉당해야 했다. 그런 모든 일이 불과 주일쯤 계속되었지만, 나에게는 그것이 수년처럼, 아니 영원히 계속되는 같았다. 가끔 리나가 부엌 식탁 위에 그냥 놓아둔 시장바구니에서 5페니나 10페니를 훔쳐 가지고 갔다. 그때마다 나는 크로머에게 욕을 먹었다. 크로머는 자신이 요구한 액수만큼 가져오지 않는 내가 그를 불행하게 만드는 원흉이라고 말했다. 살면서 이때처럼 고통스러운 적도, 절망과 굴욕을 느껴 적도 없었다.

저금통은 장난감 돈으로 채워서 다시 제자리에 가져다 두었다. 저금통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지만 언제 들킬지 몰라 마음은 불안했다. 어머니께서 조용히 내게 다가오실 때는 혹시나 저금통의 행방을 물어볼까 크로머의 휘파람 소리가 들릴 때보다 더욱 두려움에 떨었다.

대체로 내가 돈을 하나도 구하지 못한 상태로 악마에게 갔기 때문에, 그는 다른 방법으로 나를 괴롭히고 이용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를 위해 일해야만 했다. 애는 자신이 해야 하는 아버지의 심부름을 대신 시켰다. 혹은 동안 한쪽 다리로 뛰게 한다든지 지나가는 사람의 윗옷에 종잇조각을 붙이고 오라든지 하는 하기 힘든 일을 시키기도 했다. 이러한 일들에 대한 가책으로 나는 며칠 밤을 악몽에 시달리며 식은 땀을 흘려야만 했다.

결국에 나는 아팠다. 자주 토하고 오한이 났으며, 밤에는 식은땀이 흐르고 열이 올랐다. 어머니는 뭔가 잘못되었음을 알아차리고 내게 더욱 관심을 보였는데, 그것이 나를 괴롭게 했다. 어머니의 관심에 믿을 만한 행동을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느 저녁, 내가 일찍감치 잠자리에 들었을 , 어머니가 초코릿 하나를 가져오셨다. 착하게 하루를 보내면 저녁에 자라고 상으로 초콜릿을 주시곤 했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어머니가 지금 여기 서서 내게 초콜릿 조각을 내밀고 있었다. 나는 어찌나 가슴 아프던지 단지 머리를 흔들 있을 뿐이었다. 어머니는 어디가 아프냐고 물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아니, 아니야!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아요.”

나는 이렇게 소리칠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께서 초콜릿을 침대 머리맡에 놓고 나가셨다. 이튿날 어머니가 일에 대해 캐물으려 하자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행동했다. 한번은 어머니가 의사를 데려오셨는데, 의사는 나를 진찰하고는 아침에 냉수욕을 하라는 처방을 내릴 뿐이었다.

시절의 나는 일종의 정신착란 상태였다. 우리 집의 정돈된 평화 가운데서 나는 겁먹고 고통받으며 유령처럼 지내고 있었다. 다른 사람과 함께 생활할 수도 없었으며, 잠깐이라도 자신을 잊어버리고 지내지도 못했다. 아버지는 자주 화를 내며 이유를 물어 왔지만, 나는 차갑게 마음을 닫고 냉정한 태도를 보였다.

 

카인

 

구원은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방향에서 왔다. 그리고 동시에 무언가 새로운 것이 속으로 들어왔는데, 그것은 지금까지도 나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얼마 우리 라틴어 학교에 새로 전학 학생이 있었다. 우리 도시로 이사 부유한 미망인의 아들이었는데, 그는 상장을 달고 다녔다. 그는 나보다 나이도 많고 학년 높았지만, 모든 학생이 그랬던 것처럼 역시 그에게 관심이 갔다. 이상한 학생은 보기보다는 휠씬 성숙하고 어른스러운 같았다. 누구에게도 소년처럼 보이지 않았다. 우리 유치한 어린 소년들 사이에서 그는 어른처럼 뭔가 다르게, 신사처럼 행동했기 때문에 인기 있는 편은 아니었다. 우리들의 놀이에는 끼지 않았고 싸움은 더더욱 적이 없었다. 단지 아이들은 선생님을 대할 때의 어른스럽고 단호한 그의 음성을 마음에 들어 했다. 그의 이름은 막스 데미안이었다.

우리 학교는 가끔 합반을 하곤 했는데, 어느 무슨 이유에선지 교실이 넓은 우리 반에 다른 반이 함께 수업을 하게 되었다. 그게 데미안의 반이었다. 하급생인 우리 반은 성경을 공부하는 시간이었고, 상급생들은 작문을 연습했다. 우리가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를 배우는 동안, 나는 자주 데미안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의 얼굴은 묘하게 나를 매료시켰다. 총명하고 환하고 비범해 보이는 얼굴이, 주의 깊고 지혜롭게 작문 과제에 몰두하고 있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는 전혀 과제를 하는 학생처럼 보이지 않았고, 자신만의 문제를 연구하는 학자처럼 보였다. 엄밀히 말하자면 호감이 가는 아니었다. 오히려 나는 그에게 거부감을 느꼈다. 그는 너무 우월해 보였고 침착했다. 그의 성격은 도전적으로 느껴질 만큼 자신만만했다. 눈은 마치 어른의 표정을 띠고 있었으며-그런 것을 아이들은 결코 좋아하지 않는다.-약간 슬픔이 어린 냉소를 머금고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계속해서 그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는 내게 어떤 호감을 주기도 했고, 반감을 느끼게도 했다. 그러다 그와 시선이 마주치기라도 하면 나는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려 버리곤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당시 그가 학생으로서 어떤 모습이었는지 이렇게 말할 있다. 그는 모든 면에서 평범한 학생들과 달랐으며 전체적으로 특별하고 개성이 강해서 남의 이목을 끌었다. 그런 한편으로 그는 남의 눈에 띄지 않으려고 온갖 노력을 다했다. 마치 농부의 자식들 사이에서 그들처럼 보이려고 애쓰는 변장한 왕자님 같았다.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에 그가 뒤쪽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다른 아이들이 차츰차츰 흩어지자 그가 곁에 다가와 인사를 했다. 그의 인사 역시 또래 아이들처럼 평범한 말투였지만 너무 어른스럽고 공손하게 들렸다.

우리 잠깐 같이 갈까?”

그가 친절하게 물었다. 나는 기분 좋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우리 집이 어디인지 자세히 말해 주었다.

, 거기?”

그가 미소를 띠며 말했다.

집이라면 벌써 알고 있어. 현관문 위에 있는 독특한 장식물이 흥미로웠거든.”

나는 그가 말하는 무엇인지 금방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가 우리 집에 대해 나보다 알고 있다는 데에 당황했을 뿐이었다. 아마도 우리 현관 아치의 쐐기돌에 새겨진 일종의 문장을 말하는 같았는데, 그것은 가끔 덧칠을 하긴 했어도 세월이 지나는 동안 납작해져서 거의 알아보기가 힘들었다. 내가 아는 문장은 우리 가문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그것에 대해서는 아는 없어.”

나는 수줍게 말했다.

그건 아마 새이거나 비슷한 무늬일거야. 그런데 아주 오래돼서 알아보기 힘들어. 우리 건물이 예전에는 수도원의 일부였대.”

그럴 수도 있지.”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번 살펴봐. 그런 것들은 아주 흥미롭거든. 내가 보기에 그건 같았어.”

우린 계속 함께 걸었다. 속으로 나는 몹시 당황하고 있었다. 데미안이 갑자기 재미난 생각이라도 떠오른 듯이 웃었다.

그래, 조금 수업 시간에 우린 같은 반에 있었지.”

그가 활기찬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이마에 표적을 카인의 이야기를 배우는 같던데, 그렇지? 이야기가 마음에 들었니?”

물론 아니었다. 우리가 배워야 했던 과목을 통틀어 무엇 하나 마음에 드는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있는 그대로 이야기할 없었다. 마치 어른에게 말하는 듯한 기분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야기가 마음에 들었다고 말했다.

데미안이 친근하게 어깨를 두드렸다.

이봐, 나한테까지 그렇게 속일 필요 없어. 하지만 이야기는 수업 시간에 배우는 다른 이야기들보다는 휠씬 생각해 가치가 있어. 선생님께서는 이야기에 관해 많이 가르쳐 주지 않으셨어. 다만 신과 죄에 관한 상식적인 이야기를 하셨을 뿐이니까. 하지만 생각에는 말이야.”

그는 말을 멈추고 미소 얼굴로 나에게 물었다.

그런데 이야기에 관심 있니?”

그가 계속해서 말했다.

생각에는 말이야. 카인의 이야기는 완전히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어. 우리가 배우는 대부분이 분명 완벽한 진실이고 정의인 명제들이지만, 모두를 선생님들의 가르침과는 다르게 수도 있는 거야. 다른 관점에서 대개 나은 가치를 갖게 . 예를 들어 카인의 이야기의 경우, 그의 이마의 표적에 관해 우리는 선생님의 설명만으로 만족할 없어.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어떤 사람이 싸우다가 형제를 죽이는 일은 분명 일어날 있는 일이야. 그래서 나중에는 겁을 먹고 굴복하게 된다는 이야기도 가능한 일이지. 하지만 그의 비겁함 때문에 일부러 특별한 표적을 달아 주었는데, 표적이 그를 보호하고 다른 모든 사람을 겁준다면 그건 정말 이상한 아니니?”

그래, 그렇치.”

나는 흥미를 느끼며 대답했다. 문제가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이다.

그렇지만 이야기를 어떻게 다르게 생각할 있다는 거야?”

그는 어깨를 쳤다.

아주 간단해. 처음에 문제가 되고 이야기의 주제가 되는 바로 표적이야. 만약 남들에게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무언가를 얼굴에 가진 어떤 사람이 있다고 치자. 누구도 감히 사람을 건드리지 못했고, 자손들도 사람처럼 다른 사람들을 압도했어. 어쩌면 그들 이마의 표적은 소인이 찍힌 우표처럼 붙어 있었던 것은 분명히 아닐거야. 세상 사는 그렇게 단순한 일로 별로 없으니까. 사람들은 압도하는 말로 표현할 없는 무언가가 그들에게 그들에게 있었을 테고, 그들의 눈빛에서 담력과 지혜가 느껴졌을 거야. 남자는 힘이 있었고 사람들은 그것이 두려웠겠지. 그는표적 가지고 있었어. 그걸 사람들이 각자 자기 식대로 설명하는 거야. 하지만사람들 자기한테 편리한 대로 자기를 정당화하려고 하지. 사람들은 카인의 자손들이 무서웠던 거야. 그래서 사람들은 표적을 원래대로 우월한 훈장처럼 설명하지 않고 반대로 설명한 거야. 표적을 지닌 사람들은 무섭다고 말한 거지. 실제로 그렇기도 했겠지만, 용기와 개성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두려움이니까. 두려움 없는 강한 족속이 자신들과 함께 있다는 것이 매우 견디기 힘들었겠지. 사람들은 그래서 강한 족속들을 위험에 빠드릴 음모를 꾸민 거야. 자신들이 두려움에 대한 반감으로 주홍글씨 같은 낙인과 소문을 만들어서 퍼뜨린 거지. , 이해하겠어?”

