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1. 사성제와 팔정도
사성제(四聖諦, 산스크리트어: catvāri āryasatyāni) 또는 사제(四諦)는 《아함경(阿含經)》에 나오는 원시 불교 가르침으로 불교 기본 교의 가운데 하나이다. "제(諦 · Satya)"는 진리 또는 깨우침을 뜻한다. 사성제는 " 네 가지 높은 깨우침(Ārya: 높은, Satya: 깨우침)" 또는 "4가지 고귀한 진리(Four Noble Truths)"라는 뜻인 데, 고제(苦諦) · 집제(集諦) · 멸제(滅諦) · 도제(道諦)의 4가지 진리 또는 깨우침을 의미한다. 흔히 이 네 가 지를 간단히 고집멸도(苦集滅道)라고 부른다.
고집멸도(苦集滅道)는 집과 고라는 연기하는 항목과 도와 멸이라는 연기(緣起)하는 항목을 합하여 나란히 늘 어놨다. 여기에서 집은 고의 원인 또는 인연이 되며, 도는 멸의 원인 또는 인연이 된다. 고집멸도는 고통의 원 인이 집착 또는 갈애이며 고통을 소멸시키는 원인 또는 수단이 도라는 연기관계를 밝힌 것이다.
한편, 고타마 붓다는 "우주는 영원한가? 영원하지 않은가?"와 같은 형이상학적 질문들인 십사무기(十事無記) 는 사성제와는 달리 지혜(智) · 깨달음(覺) · 열반(涅槃)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가르치거나 배울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고타마 붓다는 십사무기(十事無記)와 같은 형이상학적 질문들은 열반으로 나아가게 하는 실다운 길이 아니 며, 반면 사성제는 열반으로 나아가게 하는 실제 길이라고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은 사성제에 대해 늘 말 하고 가르친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제자들에게도 십사무기와 같은 형이상학적 질문들에 얽매이지 않아야 하 며 사성제라는 실제 길을 걸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고제(苦諦, Duhakaha Satya)는 범부(凡夫), 즉 깨치지 못한 사람의 삶은 고(苦)라고 하는 진리이다.[3] 즉, 인 간은 색 · 수 · 상 · 행 · 식의 오온으로 이루어진 존재인데, 깨치지 못한 사람, 즉 아직 부처가 되지 못한 사람에 게 있어서 그의 삶은 고통이라는 통찰이다.
고통은 크게 누구나 고통으로 느낄 수 있는 생로병사의 고고(苦苦), 변화하고 무너지는 괴고(壞苦), 오온으로 이루어진 존재에 실체가 있다고 집착함에 의해 비롯되는 행고(行苦)등의 3고(三苦)로 분류된다. 3고는 8고(八 苦)로 세분되기도 한다.
고고(苦苦)는 누구나 고통으로 느낄 수 있는 고통인 생로병사의 고통을 말한다. 생로병사 중 특히 생과 사는 아직 깨달음을 성취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윤회를 벗어나지 못하며, 깨달음을 성취할 때까지는 배움을 위해 다 시 세상에 태어나는 일이 반복된다는 것을 뜻한다.
- 생고(生苦): 태어나는 고통
- 노고(老苦): 늙는 고통
- 병고(病苦): 병드는 고통
- 사고(死苦): 죽는 고통
괴고(壞苦)의 문자 그대로의 뜻은 "무너지는 고통"인데, 모든 것이 인과 연에 의해 발생한다는 연기의 법칙 즉 인과의 법칙과 모든 존재가 고정됨이 없이 항상 변화한다는 무상(無常)의 법칙에 바탕하여 일어나는 " 변화하고 무너지는 고통"이다.
- 애별리고(愛別離苦): 사랑하는 것과 헤어지는 고통
- 원증회고(怨憎會苦): 미워하는 사람과 만나야 하는 고통
- 구부득고(求不得苦): 원하는 것을 성취하지 못하는 고통
행고(行苦)는 오온(五蘊) 또는 오취온(五取蘊)으로 이루어진 존재인 인간 자신에 대하여 "나"라고 할 수 있는 실체가 있다고 집착함에 의해 비롯되는 고통으로 오취온고(五取蘊苦) 또는 오음성고(五陰盛苦)라고도 한다.
