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현대인문학

아무튼, 술. 김혼비

by 비사벌 2024. 11. 30.
728x90
반응형

“오늘의 술을 피하기 위해서 우리는 늘 어제 마신 사람이 되어야 한다.”

 

“최종 진실을 내놓기 전에 고트족처럼 적어도 두 번은 문제를 토론해야 할 것이다. 로렌스 스턴은 이 점 때문에 고트족을 좋아했는데, 고트족은 먼저 술에 취한 상태로 토론하고 이후 술이 깬 상태에서 또 한 번 토론했다.”

‘다뉴브’, 클라우디오 마그리스

 

프롤로그

  • 술은 나를 좀 더 단순하고 정직하게 만든다. 딴청 피우지 않게, 별것 아닌 척하지 않게, 말이 안 되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채로 받아들이고 들이밀 수 있게.
  • 말이 안되는 일이 시시때때로 벌어지는 세상에서, 다음 스텝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막연하고 막막할 때에 일단 다 모르겠고, ‘아무튼, 술!’이라는 명료한 답 하나라도 가지고 있어 다행이다. 

 

첫 술

  • 숙취로 인한 두통 역시 끔찍하기는 마찬가였다. 내가 또 술을 마시면 인간이 아니라고 혼자 조용히 이를 갈았다. 어릴 때 멋모르고 마신 술로 고생한 경험이 트라우마로 만아 어른이 되어서도 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경우를 종종 들어봤기 때문에 나도 그런 삶의 첫 발을 내디딘 거라고 생각했다.
  • 2주 정도 지나자 입가에 맴돌던 술맛과 취기가 오르기 시작했을 때의 엷은 흥본, 들떠서 떠들던 분위기들이 생각났다.

 

소주 오르골

  • 술에는 맛도 있고 향도 있지만 소리도 있다. 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술이 내는 소리까지도 사랑한다. 개럴라인 냅이 ‘드링킹, 그 치명적 유혹’ 이라는 책에서 “와인 병에서 코르크가 뽑히는 소리, 술을 따를 때 찰랑거리는 소리, 유리잔 속에서 얼음이 부딪히는 소리”를 사랑한다고 말한 것처럼.
  • 똘똘똘똘과 꼴꼴꼴꼴 사이 어디쯤에 있는, 초미니 서브 우퍼로 약간의 울림을 더한 것 같은 이 청아한 소리는 들을 때마다 마음까지 맑아진다.
  • 소리 한 번 더 안 듣고 가도 되겠어?
  • 소나기 아래서 빗물을 빨아들이는 나무의 요정 같은 소리가 테이블 위로 잔잔히 퍼졌다. 첫 잔 따르는 소리 표현.

 

주사의 경계

  • 경계가 뚜렷이 있어야만 그 안에서 비로소 마음 놓고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도 있으니까. 중력의 영향권 안에서 허공을 날 때는 자유롭지만, 무중력 상태가 되면 몸을 잘 움직이지 못한 채 단지 허공에 떠 있을 뿐인 거처럼.

 

술 마시고 힘을 낸다는 것

  • 취했을 때, 설핏 잠이 들었던 것 같다. 꾸벅꾸벅할 때 마다 세상의 경계선 위에 세워진 그네를 타고 있는 것처럼 앞으로 가면 저 세상으로 넘어갔다가 뒤로 오면 이 세상으로 돌아오기를 거듭하다가, 어느 순간 그네에서 뚝 떨어지듯이 현실로 돌아와 눈을 번쩍 떴다.
  • 만취한 사람들이 세상의 이상한 일들에 보이는 이 넉넉한 관용은 본인이 이미 이상한 인간이 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 누구도 응답할 수 없을 것 같아 호소해보지도 않던 고통이었는데, 출발도 하지 못한 레이스의 끝에 응답이 먼저 도착해 있었다. 응답이 나의 출발점이 되어주었다.

 

술배는 따로 있다

  • 사람의 배가 아닌, 주류 코너에 즐비하게 놓인 온갖 종류의 술병들이 배의 엔진이 만들어내는 동요에 따라 흔들리며 좌우앞뒤에 놓인 술병들과 살짝살짝 부딪히며 만들어내는 소리.