, 그건 다시 말해 카인은 실제로 하나도 나쁘지 않았다는 말이지?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가 전부 사실은 아니란 말이네?”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어. 아주 오래된 이야기가 대부분 진실일 있지만 진실들이 언제나 사실 그대로 기록되고 올바로 해석돼 왔다고 수는 없어. 쉽게 말해, 카인이 엄청난 사람이었다고 생각해. 단지 사람들이 그를 두려워했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를 지어냈을지도 몰라. 카인의 이야기는 사람들이 가볍게 떠들어 대는 터무니없는 소문에 불과한 거지. 하지만 정말 카인과 그의 자손들이표적 지니고 있었고, 다른 사람들과는 전혀 달랐다는 것만은 진실이라고 생각해.”

나는 엄청 놀랐다.

그럼 동생을 죽인 것도 진짜라고 믿어?”

충격을 받은 나는 이렇게 물었다.

물론 진실이지. 그건 분명히 사실일 거야. 강자가 약자를 죽였던 거야. 정말 그들이 형제였는지는 의심스럽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아. 결국엔 모든 사람이 형제라고 있으니까, 강자가 약자를 죽인 것에 불과해. 그것이 얼마나 영웅다운 행동이었는지는 없지만, 어째든 약자들은 두려움을 느끼고 한숨을 쉬었겠지. 하지만 누군가 약자에게 그들을 해치우지 못한 거야?’라고 물었다면, ‘우리가 겁쟁이라서라고 대답하지는 않았을 거야. ‘해치울 수가 없어. 그들은 표적을 지니고 있거든. 신이 그들에게 표적을 주셨어.’하고 말한 거지. 이렇게 단순하고 터무니없는 이야기가 꾸며졌을 거야. , 너무 오래 붙잡아 두고 있었구나. !”

그는 알트 거리로 접어들었고, 홀로 남은 나는 지금까지보다 휠씬 당황스러웠다. 그가 떠나자마자 지금까지 데미안이 이야기가 전부 믿기지 않는 사실로만 여겨졌다. 카인은 강자고 아벨은 겁쟁이라니! 카인의 표적이 훈장처럼 훌륭한 것이라니! 그건 비이성적인 이야기였고, 신에 대한 모독이며 오만한 생각이었다. 그렇다면 신의 사랑은 어디에 있었단 말인가? 신은 아벨의 제물을 받지 않았고, 아벨을 사랑하지 않았단 말인가? 아니, 그럴 리가 없다. 그건 허무맹랑한 이야기에 불과하다. 데미안이 나를 놀려서 당황스럽게 만들기 위해 꾸며 이야기일 뿐이다. 실로 명석한 녀석이긴 했다. 말도 논리적으로 잘했고,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사실이 아닐 것이다.

나는 성경에 나오는 아야기나 다른 부류의 어떤 이야기도 그런 식으로 생각해 적이 없었다. 오랜동안, 아니 저녁 내내 그렇게 말끔하게 프란프 크로머의 존재를 잊어 적도 없었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나는 성경에 쓰인 카인의 이야기를 꼼꼼히 읽어 보았다. 하지만  내용은 단순 명료했다. 그리고 거기서 특별히 숨은 뜻을 찾아낸다는 것은 미친 짓이었다. 그렇다면 모든 살인자는 신의 사랑과 보호를 받은 사람이라고 말할 있어야 아닌가! 아니다, 그건 정신이 나간 소리였다. 단지 마음 깊이 끌렸던 데미안은 모든 것이 쉽게 명확하다는 듯이 멋지게 논리적으로, 그렇게 진심 어린 눈빛으로 이야기했다는 것이다.

역시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고 혼란스러움에 빠져 있었다. 얼마 전까지 나는 밝고 깨끗한 세계에 속해 있었다. 나는 일종의 아벨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에게는다른것이 너무 깊이 박혀 있어서, 세계 속에 깊이 떨어져 버려서 헤어 나올 없을 만큼 가라앉아 버렸다. 나만의 잘못이 아니라고 해도 어떻게 일이 지경까지 버렸을까? 그렇다. 문득 마음속에 가지 기억이 떠올라 한순간 숨이 막힐 뻔했다. 불행한 상황이 시작되었던 고통스러웠던 , 나는 한순간 아버지는 물론 아버지로 대표되는 밝은 세계와 지혜를 단칼에 꿰뚫어 보며 경멸했다. 그렇다. 그때의 나는 분명 카인이었고 이마에 표적까지 달고 있었지만 수치심을 느끼기보다는 이것은 표창이라고 우쭐댔다. 나는 죄악과 고통으로 인해 아버지와 선하고 경건한 사람들보다 우월한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당시의 내가 분명한 사고 체계를 갖추었던 것이 아니다. 하지만 크로머와 있었던 모든 일들이 분명하지 않은 사고체계에 포함되어 있었다. 크로머와 있었던 일로 몹시 괴로워했고 그와는 반대로 묘한 자부심을 느끼기도 했다.

생각해 보면 데미안은 매우 이상하게도 강자와 약자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해 주었다. 카인의 표적에 관한 해석도 마찬가지였다. 순간 데미안의 눈이 마치 어른처럼 얼마나 빛났던지! 문득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데미안이야말로 카인 같은 존재가 아닐까? 데미안 스스로 자신이 카인의 족속이라 생각하지 않고 카인을 옹호할 이유가 없지 않을까? 그의 눈빛에는 그런 힘이 담겨 있을까? 데미안은 그토록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경건한다른 사람들’, 많은 사람들을 빈정댔을까?

나는 이런 생각들을 끝없이 이어 갔다. 나의 어린 영혼의 샘물에 돌멩이 하나가 떨어진 것이었다. 매우 시간 동안 카인의 살인과 표적에 관한 문제가 나의 인식과 의구심을 키웠고, 비판적인 사고를 시도의 출발점이 되었다.

나는 금방 다른 학생들도 데미안에게 관심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데미안이 얘기했던 카인에 대한 이야기를 누구에게도 하지 않았는데, 다른 아이들도 데미안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즈음 전학생인 데미안에 대한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만약 소문은 미리 들었다면 데미안의 전모를 파악하는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알고 있었던 것은 데미안의 어머니가 부자라는 소문뿐이었다. 데미안의 어머니는 교회에는 절대 나가지 않으며, 아들 역시 그렇다는 말도 있었다. 데미안 모자가 유대인라는 사람도 있었고, 비밀스러운 회교도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한술 떠서 막스 데미안의 힘에 관한 무용담이 나돌았다. 데미안의 반에서 힘이 제일 아이가 싸움을 걸어오자데미안은 거절했는데, 겁재이이라고 비웃는 녀석을 데미안이 거뜬하게 해치워 버렸다는 것이다. 아이들의 목격담을 빌리자면, 데미안이 그냥 한손으로 목덜미를 잡고 눌렀을 분인데 상대 아이가 하앟게 질려서 항복하고 도망쳤으며, 아이는 며칠 동안이나 팔을 못썼다고 했다. 어느 저녁에는 아이가 죽었다는 소문도 났다. 온갖 소문들이 무성하게 퍼져 나갔고 사람들은 소문이 사실이라고 굳게 믿었다. 소문은 모두 자극적이었고 놀라움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다가 한동안 잠잠해졌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학생들 사리에 새로운 소문이 돌았다. 데미안이 여자를  사귀고 있으며, 그가 이미 안다 소문이었다.

그사이에도 여전히 나는 프란츠 크로머와 고통스러운 관계를 이어 가고 있었다. 가끔 애가 나를 가만히 내버려 둔다고 해도 나는 옴짝달싹 못하고 얽매여 있었다. 그는 꿈에서도 그림자처럼 나를 쫓아다녔고, 애가 현실에서 저지르지 않았던 악행들이 환상에서 펼쳐졌으며 결국 꿈에서까지도 나는 완전히 크로머의 노예가 되었다. 나는 현실보다 꿈속에서 많이 살았다. - 나는 원래 꿈을 많이 꾸는 편에 속하는 아이였다. - 그래서 나를 쫓는 그림자 때문에 힘과 활기를 잃어 가고 있었다. 특히 크로머가 나를 못살게 굴고 침을 뱉고 무릎을 짓이기며 잘못된 범죄를 나를 유인하는 꿈을 자주 꾸었다.-유인보다는 강한 때문에 강요당했다는 것이 맞겠다.-가장 무서웠던 꿈은 아버지를 살해하는 꿈이었다. 나는 거의 미칠 지경이 되어서야 잠에서 있었다. 꿈에서 크로머가 칼을 갈아서 주고 우리는 가로수 뒤에서 몸을 숨기고 있었는데, 그때가진 내가 누구를 기다리는지 몰랐다. 누군가 우리 가까이로 걸어오자 크로머가 팔을 건드려 내가 찔러야 사람이라는 알려 주었다. 사람은 바로 우리 아버지였다. 그때 나는 잠에서 깼따.

아버지를 살해하는 때문에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를 계속 생각하게 되었다. 카인의 이야기를 생각하며 데미안을 떠올리진 않았다. 그런데 데미안이 내게 다시 나타난 것은 희한하게도 꿈속에서였다. 학대와 폭력에 시달리는 꿈이었는데, 참아 내는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그런데 무릎을 짓밟는 사람이 크로머가 아니라 데미안이 아닌가! 꿈에서 크로머가 나를 괴롭힐 때는 고통과 혐오감만이 느껴졌는데, 데미안이 나를 괴롭히는 꿈에서는 기쁨과 불안감을 동시에 느꼈다. 꿈을 번이나 꾸었다. 그러고 후에는 데미안이 자리했던 곳에 다시 크로머가 나타났다.

꿈에서 겪은 일과 실제로 겪은 일이 확실히 구별되지 않았다. 아무튼 나와 크로머의 고통스러운 관계는 계속되었다. 도둑질을 해서 크로머에게 빚을 갚았을 때도 우리의 관계는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크로머는 내가 했던 도둑질을 상세히 알고 되었다. 그는 내가 돈을 가져올 때마다 어디서 돈인지 캐물었다. 그러면 나는 어쩔 없이 도둑질을 했다는 사실을 말해야 했고, 그럴수록 크로머의 손아귀에 단단하게 잡혀 들어갔다. 아버지에게 모든 것을 일러바치겠다는 크로머의 협박이 두렸웠다. 처음부터 그런 거짓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하는 후회가 크게 밀려왔다. 하지만 이상하게 참을 없이 괴로웠던 와중에도 지금까지의 모든 일이 전부 후회스럽기만 것은 아니었다. 적어도 모든 순간이 후회스럽지는 않았다. 어떤 때는 이런 일들이 필연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불길한 숙명이 머리 위로 드리워졌는데 그늘에서 벗어나려는 발버둥치는 것은 바보짓 같았다.