8. 오취온고(五取蘊苦) 또는 오음성고(五陰盛苦) 오온(五蘊: Paňca Sakandha) 또는 오취온(五取蘊)은 다음과 같다.
색(色: Rūpa · 루빠) 수(受: Vedanā · 웨다나) 상(想: Saññā · 싼야) 행(行: Sankhāra · 쌍카라) 식(識: Viññāna · 윈냐나)
집제(集諦, Samudaya Satya)는 고통의 원인에 관한 진리로, 범부(凡夫), 즉 깨치지 못한 사람이 겪는 고고 · 괴 고 · 행고 등 모든 고통의 원인은 업(業)과 번뇌(煩惱)에서 비롯됐다는 통찰이다. 남방상좌부 불교에서는 번
뇌 중에서 인간의 갈애(渴愛, 갈망함) 또는 망집(妄執)을 핵심적인 고통의 원인으로 본다. 반면 대승불교에서 는 "나" 또는 "나의 것"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무지(無知) · 무명(無明)에서 비롯된 아집(我集) 또는 망집(妄執) 을 고통의 주 원인으로 본다.
멸제(滅諦, Nirodha Satya)는 고통의 소멸에 관한 진리, 혹은 고통의 원인의 완전한 소멸에 관한 진리다. 고통 의 원인인 갈애(渴愛) · 아집(我集) 또는 망집(妄執)이 완전히 소멸될 수 있음을 통찰하는 것이다. 고통의 원인 이 완전히 소멸된 상태를 열반(涅槃) 또는 해탈(解脫)이라 한다.
도제(道諦, Mārga Satya)는 고통을 소멸시키는 행을 하는 진리를 말한다. 즉, 도제를 행함으로써 실제로 멸제 ("고통의 원인을 제거할 수 있다는 것")를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하는데, 이런 면에서 도제는 멸제의 원인이 되는 실천 또는 수행을 의미한다. 불교의 모든 교의는 사실상 도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구체적으로, 원시 불교에서는 도제를 정견(正見) · 정사(正思) · 정어(正語) · 정업(正業) · 정명(正命) · 정정진 (正精進) · 정념(正念) · 정정(正定)의 팔정도(八正道)인 것으로 설명한다.
남방상좌부 불교에서는 도제를 팔정도를 포함하는 사념처(四念處) · 사정근(四正勤) · 사여의족(四如意
足) · 오근(五根) · 오력(五力) · 칠각지(七覺支) · 팔정도(八正道)의 37조도품(三十七助道品)인 것으로 설명 한다.
대승불교에서는 도제를 37조도품 외에 보살의 원행(菩薩의 願行: 보살의 서원과 수행, 간단히 보살행 또는 보 살도)을 담은 보시(布施) · 지계(持戒) · 인욕(忍辱) · 정진(精進) · 선정(禪定) · 반야(般若: 지혜)의 육바라밀 (六波羅蜜) 또는 육바라밀에 방편(方便) · 원(願) · 역(力) · 지(智)의 네 가지를 추가한 십바라밀(十波羅蜜)을 포함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8정도(八正道, 산스크리트어: āryāṣṭāṅgamārga, 팔리어: pa ariyo aṭṭhaṅgiko maggo, 영어: Noble Eightfold Path), 8성도(八聖道) 또는 8지성도(八支聖道)는 사성제 가운데 마지막의 도제에서 가르치는, 깨달 음(멸제)을 성취하는 원인이 되는 "여덟 개의 부분으로 이루어진 성스러운 길, 수단 또는 실천 덕목"이다.[1] 7 과 37도품의 마지막 그룹인 제7과의 수행법이다. 8정도의 반대를 8사(八邪) 또는 8사행(八邪行)이라 한다. 8 정도를 청정한 수행 또는 실천이라는 뜻에서 범행(梵行)이라고도 한다. 8정도를 구하는 것을 범행구(梵行求) 라고 한다.