 

술이 인생을 바꾼 순간

  • 단지 술이 더 마시고 싶을 뿐이라는 걸 못 느끼려야 못 느낄 수가 없었던 것. 전혀 사귈 생각도 없는 남자한테 사귀자는 말도 안했는데 차인 것 같은 묘한 패배감마저 느낄 정도로 그 어떤 끈적함도 없이, 함의 따위는 더더욱 없이, 술, 오직 술이었다. 어떤 개인적이고 내밀한 공간이 아니라 그저 같이 술을 마실 수 있는 ‘술집’으로서만 기능하는 것.
  • 세상에. 최고의 술친구를 만났다고 그 미래를 닫아버렸다니. 인생이 이 냉장고도 아닌데 냉장고 문 다듯이 그러게.
  • 냉장고 문을 닫는 순간 몇 시간 후 시원한 술을 마실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듯이, 신나서 술잔에 술을 따르는 순간 다음 날 숙취로 머리가 지끈지끈할 가능성이 열리듯이, 문을 닫으면 저편 어딘가의 다른 문이 항상 열린다. 완전히 ‘닫는다’는 인생에 잘 없다.
  • 삶은 선택의 총합이기도 하지만 하지 않은 선택의 총합이기도 하니까. 가지 않은 미래가 모여 만들어진 현재가 나의 마음에 드니까.

 

지구인의 술 규칙

  • 술이란 건 참 시도 때도 없이 시제에 얽매이지 않고 마시고 싶다는 점에서나, 마시기 전부터 이미 마시고 난 이후의 미래가 빤히 보인다는 점에서나, 일단 마시기 시작하면 앞일 뒷일 따위 생각 안 하는 비선형적 사고를 한다는 점에서 너무 헵타포드어 같지 않은가.
  • 걷술, 마음을 두루 살피려면 걸어야 한다고. 걷는 것은 일하는 것과 일하지 않는 것, 존재하는 것과 뭔가를 해내는 것 사이의 미묘한 균형이라고.
  • 내가 술집에 들어갈 때마다 겪는 딜레마, 음주를 시작하기 애매하디애매한 함정 같은 시간에. 환희의 극치일까, 고통의 극치일까. 가는 기차는 천국행이고 돌아오는 기차는 지옥행일 이상한 왕복 기차권을 끊을지 말지, 그냥 얌전히 걸을지 오늘도 묵하 고민 중이다.

 

이상한 술 다짐

  • 오늘의 술을 피하기 위해서 우리는 늘 어제 마신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내일을 위해 오늘도 마신다.

 

술과 욕의 상관관계

  • 욕을 하고자 해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내가 살아가면서 느끼고 순간 욱하는 무언가에 의해 술이라는 마약에 취해 입으로 나오는 자신의 하고 싶은 단어일 것 같다. 내가 느낀 점.

 

와인, 어쩌면 가장 무서운 술

  • 내게는 ‘모자란 한 잔’보다 모자란 하루’가 더 중요하다는 걸 깨닫게 된다든지, 그래서 모자란 한 잔을 얻기 위해 쓸 시간과 에너지와 돈을 모자란 하루들을 늘려가는 데 잘 쓰게 되었든지, 같은 여러 가능성. 아니, 뭐 그렇게 안 이어지면 또 어떤가.
  • 와인이 무서울 때가 또 언제인 줄 안는가? 마시고 토할 때다. 무한 각혈하는 기분이 들어 너무 무섭다….

 

혼술의 장면들

  • 세상의 기준이 참 웃습다. 남자는 혼술해도 괜찮고, 여자는 혼술하면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우리 사회가 아직도 알 수가 없다. 지금이 많이 바뀌도 달라졌다고 해도 이상한 시선에서 궁금한 시선으로 바뀐 것 뿐이겠지.
  • 읽고 나서 내가 느낌 점.

 

술피부와 꿀피부

  • 술피부와 꿀피부를 읽고 나서 웃었다.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미소만 띄우고 있다. 그런다고 이복형제(술)를 포기할 수 없는 현실…

 

술로만 열리는 말들

  • 소맥의 경우, 나에게 있어 분류의 기준은 ‘마시는 사람의 마음’이다. 같은 소맥이라도 누군가 말아서 마시기를 강요하면 폭탄주지만, 내가 마시고 싶을 때 누군가 말아주면 칵테일이 된다.
  • 백지 위에서 쓱싹쓱쓱 같이 뒹굴며 같이 뭉툭해지며 같이 허술해져가며 마음이 열리고 말이 열리는 건 일부러 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니라 저절로 그렇게 되는’상태’이다.

 

에필로그

  • 바라보는 시선이 어떤 것인지에 따라 우리는 오늘 술을 마시는지 아니면, 인생의 한 페이지를 떠나보내는 지는 알 수가 없지만, 너무 박대하지말고 자기의 의지에 맞게 그를 맞이해 주면 될 것 같다. 읽고 난 느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