부모님은 이런 상태를 매우 걱정하셨을 것이다. 낯선 영혼이 나를 덮쳐 왔고, 이제 나는 이상 밝은 세계의 사람이 아니었다. 잃어버린 낙원을 그리워하며 밝은 세계를 향한 견딜 없는 향수를 느꼈다. 어머니는 나를 문제아보다는 아픈 아이처럼 취급했고, 상태가 어떤지는 누나들의 태도에서 가장 느껴졌다. 누나들은 나에게 무척 다정했다.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나를 끝없이 비참하게 했다. 누나들에게는 내가 한숨이 절로 나고 동정을 일으키는 상태였지만, 한편으로는 언제 악마처럼 발작을 일으킬지 모르는 경계 대상이었다. 이제 가족들은 나를 위해 지금까지와는 다른 기도를 하고 있었다. 나도 기도의 내용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기도가 부질없다는 알고 있었다.모든 괴로움을 내던지고 싶은 간절한 소망이 생길 때면, 뉘우치고 고백할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아버지와 어머니께 사실대로 이야기 없었고, 도저히 설명할 없겠다는 마음도 들었다. 잘못을 빌면 다정한 용서와 따뜻한 위로를 받고 동정을 얻었겠지만 완전히 이해를 구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모든 것이 나의 숙명이었는데도 부모님은 단순한 탈선으로 치부해 버렸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열한 살도 되지 않은 꼬마가 이런 생각을 잇으리라고 믿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에게 처지를 이해시키려는 것은 아니다. 그저 인간의 본질을 알고 있는 사람에게 이야기하고 싶다. 자신의 감정을 이성으로 변화시키는 익힌 어른들은 꼬마들에게도 이런 이성이 존재할거라 상상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꼬마들도 경험도 무시한다. 하지만 나는 평생에서 그때처럼 절박한 경험과 고민을 적이 없었다.

비가 내리던 어느 크로머가 성문 광장으로 나오라고 했다. 나는 광장에서 크로머를 기다리며 물에 젖은 밤나무 밑에서 없이 떨어져 내리는 잎들을 발끝으로 헤집고 있었다. 돈을 구할 수가 없어서 대신 과자 조각을 옆구리에 챙겨 들고 나온 참이었다. 어느덧 나는 이렇게 모퉁이에 서서 하염없이 크로머를 기다리는 익숙해졌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이 어쩔 없는 앞에서는 체념을 하듯이 나도 상황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마침 크로머가 왔다. 오늘은 오래 기다리지는 않았다. 크로머는 가슴팍을 두어 쥐어박고 기분 좋은 일이 있는 낄낄거렸다. 과자를 빼앗아 들고, 내게 젖은 담배를 권했다. 물론 나는 받지 않았다. 크로머는 평소와는 달리 유별나게 친절했다.

그래

헤어지려던 순간 크로머가 말했다.

잊어버리기 전에 말하는데 다음에는 누나를 데려와. 큰누나말이야. 이름이 뭐였더라?”

나는 크로머의 말을 전혀 이해할 없어서 대답도 하고 있었다. 그저 어리둥절하게 크로머를 바라볼 뿐이었다.

알아들어? 누나를 데리고 오란 말이야.”

알아들었어, 크로머. 하지만 그건 불가능해. 못해. 누나가 따라오지도 않을 거야.”

나는 크로머가 평소처럼 꼬투리를 잡을 구실로 말이라고 생각했다. 크로머는 가끔씩 이렇게 불가능한 요구하면서 나를 겁주고 꼼짝없이 얽매이게 만들어서 자기 말을 고분고분하게 듣도록 만들었다. 그러면 나는 약간의 돈을 구해다 바쳐든지 다른 선물로 크로머의 화를 누그러뜨려야만 했다.

그래

그는 얼버무리듯 대꾸하고는 말을 이었다.

근데 생각해 . 너희 누나랑 사귀어 보고 싶단 말이지. 언제 한번 기회를 만드는 거야. 너는 그냥 누나와 같이 산책하러 나오기만 하면 . 그럼 내가 거기로 갈게. 내일 휘파람으로 다시 부를 테니까 그때 다시 의논해 보자.”

크로머가 가고 나서야 어렴풋이 그의 말뜻을 헤아렸다. 나는 그때 완전히 어린애였다. 하지만 우리들이 조금 나이를 먹으면 비밀스럽고 야릇한 금지된 일들을 남녀가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이 얼마나 망측하고도 엄청난 일인가! 나는 결코 그런 짓을 하지 않겠다고 확고히 결심했다. 하지만 그다음에는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까.  크로머가 어떤 식으로 나에게 앙갚음할지 생각할 엄두가 났다. 새로운 고문이 시작되었다. 아직도 내가 겪은 고통이 충분치가 않았나 보다.

참담한 심정으로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광장을 가로질러 걸었다. 새로운 고통, 새로운 압박감이 나를 짓눌렀다.

그때 누군가 청명하고 낮은 목소리를 나를 불렀다. 나는 깜짝 놀라 달아났다. 누군가 뒤를 따라와서는 손으로 나를 살며시 끌어당겼다. 막스 데미안이었다.

나는 잡힌 척했다.

데미안, 누군가 했네.”

나는 불안하 마음을 감추며 말했다.

깜짝 놀랐잖아.”

그는 나를 바라보았다. 이때처럼 데미안의 눈빛이 어른스럽게 압도적으로 사람을 꿰뚫어 보는 힘이 있다고 느껴진 적은 없었다. 오랫동안 우리는 서로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미안

그는 공손하지만 분명한 어조로 말했다.

그런데 그렇게 놀랄 필요 없잖아.”

물론 그렇지, 하지만 놀랄 수도 있지.”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싱클레어, 네가 아무 상관없는 사람 앞에서 그렇게 깜짝 놀란다면 상대방이 이상하게 여길거야. 호기심이 생기겠지. 뭔가 네가 수상할 정도로 깜짝 놀랐어. 사람은 뭔가 불안함에 놀란다고 생각하지. 겁쟁이들은 언제나 불안함에 떨고 있으니까. 그러네 나는 네가 겁쟁이는 아니라고 생각하거든. 그렇지 않아? , 네가 영웅이라는 말도 아니지만, 너에겐 두려워하는 뭔가가 있어. 네가 무서워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거지. 하지만 이런 일은 있을 없어. 말도 되는 일이지. 사람이 두려워한다니. 물론 내가 두려웠던 아니겠지? 그래?”

아니야, 네가 무섭지는 않아.”

그것 . 하지만 두려운 사람이 있구나?”

글쎄, 모르겠어 ….. 가만히 내버려 . 대체 바라는 거야?”

데미안은 나와 보조를 맞추며 걸었고나는 데미안에게 도망칠 생각으로 빨리 걷고 있었다. 곁에서 데미안의 시선이 느껴졌다.

만약에 말이야.”

데미안이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네가 호의로 이야기하는 거야. 나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어. 너한테 가지 실험을 볼게. 엄청 재미있고 배울 것도 있는 실험이지. , 들어 !- 가끔 독심술을 시험해 . 나쁜 요술을 부리는 아니지만 어떻게 하는 건지 모르는 사람에게는 무척 신기할 거야. 그걸로 사람을 깜짝 놀라게   있으니까- , 우리 한번 시험해 볼까. 내가 너를 좋아하고 있고 너에게 관심이 있다고 치자. 그래서 마음이 어떤지 알고 싶어진 거지. 이미 탐색을 시작한 셈이야. 내가 너를 놀래켜 봤으니까,-그랬더니 깜짝 놀랐어. 그건 네가 두려운 일이나 두려워하는 사람이 있다는 증거야. 그럴까? 사람은 누구 앞에서든지 다른 사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 그런데도 누군가가 두렵다는 나를 다스리는 힘이 타인에게 맡겨 버렸기 때문이야. 예를 들어 네가 무슨 나쁜 짓을 저질렀다고 치자. 그런데 일을 다른 사람이 알아챘다면 사람이 너를 지배하는 힘을 갖게 되는 거지. 알겠어? 이제 분명하지, 그래?”

나는 어쩔 몰라 데미안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그의 얼굴은 언제나처럼 진지하고 영리하고 호의적이었지만 정겹기보다는 엄격해 보였다. 정의 혹은 그와 비슷한 무언가가 데미안의 표정에 담겨 있었다. 나는 무슨 영문인지 없었다. 데미안은 마치 마법사처럼 앞에 있었다.

이해했어?”

데미안의 다시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을 아무 말도 없었다.

내가 독심술이 요술처럼 보일 있다고 말하긴 했지만 이건 자연스럽게 되는 거야. 예를 들면 언젠가 우리가 카인과 아벨 이야기를 나눴었던 그때 네가 어떻게 생각했는지 명확하게 맞힐 수도 있어. 지금 상황과 상관없는 말이지만 번쯤 꿈을 꾸었겠지. 하지만 그런 이야기는 관두자! 영리한 아이야. 대부분의 아이들은 멍청한데 말이야. 가끔씩 내가 신뢰하는 영리한 아이와 이야기 나누는 좋아해. 괜찮지?”

그래, 괜찮아. 하지만 전혀 이해가 가는걸.”

그럼 다시 즐거운 실험을 계속해 볼까? 실험으로 우린 다음과 같은 것들은 발견했어. 어떤 소년이 놀란다. 소년은 누군가를 두려워한다. 분명 애는 누군가와 불편한 비밀이 있다. 대략 맞지?”

나는 꿈에서처럼 데미안의 목소리와 영향력에 압도당하고 있었다. 나는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목소리는 꿈에서만 들리던 아니었나? 목소리만이 모든 것을 알고 있던 아니었나? 이렇게 모든 것을 분명하게 알다니! 나보다 , 분명하게 알고 있다니!

데미안이 어깨를 힘차게 두드렸다.

그럼 말이 맞는 거네. 그럴 알았어. 그럼 이제 질문은 하나 남았어. 방금 너랑 헤어져서 버린 이름이 뭐지?”

나는 흠칫 놀랐다. 비밀을 들켜 버린 것이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다시 움츠러들었다. 비밀이 밖으로 드러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누구 말이야? 말고는 아무도 없었어.”

데미안은 웃었다.

말해 !”

그가 웃었다.

이름이 뭔데?”

나는 거의 들릴락 말락 목소리로 말했다.

프란츠 크로머 말이야?”

흡족하다는 듯이 데미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잘했어! 정말 영리한 녀석이야. 우리 친구가 되겠는데. 그런데 조금 말이 있어. 크로머가 뭔가 하는 녀석은 아주 나쁜 녀석이야. 녀석 얼굴에 악당이라고 쓰여 있어. 어떻게 생각해?”

, 그래

한숨을 쉬었다.

아주 나빠, 악마 같은 녀석이라고! 하지만 녀석한테 아무것도 들키면 . 제발 아무 말도 하지 말아 . 애를 알아? 크로머도 너를 알고?”

진정해, 녀석은 이미 갔어. 그리고 애는 나를 몰라, 아직은. 하지만 녀석에 대해 알고 싶어. 애도 공립 학교에 다니니?”

학년이야?”

“5학년.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말아 . 제발 부탁이야! 아무 하지 말아 !”

걱정 , 너에게 아무 일도 없을 거야. 크로머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수는 없겠니?”

그럴 없어. 그건 . 나를 내버려 .”

데미안은 말없이 한동안 있었다.

그러다가 그가 말했다.

유감이네. 우린 실험을 수도 있었는데. 하지만 괴롭히고 싶지는 않아. 그래도 네가 녀석을 두려워하는건 옳지 못한 일이라는 너도 알지. 그렇지 않아? 두려움이 우리를 망치게 하는 거야. 하루빨리 벗어나야 . 네가 진짜 사나이가 되려면 두려움을 벗어던져 내야 . 알겠지?”

물론 말이 전부 맞아….하지만 그렇게 되는걸. 정말 모를 거야….”

네가 생각했던 것보다 내가 훨씬 많이 안다는 너도 봤잖아. 혹시 녀석에게 빚이라도 거야?”

그래, 그렇기도 . 하지만 그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야. 말할 없어. 절대로 말할 없어.”

만약에 내가 녀석에게 빚을 대신 갚아 준다고 해도 말이야? 내가 수도 있는데.”