팔리어에서 길(道)은 막고(maggo)라는 단수형으로 표시되어 있는데, 이것은 여덟 개의 길이 전체로서 하나를 이루고 있으며 또한 각각의 길은 나머지 일곱을 포함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여덟 개의 길 가운데 어느 하나 가 실천되면 다른 일곱 개의 길이 그 하나에 포함되어 동시에 행하여지는, 서로 포섭하는 관계에 있다. 이러한 취지에 따라, 팔정도의 영어 번역어도 'Noble Eightfold Path (고귀한 팔중의 길)'라고 하여 길(Path)을 복수가 아닌 단수로 표현하고 있으며, 여덟도 단순한 여덟(eight)이 아닌 팔중(eightfold, 八重)으로 표현하고 있다.[1]
팔정도의 여덟 구성요소 또는 여덟 개의 길은 다음과 같다.
- 정견(正見): 바르게 보기
- 정사유(正思惟) · 정사(正思): 바르게 생각하기
- 정어(正語): 바르게 말하기
- 정업(正業): 바르게 행동하기
- 정명(正命): 바르게 생활하기
- 정정진(正精進) · 정근(正勤): 바르게 정진하기
- 정념(正念): 바르게 깨어 있기
- 정정(正定): 바르게 삼매(집중)하기
302. 스페인 내전
스페인 내전(스페인어: Guerra Civil Española, 문화어: 에스빠냐 공민 전쟁)은 마누엘 아사냐가 이끄는 좌파 인 민전선 정부와 프란시스코 프랑코를 중심으로 한 우파 반란군 사이에 있었던 스페인의 내전이다.
1936년 7월 17일 모로코에서 프란시스코 프랑코 장군이 쿠데타를 일으켜 내전이 시작되었고, 1939년 4월 1일 에 공화파 정부가 마드리드에서 항복하여 프랑코 측의 승리로 끝났다. 내전으로 인해 스페인 전 지역이 황폐화 되었다.
소비에트 연방과 각국에서 모여든 의용군인 국제 여단이 반파시즘 진영인 인민 전선을 지원하고, 파시스트 진 영인 나치 독일과 이탈리아의 베니토 무솔리니 정권, 그리고 안토니우 드 올리베이라 살라자르가 집권하고 있 던 포르투갈이 프랑코파를 지원하여 제2차 세계 대전의 전초전 양상을 띠었다. 아울러 스페인의 로마 가톨릭교 회와 왕당파는 프랑코파를 지원하였다.
영국과 프랑스는 공화국 정부에 군수 물자를 지원하였으나 국제 연맹의 불간섭 조약을 이유로 스페인 정부에 대한 지원에 미온적이었다. 미국은 공식적으로 중립을 표방했지만, 스페인 제2공화국과 지원국 소련 측에는 비 행기를, 스페인 반군 측에는 가솔린을 팔았다.
303. 이것은 세상에게 보내는 나의 편지입니다.
이것은 내게 한번도 편지를 보낸 적이 없는 세상에게 보내는 나의 편지입니다 — 자연이 부드러운 장엄함으로 —
말해준 소박한 소식입니다
자연의 메시지는 내가 볼 수 없는
사람들의 손에 맡겨집니다 —
자연에 대한 사랑을 봐서 — 상냥한 — 동포들이여 —
나를 — 부드럽게 판단해 주세요
에밀리 엘리자베스 디킨슨 (Emily Elizabeth Dickinson, 1830년 12월 10일 - 1886년 5월 15일)은 미국의 시 인이다.
미국 매사추세츠(Massachusetts)주의 앰허스트(Amherst)에서 태어났다. 디킨슨은 거의 2000편에 달하는 시 를 썼는데 주로 사랑, 죽음, 이별, 영혼, 천국 등을 소재로 한 명상시가 대부분이다. 미국에서 가장 천재적인 시 인들 중 한 명으로 꼽힌다.
그의 시는 당시의 다른 시들과는 많이 달라 생전에는 대중에게 인정받지 못했고 겨우 4편의 시만이 시집에 쓰 였다. 에밀리 디킨슨은 생전에는 재능을 알아본 소수의 시인과 지식인과 꾸준히 서신으로 시를 주고받았다. 그 녀의 천재성이 널리 인정받은 것은 사후, 여동생 라비니아 노크로스 디킨슨 (Lavinia Nocross Dickinson)이 에밀리의 시를 모아 시집을 낸 후의 일이다.
외출을 극도로 자제하고 은거한 시인으로 알려져 있으나, 어릴 때는 매일 들판으로 외출하고 동네 아이들을 불 러 놀기도 하던 활기찬 성격이었다.
마운트 홀리요크 대학교에 다녔다.
그녀는 시를 쓰다가 5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내가 만약 누군가의 마음의 상처를 막을 수 있다면,
나 헛되이 사는 것 아니리.
내가 만약 한 생명의 고통을 덜고,
기진맥진해서 떨어지는 울새 한 마리를
다시 둥지에 올려놓을 수 있다면,
나 헛되이 사는 것 아니리. - 만약 내가
304. 구겐하임 미술관
솔로몬 R. 구겐하임 미술관, 또는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은 뉴욕의 센트럴 파크 동쪽, 또는 어퍼이스트 사이드 에 위치한 현대 미술관이며, 인상파와 후기인상파, 그리고 현대미술을 전시한다. 1959년 프랭크 로이드 라이 트에 의해 완공된 이 박물관은 달팽이처럼 건물 자체가 나선형으로 내려오게 되어있으며, 20세기의 중요한 건축물중 하나로 꼽힌다.
공간이 부족하여 다른 도시(베네치아, 빌바오, 베를린 등)에 별관이 있다.
철강왕인 벤저민 구겐하임이 1912년 4월 15일 RMS 타이타닉이 침몰하여 그로 인해 최후를 맞이하자 그의 상속녀인 페기 구겐하임은 상속받은 막대한 유산으로 세계의 미술품들을 모아들이고 또한 유명한 미술가들 을 후원해 줌은 물론 미술가 지망생들을 육성하여 상당히 많은 미술품을 남기고 모아들였다. 이 과정에서 솔 로몬 R. 구겐하임은 페기 구겐하임이 모아들인 미술품들을 전시할 미술관을 건립하였고 그 미술관에 페기 구겐하임이 모아놓은 미술품들이 전시되었다. 솔로먼 구겐하임은 벤저민 구겐하임의 형으로 페기 구겐하임 에게는 숙부가 된다.
305. 소수
산술의 기본 정리의 '1보다 큰 모든 자연수는 그 자체가 소수이거나, 순서를 무시하고 유일한 소인수의 조합 을 갖는다'는 내용을 바탕으로 정수론에서는 매우 중요한 주제로 다루어진다. 또한 현대에는 암호 분야에서 의 기술적 사용으로 그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소수의 개수는 무한하며, 이는 유클리드의 정리에 의하여 최초로 논증되었다. 소수와 합성수를 구분해낼 수 있는 명확한 공식은 지금까지도 밝혀지지 않은 상태이나, 대역적으로 자연수 중 소수의 비율의 근사치를 예 측하는 모델로는 여러가지가 알려져 있다. 이러한 방향으로의 연구의 첫 결과는 19세기 말에 증명된 소수 정 리인데, 이는 무작위로 선택된 한 수가 소수일 확률은 그 수의 자릿수, 곧 로그값에 반비례함을 알려준다.
소수는 무한하다. 이 명제를 유클리드의 정리라고 하며 가장 오래된 증명은 그리스 수학자 유클리드의 《유 클리드 원론》(제 9권, 정리 20)에서 볼 수 있다. 유클리드의 증명은 “어느 주어진 유한한 소수들 보다 더 많 다.”라는 결론으로 표현되고, 그의 증명은 본래 아래와 같다.