아니야, 그런게 아니야. 제발 부탁이야. 아무에게도 그런 말은 하지마. 한마디도! 부탁을 들어주지 않는다면 엄청 불행해지고 거야.”

믿어. 싱클레어, 언젠가는 비밀을 나한테 털어놓게 거야.”

절대로, 결코 그런 일은 없을 거야.”

나는 다급하게 소리쳤다.

좋을 대로 . 단지 시간이 지나고 나면 내게 말할 거라고 생각해. 물론 스스로 말이야. 설마 나도 너에게 크로머와 같은 짓을 하리라고 생각하는 아니지?”

물론이야. 하지만 일에 대해 아는 전혀 없잖아.”

그래, 아무것도 몰라. 단지 그것에 대해 곰곰히 생각할 뿐이야. 나는 절대로 크로머처럼 너를 괴롭히는 짓을 하지 않을 거야. 그건 믿을 있지? 네가 나에게 빚진 아무것도 없으니까.”

우리는 한참을 말없이 있었다. 그러는 동안 마음은 조금씩 진정되었다. 하지만 데미안이 어떻게 그런 것들을 알았는지 점점 궁금해졌다.

이젠 집으로 가야겠다.”

말을 하며 빗속에서 외투를 단단히 여몄다.

우린 벌써 많은 이야기를 나눴으니까 한마디만 할게. 녀석에게서 벗어나야 . 다른 방법이 없다면 녀석을 때려죽여서라도 말이야. 네가 그럴 있다면 좋겠어. 내가 도와줄게.”

나는 새로운 불안함을 느꼈다. 카인의 이야기가 다시 떠올랐고 두려움에 나는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너무나 소름 끼치는 일들이 주위를 둘러싸고 있다는 생각에 견디기 힘들었다.

그럼 좋아.”

막스 데미안이 미소를 지었다.

이제 너희 집으로 , 우린 분명히 녀석을 해치울 있을 거야. 때려 죽이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지. 이런 문제를 해결할 가장 간단한 방법이 가장 최선인 법이거든. 녀석 손에 놀아나는 좋지 않아.”

나는 집으로 왔다. 마치 년쯤 떠돌다 돌아온 같았다. 모든 것이 달라 보였다. 나와 크로머의 관계도 뭐라고 할까, 미래나 희망 같은 것들이 있었다. 나는 이상 혼자가 아니었다. 그제야 비밀을 끌어안고 몸살을 앓았던 주간이 얼마나 무섭게 외로웠는지 확실히 느꼈다. 나는 그동안 여러 깊이 생각했던 것들을 떠올렸다. 부모님께 잘못을 모두 고백하고 용서를 빌면 고통은 덜어지겠지만 그것이 나를 완전하게 구원받을 수는 없다. 하지만 나는 방금 고해를 할뻔했다. 다른 사람, 그것도 낯선 사람에게. 그렇게 수만 있다면 구원받을 있다는 예감이 진한 향기처럼 밀려왔다.

후에도 나의 불안감은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나는 적과 무섭고 대결을 펼칠 각오를 하고 있었다. 모든 일이 그렇게 완벽하게 비밀스럽고도 평화롭게 흘러가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우리 앞에서 들려오던 크로머의 날카로운 휘파람 소리가 하루, 이틀, 사흘, …… 일주일이 지나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이런 사실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크로머가 전혀 예기치 못한 순간에 다시 나타나지는 않을까 조바심을 내며 망을 보았다. 그러나 크로머는 우리 집에 찾아오지도, 불쑥 나타나지도 않았다. 놀라운 자유가 믿기지 않았다. 마침내 어느 나는 프란츠 크로머를 우연히 마주치게 되었다. 그때까지도 나는 자유에 불안감이 있었다. 크로머는 자일러 거리에서 쪽으로 오는 중이었는데, 나를 보고 놀라고는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나를 피해 곧바로 돌아서서 버렸다.

지금까지 이런 순간은 없었다. 나의 적이 앞에서 도망치다니! 악마가 나를 두려워하다니! 기쁨과 놀라움이 온몸을 관통해 지나갔다.

무렵의 어느 데미안이 다시 나타났다. 그는 학교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안녕.”

나는 인사를 했다.

안녕, 싱클레어. 지냈어? 어떻게 지내는지 만나고 싶었어. 이제 크로머도 이상 괴롭히지 않을 거야. 그렇지 않니?”

네가 그렇게 거야? 대체 어떻게? 어떻게 했어? 도무지 영문을 모르겠어. 녀석이 아예 나타나질 않아.”

잘됐네. 그러지 않겠지만, 워낙 뻔뻔스러운 놈이니까 녀석이 다시 나타나기라도 하면 그땐 녀석에게 데미안을 떠올리라는 말만 .”

그게 무슨 말이야? 녀석하고 싸워서 실컷 때린 거야?”

아니, 싸우는 별로 좋아하지 않아. 너랑 것처럼 녀석하고도 이야기를 했을 뿐이야. 너를 가만히 내버려 두는 것이 녀석에게도 이로울 거라고 분명하게 말했어.”

녀석한테 돈을 아니겠지?”

아니야, 그런 방법이라면 네가 이미 시험해 봤잖아.”

나는 자세하게 물어보려 했지만 데미안은 자리를 떠났다. 나는 예전부터 데미안에게 느꼈던 감사와 두려움, 놀라움과 불안감, 호감과 내면에서의 반항심이 뒤섞인 답답함을 느끼며 자리에 남아 있었다.

나는 빠른 시일 내에 다시 데미안을 만나서 크로머와 있었던 모든 일에 대해, 카인의 문제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진 않았다.

나는 감사라는 감정 자체를 전혀 믿지 않았다. 그리고 어린아이에게 감사의 표시를 요구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데미안에게 감사해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물론 데미안이 나를 크로머의 손아귀에서 구해 주지 안았다면 나는 평생 병들고 쇠약했을 거라고 확신한다. 당시에도 구원의 순간이 소년 시절의 가장 경험이라고 느꼈다. 하지만 구원의 손길을 건네며 기적을 이루어 사람은 금방 잊어버린 것이다.

이미 말했듯이 감사해하지 않았다는 것은 별일이 아니었다. 특이한 것은 내가 호기심을 느끼지 않았다는 것이다. 데미안과 나를 만나게 했던 비밀들을 자세히 캐내지 않고서도 편안하게 지낼 있었다는 신기했다. 나는 어떻게 카인에 대해서, 크로머에 대해서, 독심술에 대해서, 많이 야야기하고 싶은 호기심을 억눌렀을까?

이런 일을 전혀 이해할 없었지만 사실이 그러했다. 갑작스럽게 나는 악마의 손아귀에 풀려났고 앞에는 다시 밝고 즐거운 세계가 놓여 있었다. 이상 불안한 발작과 숨이 막힐 듯한 심장 고동 소리에 시달리지 않았다. 저주는 풀렸고 나는 이상 죄인이 아니었다. 다소 평소처럼 학생으로 돌아간 것이다. 나의 본성을 있는 빨리 이전처럼 균형과 평온 속으로 되돌아가려고 했다. 무엇보다 많은 끔찍한 일들과 고통스러운 일들을 빨리 떨쳐 내고, 잊어버리려고 노력했다. 나의 , 고통의 역사는 어떤 외상도 남기지 않은 너무도 빨리 기억에서 잊혀갔다.

나를 도와주고 구원해 사람을 발리 잊어버리려 했다는 것이 이제는 이해된다. 저주받은 죄의 구렁텅이 속에서, 크로머에게 당했던 무서운 속박에서, 상처받은 영혼이 힘과 노력을 다해 도망쳐서 예전의 행복과 만족스러운 세계로 돌아온 것이다. 다시 열린 잃어버린 낙원으로, 아버지와 어머니의 밝은 세계로, 누나들에게로, 정결한 좋은 향기로, 아벨이 누렸던 신의 사랑으로 나는 되돌아왔다.

데미안과 짧은 이야기를 나누었던 그다음 , 다시 찾은 자유에 충분한 확신이 서고 다시 자유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믿음이 생겼을 내가 그토록 간절히 염원하고 소망했던 일을 실행에 옮겼다. 고해를 것이다. 나는 어머니께 열쇠가 망가지고 장난감 돈이 채워진 저금통을 가져다 보여 드리고, 바보 같은 거짓말 때문ㅇ에 얼마나 오랜동안 못된 녀석에게 시달림을 당했는지 고백했다. 어머니는 전부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저금통과 변한 눈빛을 보고, 달라진 나의 목소리를 듣고서 내가 어머니의 아들로 되돌아왔다는 것을 느끼쎴다.

흥분된 마음으로 나는 귀환의 축제를 벌이고 방탕아의 귀향 의식을 거행했다. 어머니는 나를 아버지께 데리고 가셨다. 나의 고백은 되풀이되었고, 부모님은 내게 잘못을 하면 놀라하시더니 머리를 쓰다듬으시며 오랜 시간 걱정으로 짓눌린 마음에서 벗어난 안도의 한숨을 쉬셨다. 모든 것이 멋있고 동화 이야기 같았다. 모든 것이 놀랍게도 순조로웠다.

나는 사력을 다해 평온 속으로 도피해 들어갔다. 평화를 되찾고, 다시 아버지와 어머니의 신뢰를 받는다는 아무래도 싫증 나지 않았다. 나는 모범적인 소년이 되었고, 예전보다 누나들과도 어울렸으며, 예배를 드릴 때는 구원받고 회개한 사람으로 감사함이 넘치는 마음을 담아 내가 좋아하던 찬송가를 함께 불렀다. 이런 일들은 조금의 거짓도 없이 진심에서 우러나왔다.

그럼에도 모든 일이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바로 지점에서 데미안을 잊고 있었던 이유를 해명할 있다. 나는 데미안에게 고해를 했어야 한다. 그렇게 했다면 고해가 집에서처럼 화려하고 감동적이지는 않았겠지만, 해방감을 느끼는 결과를 주었을 것이다. 그때의 나는 사력을 대해 옛날의 낙원에 집착했고, 귀향한 것처럼 관대하게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데미안은 세계에 속한 사람이 아니고, 세계에 어울리지도 않았다. 데미안은 크로머와는 달랐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또한 나를 유혹하는 사람이었다. 다시는 알고 싶지 않은 다른 세계와 나를 엮으려는 유혹이었다. 스스로가 이제야 겨우 아벨로 돌아왔는데 또다시 아벨을 버리고 카인을 찬양하는 일을 도울 수는 없었고 그렇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

이것은 표면적인 상황이었고, 내면적인 상황은 달랐다. 나는 크로머의 손아귀에서 풀려나지만 스스로의 힘으로 벗어났던 것은 아니다. 나는 세상의 작은 길을 똑바로 걸어가려고 애를 썼지만 길은 내게 너무 위험했다. 친절한 손길 하나가 위험에 처한 나를 구해 지금, 나는 한눈팔지 않고 곧장 어머니의 , 경건하고 아늑한 어린 시절의 보호 속으로 되돌아왔다. 나는 원래의 모습보다 어리고 의존적으로 어린애처럼 굴었다. 이미 나는 혼자 자립해서 걸어갈 능력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크로머에게 순종했던 것을 대체할 만한 의존적인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래서 나는 맹목적이다 싶을 정도로 아버지와 어머니의 보호 속에 있는밝은 세계 의존하고자 했다. 세계가 유일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분명히 데미안에게 의지해 속마음을 전부 털어놓았을 것이다. 내가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는 당시 나의 상식적인 사고에서는 데미안의 이단적인 생각이 불신의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사실을 말하자면 그것은 두려움이었다. 데미안은 부모님이 요구하는 이상으로 많은 것을, 훨씬 많은 것을 나에게 요구했을 것이다. 그러고는 자극과 경고로, 조롱과 풍자로 나를 지금보다 자립적인 인간으로 만들려고 애썼을 것이다. 지금에서야 알았다. 인간에게 자아를 향해 나아가는 일보다 어려운 일은 없다는 것을!