유한 개의 소수가 존재한다고 가정하자. 이 유한 개의 소수들을 모두 곱한 값에 1을 더한다. (유클리드 수 참 조) 그 결과값은 다른 어떤 소수로 나누어도 나머지가 1이므로 어떤 소수로도 나누어떨어지지 않는 수가 된 다. 따라서 이 수가 소수라면 기존의 최대소수보다 큰 소수가 있다는 것이 증명되고, 이 수가 소수가 아니라 고 해도 또다른 소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소수가 유한하다는 애초 가정에 모순이 존재함 을 알 수 있다.
다른 수학자들도 각자의 증명을 내놓았다. 그 중 오일러에 의한 증명은 모든 소수들의 역수의 합이 발산한다 는 증명으로부터 소수의 개수가 무한함을 보였다.
306. 조성과 무조성
조성(調性, tonality)이 있는 음악은 음악에 쓰이는 화성이나 멜로디가 하나의 음 또는 하나의 화음을 중심으 로 하여 일정한 음악관계를 가지고 있을 경우를 말한다. 따라서 조성이란 음악이 경과하는 속에서 볼 수 있는 음 현상이며, 중심이 되는 음과 화음의 지배가 그 음악에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그 음악의 조성이 있느냐 없 느냐가 결정된다. 그리고 그 같은 중심이 되는 음을 '으뜸음(主音)', 화음을 '으뜸화음(主和音)'이라 한다. 예를 들어 다장조라 하면 다음을 으뜸음으로 한 장음계로써 단적으로 나타낼 수 있다. 그리고 음계를 바탕으로 하 여 작곡하면 다음을 으뜸음으로 한 조성을 가지는 음악을 만들기 쉽다.
조성이라는 말은 본래 기능화성에서의 조(調)의 확대개념으로서 19세기 초에 생긴 개념이다. 그러나 20세기 초의 기능화성을 바탕으로 하지 않은 음악의 출현으로, 또 한편으로 민속음악이나 오랜 중세음악의 연구로 조성의 개념은 더욱 확대하였다. 결국 이 음악에서는 기능화성을 쓰고 있지는 않으나, 분명히 으뜸음에 상당 하는 것이 있으며 으뜸음의 지배성이 인정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조성이라고 하였을 때 현재 두 가지 해석이 있다.
- 좁은 뜻으로는, 기능화성법을 따른 것으로서 이것을 다른 것과 구별하기 위하여 '화성적 조성'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가령 멜로디뿐인 경우일지라도 기능화성적 배려 아래 작성되었다면 화성적 조성은 성 립한다.
- 넓은 뜻으로는, 으뜸음의 지배적 관계가 인정되는 음악 일반을 가리킨다. 이것은 화성적 조성에 대해 ' 멜로디적 조성'이라고 할 수 있다. 가령 교회선법으로 하는 음악의 마침음(終止音, Finalis)이나 민요 에서 보는 중심음의 지배성(支配性) 등이다. 여기서 조성은 멜로디의 프레이즈마다 같은 음에서 마친 다든가, 또는 특정한 음에 길게 멈춘다든가, 또는 그 음을 창조한다든가 하여 항상 으뜸음으로 나가려 고 하는 긴장감을 가진 멜로디의 움직임 과정에서, 그리고 으뜸음에서 마침으로써 나타난다.
물론 조성이라고 할 경우에는 흔히 (1)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으며, (2)의 의미로는 무조(無調)가 아니라는 의 미에서 조성의 영역으로 분류되고 있음에 불과하다. 그리고 두 가지 다른 조를 동시에 사용하는 복조(複調) 또한 많은 조를 동시에 사용하는 다조(多調) 등이 있다.
무조성(無調性)은 현대음악에서 발달한 음악 양식으로 정해진 조성이 없이 연주되는 곡의 형태이다. 오선의 앞 부분에 X라고 표시하거나 아무 조표도 표시하지 않는다.