그럼에도 나는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년쯤 뒤에 산책길에서 아버지께 아벨보다 카인이 훌륭하다는 말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아버지는 질문에 무척 놀라면서 새로운 것이 없는 견해라고 설명해 주셨다. 관점은 기독교 이전 시대에도 등장해서 여러 종파들로 전수되었는데, 종파들 하나가카인교도라도 불렸다고 하셨다. 하지만 이러한 이단적인 학설은 우리의 신앙을 파과하려는 악마의 시험과 다를 바가 없고, 카인이 옳고 아벨이 잘못되었다고 한다면 신이 오류를 범한 것이기 때문에 성경의 신은 올바른 유일신이 아닌 잘못된 신이 되어 버리고 만다. 실제 카인교도들은 이와 비슷한 견해를 가르치고 주장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이교도들은 오랜전에 인류의 역사에서 사라져 버렸다. 아버지는 나의 학교 친구가 이런 것들을 알고 있다는 놀랍다고 생각하셨다. 그리고 이런 사고는 당연히 배척해야 한다고 진지하게 경고하셨다.

 

예수 옆에 매달린 도둑

 

유년 시절은 어머니와 아버지의 보호 아래 온화하고 사랑스럽게 밝은 환경에서 즐겁고 만족스럽게 사랑받으며 성장할 있도록 보살핌을 온갖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단어들로 표현할 있는 생활이었다. 하지만 내가 가장 관심 있는 것은 자아에 도달하기 위해 걸었던 발자취뿐이었다. 유년 시절의 아름다운 휴식처, 행복의 섬과 낙원들의 매력을 모르는 아니다. 하지만 모든 것은 아득한 광채 속에 남겨 놓으려 한다. 시절로 나는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

그래서 유년 시절에 관해서는 나에게 어떤 새로운 일들이 닥쳐와서 나를 앞으로 내몰고 찢겨 냈는지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려 한다.

이런 충격은 언제나다른 세계에서 왔으며, 불안함과 강요와 양심의 가책을 함께 가져다주었고 언제나 놀랄 만큼 혁신적이어서 내가 머물려고 애썼던 평화로운 상태를 뒤흔들어 놓았다.

안에 꿈틀거리는 본능적인 충돌을 밝은 세계에서는 드러나지 않도록 숨길 만한 곳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는 나이가 되었다.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성에 관한 호기심이 나에게 적이자 파과자로, 금기로, 유혹으로, 죄악으로 찾아들었다. 성에 관한 호기심은 내게 꿈과 쾌락과 두려움, 그리고 사춘기의 비밀 같은 것이 유년 시절의 평화와는 어울리지 않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행동할 수밖에 없었다. 어린아이가 아니었으면서도 아이처럼 생활하며 이중적으로 굴었다. 나의 의식은 세상이 허용하는 밝은 세계에 속해 있으면서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새로운 세계를 강하게 부정했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은밀한 꿈과 충돌과 갈망 속에서 살았다. 그리고 위에 점점 위태로워지는 의식적인 생활의 다리를 걸쳐 놓았다. 나의 내면은 이미 유년의 세계가 모두 무너져 내렸다.

우리 부모님 역시 대부분의 부모님들처럼 드러내서 말하기 어려운 사춘기의 살아 있는 충동을 모르쇠 하셨다. 다만 갈수록 비현실적이고 판타지일 밖에에 없는 유년 시절에 머무르려고 현실을 거부하는 나의 헛된 노력을 도와주실 뿐이었다. 부모님들이 이런 부분에서 있는 역할이 무엇인지 나는 아직도 모르겠기에 우리 부모님을 비난할  마음은 없다. 자신을 관리하고 자신이 나아갈 길을 찾는 것은 자신 스스로 해내야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여느 명문가 자식들이 그러하듯이 자신의 문제를 처리하지 못하고 있었다.

누구나 이런 경험을 한다. 경험들을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인생의 분기점이 된다. 자기 삶의 욕구가 주변 세계와 갈등에 빠지고, 혼신의 힘을 다해 싸워서 쟁취해야만 앞으로 나아갈 있다. 대부분 사람들을 사랑했던 모든 것이 갑작스럽게 우리를 떠나려고 하고 고독과 죽음처럼 치명적인 추위에 둘러싸인 공간이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고 느낄 , 유년 시절이 무너져 내리고 그제야 우리들이 숙명인 죽음과 새로운 탄생을 받아들일 밖에 없다는 사실을 체험한다. 이러한 경험은 평생에 걸쳐 가능한 것이다. 많은 사람이 경험을 제대로 극복하지 못한 돌이킬 없는 과거에 집착하고, 잃어버린 낙원을 꿈구며, 수많은 중에 가장 악질적이고 가장 살인적인 꿈에 매달려 헤어 나오지 못한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자, 유년 시절의 끝을 알리던 감정과 환상들은 그리 중요하지 않아서 이야깃거리는 되지 않는다. 다만 중요한 것은어두운 세계다른 세계 다시 등장했다는 것이다. 한때 프라츠 크로머였던 무엇이 이제는 자신 속에 들어앉아 있었다. ‘다른 세계 나를 지배하는 힘이 다시 외부에서 얻은 것이다.

크로머와의 일이 있은 년이 흐른 뒤였다. 어린 시절 극적이고 죄에 가득 기억들은 곳으로 물러나 짧은 악몽처럼 사라져 버린 후였다. 오랜전부터 프란츠 크로머는 속에서 존재하지 않았고, 크로머와 마주치는 겨우에도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비극에서 중요한 다른 명의 주인공 막스 데미안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오랜동안 데미안은 멀리 떨어진 곳에서 가끔 보이긴 했지만 어떤 영향을 주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제 데미안이 점점 가까이 다가와서 힘과 영향력을 다시 발휘하기 시작했다.

시절의 데미안에 대해 내가 아는 전부를 떠올려 보면, , 아니 이상 데미안과 번도 대화를 나눈 적이 없었던 같다. 되도록 내가 데미안을 피했고, 데미안도 결코 나에게 다가오지 않았다. 언젠가 우리가 우연히 마주쳤을 데미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귀에는 간혹, 어쩌면 나의 착각일지도 모르겠지만, 데미안은 친절함은 냉소와 묘한 비난이 뒤섞여 있는 같아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데미안과 내가 함께 겪은 일과 당시 나에게 미쳤던 영향을 나도 데미안도 거의 잊은 듯했다.

데미안의 모습을 생각해 내어 볼까. 이제 다시 데미안의 모습을 떠올려 보니 잊은 듯했지만 데미안은 언제나 그곳에 있었고, 눈에 자주 띄었다는 알았다. 데미안이 학교에 가는 모습, 혼자 있거나 다른 아이들 틈에 끼어 있는 모습, 자신만의 특별한 분위기에 감싸인 채로 자신만의 법칙 아래에 살면서 진귀하고 고독하고 조용하게 아이들 사이에서 마치 그렇게 별처럼 걷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누구도 데미안을 사랑하지 않았으며, 데미안과 친하지도 않았다. 오직 데미안의 어머니만이 예외였다. 하지만 데미안을 아이처럼 대하지 않고 성숙한 어른처럼 대하는 같았다. 선생님들도 되도록 데미안을 내버려 두었다. 데미안은 좋은 학생이었지만 누구의 마음에 들려고 애씨지 않았다. 우리는 가끔 선생님의 심한 도전이나 비아낭거림으로 여길 만한 어떤 말이나 비평이나 항의를 데미안이 했다는 소문을 들었다.

눈을 감고 떠올려 보면 데미안의 모습이 선하다. 그곳은 어디였을까? 이젠 머릿속에 그곳이 떠오른다. 우리 골목이었다. 하루는 그곳에서 노트를 들고 있는 데미안을 보았다. 그는 우리 현관문 위에 있는 낡은 모양의 문장을 그리고 있었다. 나는 창가의 커튼 뒤에 숨어 데미안을 바라보았는데, 문장을 꿰뚫어 보듯이 응시하는 예리하고도 차갑고 환한 그의 얼굴이 놀라웠다. 그건 어른의 얼굴이었고, 연구가나 예술가의 얼굴처럼 보였으며, 탁월하고 의지로 가득 얼굴이었고, 이상하리만큼 환하고 차갑고 총명한 눈을 가진 얼굴이었다.

또다시 데미안의 모습이 보인다. 며칠 거리에서였다.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우리들은 모두 쓰러진 주위에 에워싸고 있었다. 말은 아직도 끌채에 묶인 채로 농가용 마차 앞에 쓰러져 있었다. 말은 무언가를 애원하듯이 간신히 콧구멍을 벌름거리며 숨을 헐떡거렸고,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어딘가의 상처에서 흘러내린 피가 옆구리와 거리의 하얀 먼지를 검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메스꺼움에 광경에서 몸을 돌렸을 나는 데미안의 얼굴을 보았다. 그는 앞으로 비지고 나오려 하지 않고 그와 어울리게 뒤쪽에 편안하고 여유 있는 모습으로 있었다. 데미안의 시선은 말의 머리에 고정된 같았다. 여전히 깊고 고요하고 열광적이지만, 한편으로는 놀랄 만큼 냉정하게 느껴지는 집중력이었다. 나는 오랫돌안 데미안을 쳐다보지 않을 없었다. 나는 분명하게 의식한 것은 아니지만, 바로 그때 매우 독특한 것을 느꼈다. 나는 데미안의 얼굴을 보고 있었다. 나는 데미안의 얼굴에 소년의 얼굴이나 어른의 얼굴 말고도 많은 다른 것이 담겨 있다는 발견했다. 데미안의 얼굴은 소년의 얼굴이 아닌 다른 무엇이었다. 여자의 얼굴도 조금은 담긴 같았다. 데미안의 얼굴은 어른이나 아이, 나이 들었거나 어리거나를 넘어서서 왠지 수천 살쯤 되거나 시간을 초월한 모습처럼 보이기도 했고, 우리가 사는 곳과는 다른 시간대의 세계에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짐승이나 나무나 별이 그렇게 보일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어른이 되어서 지금에야 말하는 것들을 그때 당시에는 정확히 몰랐고 제대로 느끼지도 못했다. 단지 무언가 비슷한 것을 느꼈다. 아마도 데미안은 미남이었던 같고, 그런 그가 어쩌면 마음에 들었던 것일 수도 있고 눈에 거슬렸을 수도 있다. 어떤 것도 확실하지 않다. 나는 데미안이 우리들과는 다른 마리 짐승처럼, 혹은 영혼이나 환상과도 같은 존재처럼 느껴졌다. 그때 데미안이 진짜 모습 어떤 모습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들의 생각으로는 닿지 않을 만큼 다른 사람이었다.

이상은 아무것도 기억나질 않는다. 이것마저도 일부분은 후의 인상들에서 재구성해 건지도 모른다.