307. 미학
미학(美學, 영어: aesthetics 또는 esthetics)은 철학의 하위 분야로서 '아름다움'을 대상으로 삼는 학문이다. 완 성도가 높은 아름다움이 무엇인가를 분별하는 일이 주된 관심사가 된다. 예술철학과 비슷한 의미로 받아들여 지고, '느림의 미학'이나 '쇼핑의 미학'이라는 말처럼 일상 생활에서는 '아름다움'이나 '예술론' 등과 혼용되기도 한다.
아름다움이라는 갈래에 숭고미, 지성미, 비장미, 골계미, 우아미 등 있다. '숭고미'는 신의 경지를 추구하는 미 의식이다. '지성미'는 모든 게 연결되어 있다는 인식(public mind) 속에 합리적 사고를 구현하는 미의식이다. ' 비장미'는 삶의 모순에 반기를 들고 그 모순을 타파하려는 미의식이다. '골계미'는 관념의 억압을 거부하고 삶 의 발랄함을 추구하는 미의식이다. '우아미'는 일상성을 긍정하며 조화롭고 균형을 잘 갖춘 대상을 선호하는 미의식이다.
근대 미학을 체계화한 이마누엘 칸트는 '목적 없는 합목적성의 형식(form of finality without an end)'을 '미' 라고 규정했다. 튤립 꽃봉오리는 그 형태의 완성도가 인간을 매혹시키는 것이지, 그것에 대한 식물학적 지식 이 인간의 미감을 자극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 무언가를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것의 형식에 대해서 이지 그것의 내용에 대해서가 아니다.
미와 숭고는 인간의 예술적 체험을 구성하는 중요한 두 가지 성질이다. 장미꽃이 미를 발생시키고 인간에게 미적 쾌감을 준다면 지진해일 같은 거대한 파도는 숭고의 대상이 된다. 지진해일은 인간의 구상력을 훌쩍 뛰 어넘어 인간을 우선 좌절시키고 불쾌하게 만들지만 이어서 더욱 강하게 인간을 끌어당긴다. 구상력이란 무언 가를 표현하는 표상의 능력이므로, 결국 숭고란 인간이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대상에 대한 감정이다.
308. 선불교
선(禪)은 동양에서 고요히 앉아서 참선(좌선)하는것을 말하며, 인도에서 오래전부터 요가등에서 행하던 수행 법으로 석가모니가 이후 불교의 실천 수행법으로 발전시켰다. 이후 도가나 도교의 양생법 그리고 무술유파 등 많은곳에서 고대 명상의 맥락에서 정신수양 또는 심신수양의 수련방법으로 이를 채택해오고있다. 현대에 는 스포츠등에서도 이를 활용하는 사례가 많다.
한편 현대에는 '마음을 한곳에 모아 고요히 생각하는 일'을 의미하는 '정신집중' 또는 '명상'을 일반적으로 가리 킬때도 '선'(禪)이라는 용어를 사용할때도 있다.
특히 불교 종파인 선종에서 중요시하는 수행법으로 참선으로 자신의 본성을 구명하여 깨달음의 묘경(妙境) 을 터득하고, 부처의 깨달음을 교설(敎說) 외에 이심전심으로 중생의 마음에 전하는 것을 종지(宗旨)로 하는 종파이다. 중국 양나라 때 달마 대사가 중국에 전하였다. 우리나라에는 신라 중엽에 전해져 구산문이 성립되었다.
309. 아돌프 히틀러
아돌프 히틀러(독일어: Adolf Hitler, 1889년 4월 20일 ~ 1945년 4월 30일)는 독일 나치스의 지도자이자 나 치 독일의 총통이다.
뛰어난 웅변술과 감각의 소유자였던 히틀러는 제1차 세계 대전의 패전국으로 베르사유 체제, 대공황 이후 정 권을 잡았다. 이후에 독일 민족 생존권 수립 정책을 주장하며 자를란트의 영유권 회복과 오스트리아 병합, 체 코슬로바키아 점령, 폴란드 침공 등을 일으키며 제2차 세계 대전을 일으켰다. 전쟁 중 그의 유대인 말살 정책 으로 인해 수많은 유대인들이 아우슈비츠 수용소와 같은 나치 강제 수용소의 가스실에서 학살당했다. 또한 히틀러는 상당수의 폴란드 사람들에게까지도 유대인이라고 모함하여 유대인과 마찬가지로 강제 수용소의 가 스실에서 같이 학살했다. 나치 독일에 의해 학살된 사람들 가운데에는 집시와 장애인도 있었다.
승승장구하며 전세를 확장하던 독일은 스탈린그라드 전투와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패배하였고 히틀러는 1945년 4월 29일 소련군에 포위된 베를린에서 에바 브라운과 결혼한 뒤 이튿날 베를린의 총통관저 지하 벙커에서 시안화칼륨 캡슐을 삼키고 권총으로 자신을 쏘아 자살했다.[5]그러나 독약 캡슐을 쓰지 않고 권총 자살을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6]
그의 어머니인 클라라와 결혼하기 전 이미 부친 알로이스 히틀러에게는 장남 알로이스 2세와 딸 앙겔라를 두 고 있었고 결혼 후 아돌프를 갖기 전 낳은 클라라의 아들 두 명과 딸 한 명은 모두 일찍 죽었다. 양봉일에 열 중해있던 아버지와 아돌프의 관계는 소원했던 반면 이미 자신의 친자식을 셋이나 잃은 클라라는 아돌프마저 일찍 죽게될까 두려웠고 그를 애지중지하며 키워 아돌프는 클라라의 응석받이가 되었다. 이어 1893년 남동 생 에드문트가 태어났고, 1896년 여동생 파울라가 태어났으나 에드문트는 일찍 죽게 되고 결국 아돌프와 파 울라만이 클라라의 친자식으로 살아남게 되었다. 또한 아돌프가 7세 되던 해 당시 14세였던 그의 형 알로이 스 2세는 아버지 알로이스와의 마찰로 가출하게 된다. 독일 출신이라는 설이 한때 돌기도 했지만 그는 오스 트리아 출신이었다.
310. 메타픽션
메타픽션(Metafiction)은 허구의 일종으로, 허구의 장치를 의도적으로 그리는 것을 가리킨다. 메타픽션은 그 것이 픽션임을 의도적으로 독자에게 알리는 것으로, 허구와 현실의 관계에 대한 문제를 제시한다. 표상주의 연 극과 비교하면, 표상주의 연극이 관객에게 극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게 하는 반면, 메타픽션은 독자에 게 허구적인 사실을 의식하게 한다.
311. 입체주의
입체파 또는 큐비즘(Cubism)은 20세기 초에 프랑스에 일어난 서양미술 표현 양식의 하나를 일컫는다. 입체주 의라고도 한다. 큐비즘이라는 낱말이 처음 쓰여진 동기는 조르즈 브라크의 풍경화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알려 져 있다. 20세기 초 브라크는 프랑스의 남쪽 지중해 연안 지방 레스타크 (L'Estaque)에서 사생을 하면서 풍경화 를 그렸으며 이 풍경화를 두고 비평가는 입체적 희한함 (bizarreries cubique) 이라고 풍자하였으며, 이 낱말에 서 후에 브라크의 표현 양식을 본 딴 그림들 및 화가들의 경향을 큐비즘이라 부르게 되었다.