년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나는 데미안과 다시 가까워졌다. 데미안은 동급생과 같은 시기에 교회의 견진성사를 받지 않았다. 이런 일은 당시 관습에는 어긋나는 것이라 금방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학교에서는 그가 원래 유대인이다 이교도다 하는 소문들이 파다했다. 어떤 아이들은 데미안과 자신의 어머니와 애인 사이로 살고 있다는 말도 나돌았다. 아마도 지금껏 데미안은 신앙 없이 자란 같았고 부분이 데미안의 미래에 어떤 불이익을 가져올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불러일으킨 같다. 그래서였을까, 데미안의 어머니는 2년이 지나서야 뒤늦게 데미안이 견진성사를 받도록 했다. 이렇게 해서 데미안은 달간의 견진성사 수업 동안 나와 동급생이 되었다.

얼마간 나는 데미안에게 멀리 떨어져 있었다. 되로록이면 데미안과는 어울리고 싶지 않았다. 그는 너무나 많은 소문과 비밀로 에워싸인 인물이었다. 그러나 사실은 크로머 사건 이후로 내게 꺼림칙하게 남아 있던 빚진 마음이 데미안과 가까워지는 것을 막았다. 그리고 자신만의 비밀에 집중하느라 데미안에게 신경 겨를이 없었다. 견진성사 수업 기간은 내가 성적인 문제에 결정적으로 눈뜬 시기와 일치했다. 그래서인지 집중하려 노력했지만 경건한 교리가 관심을 끌지는 못했다. 신부님의 말씀은 나에게는 멀리 떨여져 있는 고요하고 성스러운 비현실적인 세계에 존재하는 이야기였다. 그것이 제아무리 아름답고 가치 있다 하더라도, 적어도 현실적이거나 자극적이지 않았다. 그에 반해 성적인 문제는 눈뜨기 시작한 바로 앞의 현실이었고, 매우 자극적이었다.

이러한 상태 때문에 갈수록 나는 수업에 무관심해졌고, 그만큼 데미안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다. 무엇인가가 우리들을 연결해 주는 같았다. 나는 기억의 끈을 정확히 따라가야겠다. 생각으로 그것은 이른 아침에 아직 교실 불이 켜져 있던 때의 일이었다. 신부님의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를 하셨지만, 나는 신부님의 이야기에 기울이지 않고 졸음에 빠져들고 있었다. 신부님이 어조를 높이고 힘을 주면서 카인의 표적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했던 바로 그때, 영감이랄까 경고 같은 것이 느껴졌다. 시선을 들어 보니 앞줄에서 데미안이 쪽으로 얼굴을 돌리고 있었다. 데미안의 눈빛은 초롱초롱 빛나며 말을 걸어오는 듯했다. 진지하지만 냉정한 조롱이 섞인 눈빛이었다. 데미안은 아주 잠시 동안 나를 쳐다봤을 뿐인데 나는 괜히 긴장이 되어서 신부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다. 카인의 표적에 대한 이야기를 신부님께 들으면서 신부님의 말씀을 다른 시선으로 수도 있고 신부님의 관점을 비판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영혼 깊숙한 곳에서 감지되기 시작했다.

순간 나는 데미안과 새로운 관계를 맺었다. 우리의 영혼이 다시 어떠한 연관을 갖게 되었다고 느끼는 순간, 신기하게도 생각은 마술처럼 공간 속에 전파되어 갔다. 이것이 데미안의 때문인지, 순전한 우연이었는지는 없지만 당시에는 우연이라고 생각했다. 며칠 데미안은 갑자기 견진성사 수업 시간에 자리를 바꾸어 바로 앞줄에 앉았다(사람이 넘치게 들어찬 교실이 빈민촌 같은 냄새가 났다. 하지만 아침마다 데미안의 목덜미에서 풍기는 비누 냄새는 얼마나 부드럽고 신선했는지 아직까지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며칠이 흐른 데미안은 다시 자리를 이동해서 옆에 앉았고 겨울과 봄이 가도록 자리를 옮기지 않았다.

지루한 아침 수업은 완전히 달라졌다. 이제 수업은 졸리지도 지루하지도 않았다. 어느새 나는 시간을 기대하고 있었다. 우리 사람은 가끔 극도로 집중해서 신부님이 말씀에 귀를 기울였는데  곁에 앉은 데이안은 눈빛 번으로 주의해서 들을 이야기나 말을 나에게 일러 주었고 나는 신호를 따랐다. 다른 아이들과 완전히 판이한 데미안의 집중된 눈빛은 나에게는 무언가 경고를 느끼게 했고 마음 안에서 의심과 비판적인 생각이 생겨나도록 했다.

우리는 가끔 교실에서는 말을 듣는 불량 학생이었다. 데미안은 그랬듯이 선생닌과 친구들에게 공손하게 행동했다. 아이들이 흔하게 저지르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는 일이 전혀 없었고, 크게 웃거나 떠들지도 않았으며, 선생님께 꾸중을 듣는 일도 없었다. 데미안은 조용히 속삭여 말하지 않고 손짓과 눈빛만으로 나를 자신이 관심사로 끌어들였다. 이렇게 묘한 경우가 가끔 있었다.

예를 들어 데미안이 어떤 아이에게 흥미가 생기면 아이를 어떻게 관찰하는 말해 적이 있었다. 데미안은 많은 아이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수업이 시작되기 전에 데미안이 말했다.

내가 엄지손가락으로 너한테 신호를 하면서 애가 우리를 돌아보거나 목을 긁을 거야.”

수업이 시작되고, 내가 말을 까맣게 잊고 있을 무렵 데미안은 갑자기 눈에 띄게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나는 급하게 데미안이 가리켰던 아이를 바라봤다. 친구는 무슨 철사 줄에라도 끌려오듯이 우리를 쳐다보거나 머리를 긁적였다. 선생님께 한번 시험해 보자고 데미안을 졸랐지만 부탁은 들어주지 않았다. 하지만 언젠가 한번은 과제를 복습해 오지 않은 신부님이 나에게 질문을 했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부탁은 들어주었다. 신부님은 문답 교과서 구절을 암송시킬 아이를 찾다가 마침 시선이 죄지은 듯이 불안해 떨고 있는 얼굴을 멈추었다. 신부님은 천천히 데미안의 옆으로 다가와서는 나를 향해 손짓을 하면 이름을 부르려는 찰나, 무언가 마음이 복잡한 옷깃을 만지작거렸다. 그러더니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는 데미안에게 시건을 옮겨 무엇인가를 물어보려다가는 갑자기 몸을 돌려 잠시 기침을 하고 다른 학생을 시켰다.

장난은 무척 재미있었는데 데미안이 나에게도 번번히 같은 장난을 한다는 알아챘다. 등굣길에 갑자기 데미안이 뒤를 따라온다는 느낌이 들어서 돌아보면 데미안이 정말로 거기에 있곤 했다.

정말로 원하는 대로 다른 사람의 생각을 조정할 있어?”

내가 물었다.

데미안은 흔쾌히 친절하고 논리적으로 어른스럽게 설명해 주었다.

아니.”

그는 말했다.

그건 불가능해. 신부님께서 말씀하셨지만 사람한테 자유 의지란 없어. 다른 사람한테 내가 원하는 것들을 생각하게 만들 없듯이 나도 내가 원하는 남한테 생각하게 만들 없어. 하지만 우린 사람들을 관찰할 있어. 그러면 가끔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를 정확하게 알아차릴 있지. 그렇게 하면 대개 사람이 다음 순간엔 무엇을 건지도 예측할 있는 거지. 아주 간단해. 단지 다른 사람들은 그걸 모르고 있을 뿐이지. 물론 연습이 필요하긴 . 예를 들면, 나비 종류 중에는 수컷보다는 암컷의 수가 훨씬 적은 나방이 있어. 나방도 다른 곤충들처럼 똑같이 번식을 . 수컷이 암컷을 수정시키면 암컷이 알을 낳는 거야. 만약에 네가 지금 암컷 나방을 마리 가지고 있다면-이런 실험은 생물학자들이 자주 하는데- 암컷을 찾아서 밤에 수컷들이 날아오는 것을 있을 거야. 시간씩 걸리는 곳에서 날아온 거지. 시간이나 되는데! 생각해 . 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에서도 수컷들이 부근의 유일한 암컷을 알아차리는 거야. 사람들은 사실을 증명해 보려고 애쓰지만 어려운 문제야. 어떤 냄새나 비슷한 무언가가 있겠지. 사냥개가 눈에 보이지도 않는 흔적을 추적해 내는 것처럼 말이지. 알겠어? 그것도 바로 이런 종류의 경우야. 생태계에서는 이런 일이 많이 일어나고 있지만 아무도 그것을 명확하게 설명할 수는 없어. 하지만 정도는 설명할 있겠지. 만일 나방의 암컷이 수컷만큼 많이 있었다면 그것들도 그렇게 예민한 후각을 갖진 않았을 거야. 나방들은 짝을 찾는 일에 여러 세대를 걸쳐 훈련되었기 때문에 그런 후각을 갖게 거지. 짐승과 마찬가지로 인간도 자신의 모든 주의력과 의지를 어느 한곳에 모은다면 목표에 도달할 있을 거야. 그게 전부야. 네가 생각하고 있는 것도 바로 그래. 어떤 사람을 아주 세밀하게 관찰해 . 그럼 자기 자신보다 상대방에 대해 많이 알게 거야.”

독심술이란 단어를 상기시켜 오래 묻어 두었던 크로머와의 사건을 떠올려 볼까도 생각했다. 그러나 일은 우리 사이에서 아주 미묘한 문제였다. 수년 전에 데미안이 생활에 개입했던 일에 대해서는 아주 조금이라도 서로 암시하는 없이 지내 왔다. 마치 없었던 일처럼 여기거나 서로 상대방이 일을 깡그리 잊었다고 여기는 같은 상태였다. 번쯤 함께 거리를 걷다가 크로머를 만난 적도 있었지만 우리는 서로 시선을 마주치지도 않았고 크로머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지도 않았다.

그럼 자유 의지는 어떻게 되는 거야?”

내가 물었다.

사람은 자유 의지를 갖고 있지 않다고 말했으면서도 사람이 그의 의지를 어느 곳에 집중시키면 자신의 목적에 도달할 있다고 말했어. 그건 서로 모순되는 말인걸. 내가 의지를 지배할 없다면 의지를 마음대로 집중시킬 수도 없지 않을까?”

그는 어깨를 쳤다. 그건 내가 그를 즐겁게 했을 하는 행동이었다.

좋은 질문이야.”

데미안은 웃으면서 말했다.

사람은 항상 되묻고 의심해야 하는 거야. 그렇지만 문제는 지극히 단순해. 예를 들어 아까 이야기한 나방이 자기의 의지를 별이라든가 또는 밖의 어디엔가 집중하는 불가능해. 단지- 나방들은 처음부터 그런 노력은 하지 않아. 오직 나방들에게 의의와 가치가 있는 , 나방들이 필요로 하는 , 얻어야만 하는 것만 찾기 때문이야. 그렇게 때만이 믿을 없는 일까지 성공할 있는 거야.-그럴 때에야 나방들은 자신들 외에는 다른 어떤 짐승도 가질 없는 불가사의한 육감을 발전시키는 거지. 우리들은 분명히 짐승들보다는 많은 활동 영역과 흥미를 갖고 있어. 하지만 우리들 역시 꽤나 좁은 범위 내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제약이 있어서 이상을 성취하긴 힘들어. 분명 이것저것 상상할 수는 있어. 무조건 북극에 가고 싶다던가 하는 상상처럼 말이야. 하지만 소원이 정말 자신 안에 충만하게 스며들어 있고, 나의 모든 존개가 그것 하나로 가득 있을 때에만 상상하던 것을 실행할 있고 원하는 만큼 강하게 바랄 수도 있는 거야. 그렇게만 된다면 너의 내부에서 요구하는 것들을 실행해 보기 무섭게 잘될 거야. 너의 의지를 훈련이 잘된 망아지처럼 다룰 있는 거지. 만약 지금 내가 신부님이 앞으로 안경을 쓰지 않도록 하려고 상상한다는 말이야. 그건 단순한 장난에 불과해. 지난 가을에 나는 앞쪽의 자리를 조금 뒤로 옮겼으면 하는 강한 염원이 있었는데 그건 아주 실행됐어. 그때 마침 이름 순서로 봤을 앞에 앉아야 하는 애가 나타났거든. 아이는 아프다가 다시 학교에 나왔기 때문에 누군가가 자리를 내줘야 했어. 내가 비켜 줬지. 그건 의지가 기회를 잡을 준비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야.’

그래

나는 말했다.

나는 당신의 일을 매우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우리가 서로에게 흥미를 느꼈을 무렵부터 나에게로 점점 가까이 왔지. 그런데 그건 그랬어? 처음부터 바로 옆에 앉지 않고 번은 앞자리에 앉았잖아. 그렇지 않니? 그건 그랬어?”

처음 자리를 옮길 때에는 스스로도 어디에 앉고 싶은 건지 확실하게 알지 못했어. 그저 뒤쪽으로 가고 싶다고 느꼈을 뿐이었지. 옆에 앉아야겠다는 의지였지만 처음엔 그걸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거야. 너의 의지도 동시에 나를 이끌어 주고 있었어. 내가 앞에 앉았을 나는 소원을 이제 반쯤 이뤘다고  느꼈어. 내가 옆에 앉는 말고는 바라는 것이 없다는 인식한 거지.”

하지만 그땐 새로 들어온 학생이 없었을걸.”

그랬지. 하지만 말이야. 나는 그때 단순히 내가 원하던 실행했을 뿐이야. 아주 쉬운 방법으로 옆에 앉은 거지. 나와 자리를 바꿨던 아이는 이상하다 느꼈을 전혀 상관하지 않았거든. 신부님은 분명 번쯤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셨을 거야. 예를 들면, 신부님은 나와 관련한 일이 있을 때만다 알게 모르게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을 거야. 이름이 데미안이고, D자로 시작되는 이름의 내가 뒤쪽의 S 사이에 앉아 있는 맞지 않다는 알았을 거란 말이지! 그러나 의지가 자꾸 의혹을 반대하고 방해했기 때문에 거기까지는 신부님의 의식이 미치지 못한 거야. 신부님이 여러번 무엇인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고는 나를 쳐다보고 연구하기 시작했었지. 하지만 나는 그럴 대처하는 좋은 방법을 알고 있어. 매번 신부님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거야. 거의 모든 사람은 시선을 견디지 못해. 왠지 불안해지는 거지. 만약 네가 누군가에게 뭔가를 관철시키고 싶다면 갑자기 상대방의 눈을 흔들림 없이 응시해 . 그때 상대가 하나도 불안해하지 않으면 일을 단념하는 것이 좋아. 사람한테는 아무것도 얻어 없으니까 말이야. 하지만 그런 일은 아주 드물지. 그런 방법이 통하지 않는 사람은 명밖에 보지 못했어.”

그게 누구니?”

나는 재빨리 물어보았다.

데미안은 가끔 깊이 생각에 잠길 버릇처럼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데미안은 시선을 돌리고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나는 몹시 궁금했지만 다시 물어볼 수는 없었다.

나는 그때 데미안이 자신의 어머니에 대해 말하려고 했다고 생각한다-그는 어머니와 무척 친밀하게 지내는 같았지만, 어머니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집에 데리고 적은 번도 없었다. 나는 그의 어머니가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전혀 모르고 있었다.

당시 나는 어떤 일을 성취하기 위해서 여러 시도하고 의지를 집중하는 노력을 했다. 아주 간절한 소원이 있었다. 하지만 방법은 소용이 없었고 성공할 수도 없었다. 소원을 데미안에게는 말하지 못했다. 내가 소망하는 것을 데미안에게 고백하기가 어려웠다. 데미안 역시 묻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나의 신앙심에는 많은 틈이 생겼다. 생각은 데미안의 영향을 크게 받긴 했지만 신의 존재를 전혀 믿지 않는 다른 동급생들과는 달랐다. 이런 무신론자가 몇몇 있긴 했다. 그들은 유일신을 믿는다는 가소롭고 인간답지 않은 일이며 삼위일체나 예수의 동정녀 탄생 따위는 웃음거리에 불과한데, 아직도 촌스러운 생각을 한다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라는 이야기를 하곤 했다. 나는 결코 그렇게는 생각하지 않았다. 역시 많은 의혹을 품고 있었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유년 시절의 모든 체험을 통해 우리 부모님이 영위하고 있는 경건한 생활이 실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것이 가치가 없는 일이라는 데에도, 단지 위선일 뿐이라는 말에도 나는 동의하지 않았다. 나는 오히려 종교적인 것들에 여전히 가장 깊은 경외심을 갖고 있었다. 오직 데미안만이 내가 성서 이야기와 교리에 대해서 자유롭게 개인적으로 유희할 있고, 상상력 넘치게 보고 해석할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가 제시한 해석을 나는 언제나 흔쾌하고 즐겁게 받아들였다. 나에게는 지나치게 거부 반응을 일으키는 생각들도 많이 있었다. 카인에 관한 문제 역시 그랬다. 언젠가 한번은 견진성사 수업 중에 데미안은 이보다 대담할 수는 없을 같은 견해로 나를 놀라게 했다. 선생님은 골고다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계셨다. 나는 옛날부터 예수의 고난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아주 인상 깊게 생각했다. 어렸을 예수 수난일 같은 날에 아버지께서 예수 수난사를 낭독해 주시면 나는 열성적으로 감화되어 이렇게 슬프도록 고난에 가득 있는, 아름답지만 창백하고, 섬뜩하지만 무시무시한 생명력이 있는 겟세마네와 골고다의 세계에서 살았다. 바흐의 마태 수난곡을 처음 들었을 때는 신비에 가득 세계의 어둡고도 힘찬 고난의 광채가 경이로운 선물로 마음을 전율시켰다. 지금도 나는 이런 음악과 모든 비극적인 행위에서 모든 시와 예술적인 표현의 본질을 발견한다.

그런데 데미안이 수업이 끝나 무렵 생각에 잠긴 얼굴로 내게 말했다.

싱클레어, 뭔가 이상한 점이 있어. 다시 이야기를 읽어 . 그리고 혀로 맛을 음미해 . 석연치 않은 무언가가 있는 같아. 명의 도둑에 관한 이야기 말이야. 언덕 위엔 개의 십자가가 웅장하게 있어. 그런데 간사한 도둑 이야기는 너무 감상적이고 종교적이지 않아? 누가 봐도 죄인이고 수치스러운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이제 와서 회개하며 후회의 눈물을 흘리는 짓을 하고 있어. 무덤을 바로 옆에 두고서 따위 회개가 무슨 소용이 있지? 그런 일이 가능해? 그건 선교 목적을 갖고 감상적으로 떠들어 대는 달콤한 거짓말에 불과해. 만약 나한테 도둑 가운데 명을 친구로 택하라고 한다면, 적어도 신뢰가 있는 상대를 선택할 거야. 눈물을 짜며 징징거리는 개종자를 선택하진 않을 거야. 당연히 다른 도둑을 선택할 거야. 그는 사나이답고 개성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야. 그의 처지에선 아름다운 유혹일 뿐이었던 회개는 거들떠보지도 않는 거지. 그는 마지막끼지 자신에게 충실했고 마지막 순간까지 그동안 잡아 악마의 손을 비겁하게 놓지 않았어. 그는 내세울 만한 개성이 있어. 특별한 사람들은 대개 성서 속에서는 손해를 보지. 아마 그도 카인의 후예일 거야. 그렇지 않니?”

나는 깜짝 놀랐다. 십자가에 박히는 이야기는 안다고 생각했는데 그의 말을 듣고 나니 나는 상상력이라고는 하나 찾을 없고 개성도 없고 그저 듣고 읽기만 했다는 알았다. 데미안의 새로운 견해는 운명적으로 들렸다. 그것은 내가 고수해야 한다고 생각해 왔던 모든 관념을 뿌리째 흔들었다. 일이었다. 그렇게 내가 가장 신성하다고 생각해 것들 전부를 잃을 수는 없었다.

그는 언제나 그렇듯이 내가 한마디 하기도 전에 의견에 내가 반대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래, 생각은 이미 알고 있어.”

그는 체념하듯이 말했다.

그것 한갓 오래된 이야기에 불과해. 너무 심각할 필요는 없어.-하지만 종교가 가진 결함이 이야기에 나타나 있어. 구약이나 신약에서 유일신의 모습은 아주 완벽하고 훌륭하게 묘사되어 있어. 하지만 그것이 신을 나타내는 본래의 모습은 아니라고 생각해. 신이란 선하고 고결하고 아버지처럼 아름답지만 높은, 감상적인 존재야.-그것은 아주 당연해! 하지만 세상은 다른 세계로도 이루어져 있는 거야. 신은 모든 생명을 근본적으로 찬양하는데 그렇다면 생명의 탄생을 가능하게 하는 성적인 것을 전부 묵살하거나 악마적인 것이나 죄로 여겨 단죄하는하는 이치에 맞지 않아. 나는 사람들이 신을 숭배하는 것에는 반대하지 않아. 그렇지만 우리는 세상에 존재하는 전부를 인정하고 존경하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해. 인위적으로 분리한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절반이 아니라, 온전한 전체를 인정해야 . 우리는 신께 예배하는 동시에 악마에게도 예배해야 . 그래야 옳다고 있어. 자연스럽게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사람들이 습관적으로 묵살하지 않도록 악마까지도 품어 내는 그런 신을 만들어 내지 않으면 안돼.”

데미안은 평소와는 다르게 대단히 흥분해 있었다. 하지만 진정하고 옅은 미소를 짓더니 이상 강요하는 말투로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말을 아무에게도 하지 못하고 혼자서만 간직하고 있던 소년 시절의 나는 심각한 의혹을 품게 되었다. 데미안이 말한 공인된 신의 세계와 금지된 악마의 세계에 관한 나의 생각과 말이다. 자신의 문제가 모든 인간의 문제이고 모든 삶과 생각의 근원이 되는 문제라는 의식이 어떤 성령처럼 나를 뒤덮었다. 자신의 독자적이고 개인적인 삶과 생각이 위대한 사유의 강에 포함되어 있음을 느끼면서 나는 불안하지만 한편으로는 경건한 심정이 되었다. 그러한 깨달음은 나의 존재를 증명해 주고 가벼운 행복감을 느끼게 했지만 즐겁기만 것은 아니었다. 통찰에는 가혹하고도 떫은맛이 있었다. 안에는 인생에 대한 책임이, 나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니며 스스로의 힘으로 인생을 헤쳐 나가야 한다는 인식이 담겼기 때문이었다.

나는 처음으로 이러한 생각들을 드러내면서 데미안에게 유년 시절부터 갖고 있던 개의 세계 관한 견해를 들려 주었다. 그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의 가장 내면적인 심정이 그의 견해와 같으며 정당하다고 생각하고 있음을 알았다. 그러나 데미안은 나의 견해를 이용하지는 않았다. 그는 어느 때보다도 이야기에 깊은 주의력으로 귀를 기울이면서 눈을 응시했다. 나는 그의 시선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 데미안의 시선에는 내가 똑바로 응시할 없는 묘하게 동물적인, 시간을 초월해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존재에서 뿜어져 나오는 무언가가 있었다.

우리 문제는 다음에 이야기해 보자.”

그가 말했다.

네가 사람들한테 말할 없는 이상의 것을 생각하고 있는 알아. 역시 생각대로 인생 전부를 살아 보지 못했다는 알겠지. 그건 좋은 일이 아니야.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생각이 가치 있는 것야. 이미 너한테공인된 세계 세계의 절반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 그러면서도 신부님이나 선생님들의 말씀처럼 다른 절반의 세계를 숨기려고 애썼던 거야. 그걸 숨길 수는 없어. 한번 생각을 시작해 버리면 누구라도 마찬가지야.”

데미안의 이야기는 내게 깊이 닿았다.

하지만

나는 소리치다시피 말했다.

사실, 금지되어 있는 악한 것들도 세상에 존재하고 있어. 너도 그걸 부인할 수는 없을 거야. 그것들은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가 포기할 밖에 없었어. 살인이나 다른 온갖 죄악들이 존재한다는 알아. 하지만 그것이 존재한다고 해서 내가 범죄자가 되어야 한다는 아니잖아?”

이야기를 오늘 전부 끝낼 있는 아니야.”

데미안은 나를 진정시켜려 했다.
살인을 한다거나 소녀를 강간해서는 . 그건 분명히 해서는 일이야. 너는 아직도공인된 금지된 이라고 불리는 것을 스스로 파악할 있는 경지까지는 가지 못했어. 그저 진리의 아주 작은 조각을 탐지한 것뿐이야. 다른 부분들을 많이 찾을 있게 거야. 그렇게 자신을 믿고 맡겨 보면 . 전부터 속에서 어떤 충동이 있었을 텐데, 다른 모든 충동보다도 강하기 때문에금지된 으로 간주되고 있지. 우리들과는 다르게 그리스 사람이나 다른 민족들은 이런 충동을 신성하게 여겨서 굉장한 축제를 벌이고 그것을 기념했어. ‘금지된 영원한 아니야. 변할 수도 있는 거야. 오늘이라도 신부님 앞에서 누군가와 결혼한다면 당장 동침할 있어. 다른 민족은 우리와 달라. 옛날이 아닌 지금도 다르다는 말이지. 그러니까 우리들은 공인된 것과 금지된 것을 각자 자신의 힘으로 찾아야만 . 금지된 일들을 번도 하지 않았어도 실제로는 악당이 있고, 반대가 수도 있어. 편이 쉽거든.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자기 안에서 금지된 것을 스스로 느끼기도 . 다른 모든 사람이 매일같이 하는 일이라도 그들한테는 금지되어 있을 수도 있고, 다른 사람들한테 금지되어 있는 일이 자신들에게는 허용되어 있을 수도 있는 거야. 사람은 각자 독자적으로 판단해야 .”

그는 너무 많은 말을 것을 후회라도 하듯이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나는 그때 데미안의 심정을 어느 정도 이해할 있었다. 어떻게 보면 데미안은 즐거워 보였고 자신의 견해를 닥치는 대로 말하는 같았지만 언젠가 그가 했던 말처럼그저 떠들기 위해이야기하는 것은 참지 못했다. 데미안은 이야기에 내게 진심으로 흥미를 갖기는 했지만 동시에 약간의 재미와 재치 있는 농담으로만 즐기고 있음을 느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완벽한 진지함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

마지막 구절에 완벽한 진지함이란 말을 다시 읽어 보니, 데미안과 함께 경험했던 사춘기의 체험 가운데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이 다시 떠오른다.

마침내 견진성사를 받는 날이 다가오고 있었고, 종교 수업의 마지막 시간은 최후의 만찬에 대해 공부했다. 최후의 만찬은 신부님 생각으로는 무척 중요한 대목이었기 때문에 신부님은 최선을 다해 강의했고, 우리들에게도 신성한 느낌과 기분이 전해져 왔다. 그런데 시간 남지 않은 문답 수업 시간에 생각은 다른 곳을 헤매고 있었다. 친구에 관해서였다. 교회 사회로 입문하는 엄숙한 견진성사를 준비하는 반년 동안의 종교 수업에서 신부님의 설교보다는 데미안 가까이에서 그의 영향 속에 지낸 것에 가치를 느꼈다. 이제 나는 교회가 아닌 아주 다른 사상과 개성의 교단에 입회할 준비가 되었고, 그것은 어떤 모습으로 세상에 분명히 존재할 것이며 데미안은 대표자나 사도 같았다.

나는 이런 생각을 억누려고 애썼다. 어떻게든 나는 견진성사 의식만은 진심으로 경건하게 치르고 싶었다. 그런데 이러한 마음은 나의 새로운 생각과는 조화될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견진성사 의식을 진심으로 다해 치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생각은 교회 의식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판단과 합쳐져서 나는 결국 다른 사람과는 다르게 의식을 치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나에게 의식은 데미안에 열린 사고의 세계의 입문을 의미해야 한다.

데미안과 또다시 뜨거운 토론을 벌인 것도 무렵이었다. 문답 수업 시간이 시작하기 바로 전이었다. 데미안은 아무말이 없었다. 그는 조숙한 , 잘난 척하며 떠드는 이야기를 별로 달가워하지는 않는 같았다.

우린 너무 많은 말을 하고 있어.”

데미안이 정색을 하며 말했다.

말뿐인 이야기는 아무런 가치가 없어. 조금도 가치가 없단 말이야. 자기 자신에게서 멀어질 뿐이야. 자기 자신한테 멀어진다는 죄악이야. 사람은 거북이처럼 자기 자신의 안으로 완전히 들어가지 않으면 되는 거야.”

곧바로 우리는 교실로 들어갔다. 수업이 시작되었고 나는 수업에 열중하려고 애썼다. 데미안도 나를 방해하진 않았다. 잠시 나는 데미안에게 무언가 독특한, 공허한 것처럼 냉정한, 그의 자리가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러자 가슴이 압박감이 느껴졌다. 나는 데미안을 쳐다보지 않을 없었다.

그는 보통 때와 마찬가지로 똑바르고 단정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보였다. 무언가가가 데미안에게서 떨어져 나간 듯했고,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데미안을 감싸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가 눈을 감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데미안은 눈을 뜨고 있었다. 하지만 눈은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사물을 보는눈이 아니었다. 눈은 단지 물끄러미 열려 있을 내부의 세계 혹은 아득히 세계를 향해 있었다. 완벽한 정지 상태로 데미안은 미동없이 앉아 있었고 숨도 거의 쉬지 않는 같았다. 데미안의 입은 나무나 돌로 깎아 놓은 같았고, 얼굴은 창백하게 돌처럼 보였다. 갈색의 머리칼만 살아 있는 같았다. 손은 돌이나 과일처럼 생명력이 없이 데미안 앞의 걸상 위에 놓여 있었는데, 고요히 창백한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맥없이 늘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숨겨진 강력한 생명을 감싸고 있는 단단하고 좋은 껍질처럼 보였다. 광경은 나는 전율했다. 데미안이 죽었다는 생각에 하마터면 크게 소리칠 뻔했다. 그러난 나는 그가 죽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매혹된 시선으로 그의 창백하게 굳어 있는 가면을 바라보았다. 이런 모습이 진짜 데미안이다! 내가 같이 걷고 대화하던 지금까지의 데미안은 절반짜리였다. 가끔 역할을 맡아 연기하고 나와 호흡을 맞춰서 호응해 주던 데미안은 절반에 불과했던 것이다. 진짜 데미안은 이렇게 돌처럼 굳어 있고, 창백하고, 동물 같고, 아름답고, 차갑게 죽어 있지만 안은 비교할 없는 생명력으로 넘치는 사람이었다. 데미안의 주위를 둘러싼 절대적으로 고요한 공허, 정기와 별이 가득한 하늘, 그리고 고독한 죽음!

지금 데미안은 완전히 자신의 내면으로 몰입해 버렸다는 알고 나는 전율했다. 나도 번도 이토록 고독해진 적이 없었다. 그와 나는 상관없는 존재였고, 그는 내가 닿을 없는 존재였으며, 세상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섬보다 내게 곳에 있었다.

말고는 광경을 누구도 보지 못했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았다. 모두가 그를 봤어야 했다. 그랬다면 모두 오싹하게 몸서리쳤을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를 주의해서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는 석상처럼 꼿꼿하게 앉아 있었다. 파리 마리가 그의 이마 위에 내려앉더니 천천히 코와 입술로 내려왔지만, 그는 주름살 하나 까닥하지 않았다.

그는 도대체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무엇을 느끼고 있는 것일까? 그는 천국에 있는 것일까 지옥에 있는 것일까? 데미안에게 그것을 묻는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수업 시간이 끝나고 다시 살아나서 쉬고 있는 그를 보았을 , 데미안과 나의 시선이 서로 마주쳤을 , 데미안은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데미안의 얼굴은 다시 혈색을 되찾고 손을 다시 움직였지만 갈색 머리칼만은 윤기 없이 지쳐 보였다.

며칠 동안 나는 침실에서 가지 새로운 연습에 몰두했다. 꼿꼿한 자세의 의자에 앉아 시선을 곳에 고정시키고 부동자세로 얼마나 오래 버틸 있는지, 그리고 무엇이 느껴지는지 알아보려고 했다. 나는 그저 피곤하기만 했고 눈꺼풀에 심한 경련이 일어났다.

얼마 견진성사를 받았지만 중요한 기억은 하나도 남지 않았다.

이제 모든 것이 달려졌다. 유년 시절은 산산이 부서져서 주위에서 떨어져 내렸다. 부모님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대하셨고, 누나들은 아주 낯설어졌다. 냉담함이 이전의 감정과 기쁨 사이로 비집고 들어와서 기존의 것들을 왜곡시키고 퇴색시켰다. 정원은 향기를 잃고 숲은 이상 마음에 끌리지 않았으며 세계는 무슨 골동품의 재고 정리장처럼 무미건조하고 매력 없이 나를 둘러싸고 있을 뿐이었다. 책은 단지 종잇조각이었고 음악은 소음에 불과했다. 가을이 되면 나무 주위에 낙엽이 떨어지게 마련이었지만 나무는 그것을 느끼지 못한다. 비와 햇빛이 나무를 적시고, 서리가 내리고, 나무의 내부에서는 생명이 서서히 위축되고 깊숙이 움츠러든다. 그러나 나무가 죽은 것은 아니다. 그것은 기다림이다.

방학이 끝나고, 나는 다른 학교에 가기 위해 난생처음 집을 떠나 생활하게 되었다. 어머니께서는 유난히 다정하게 내게 다가와서 미리 작별을 고하며, 마음속에 사랑과 향수처럼 잊을 없는 추억을 간직하게 하려고 애쓰셨다. 데미안은 여행을 떠났다. 나는 혼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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