브라크는 레스타크 지방의 풍경화를 그리면서 대상을 입체적 공간으로 나누어 여러가지 원색을 칠하여 자연을 재구성 하였다. 이와 같은 실험적인 공간 구성과 대상의 표현 양식에서 출발하여 브라크는 점차 눈에 두드러진 입체적인 형태, 원통형, 입방형, 원추형 따위를 종래의 선이나 면을 대신한 표현 수법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브 라크가 추구한 입체적 표현 양식은 자연 대상을 순수한 그림 대상으로 완전히 전환시키는 것이었다.이러한 입 체주의 작품들은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보는 관점으로 사물을 해체 했다 다시 조화롭게 접합하는 방식을 취했 다. 그래서 어떻게 화면을 아름답게 분해 할 것인가 하는것 이 중요했다
312. 파이
원주율(圓周率, 문화어: 원주률)은 원둘레와 지름의 비 즉, 원의 지름에 대한 둘레의 비율을 나타내는 수학 상수 이다. 수학과 물리학의 여러 분야에 두루 쓰인다. 그리스 문자 π로 표기하고, 파이(π)라고 읽는다. 원주율은 수학에서 다루는 가장 중요한 상수 가운데 하나이다. 무리수인 동시에 초월수이다. 아르키메데스의 계산이 널 리 알려져 있어 아르키메데스 상수라고 부르기도 하며, 독일에서는 1600년대 뤼돌프 판 쾰런이 소수점 이하 35 자리까지 원주율을 계산한 이후 뤼돌프 수라고 부르기도 한다. 원주율의 값은3.141592653589793238462643383279502884197169399375105820974944...로, 순환하지 않는 무한소수이 기 때문에 근삿값으로 3.14를 사용하거나 기호 π로 사용한다.
313. 제2빈악파
음렬주의(音列主義, 프랑스어: Musique sérielle)는 곡을 쓰거나 분석하는 기법의 하나로, 음고·음세기·리듬과 같은 음악적 요소들을 어떤 음렬에 따라 음렬이 반복될 때까지 한 번씩 순서대로 쓰는 음악 기법을 말한다. 대표적인 음렬주의 작곡가로 카를하인츠 슈톡하우젠, 피에르 불레즈, 장 바라크, 마리오 다비도프스키가 있다. 20 세기 초 유럽에서는 조성에 기반한 기존 음악 형식을 탈피하는 음악을 모색하고 있었다. 많은 작곡가들이 선법 이나 재즈에서 비롯된 음계를 썼다. 무조 음악을 쓰려는 시도도 있었다. 이런 음악의 흐름을 좇는 작곡가들은 이런 작곡 기법을 체계화하려는 시도를 했다.
1차 세계 대전 직후 아르놀트 쇤베르크가 12음렬 기법으로 된 음악을 처음으로 썼고, 그를 중심으로 한 제2 빈 악파의 안톤 베베른 등이 이를 발전시켰다. 쇤베르크는 음높이(音高)에만 순열을 규정하였으나 베베른은 리듬 까지 순열화하였다.
독일에서 나치가 집권하면서 12음렬 기법 음악은 '인종법'에 의해 '타락한 음악(Entartete musik)'으로 분류되었 다. 나치의 의도는 두 가지 측면으로 해석할 수 있는데, 쇤베르크를 비롯한 몇몇 작곡가들이 유대인이기 때문이 라는 것과 나치의 예술은 대부분 선전용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쇤베르크, 베베른과 알반 베르크의 음악은 공연이 금지되었고 쇤베르크는 1933년에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되었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뒤 올리비에 메시앙의 제자들이 베베른의 곡을 분석하여 음렬주의를 발전시켰다. 메시앙 은 음높이, 리듬, 셈여림(強弱), 음빛깔(音色, 터치의 종류나 악기의 음빛깔) 등의 모든 것을 순열적(세리엘, 프 랑스어: sérielle)으로 써서 개개 음의 속성(屬性)을 그 모든 면에서 고정화시켜 음을 일종의 오브제로 하였다. 슈톡하우젠과 불레즈 같은 젊은 작곡가들은 나치의 억압을 받았던 음렬주의를 파시즘에 대한 저항으로 여겼 다. 앨런 포트(Allen Forte)나 조지 펄(George Perle)과 같은 이론가들은 음렬주의 음악에 대한 체계적인 분석 을 내놓았다. 음렬주의 음악은 우연성 음악과 같은 '과정에 의한 음악'의 발달에 영향을 주었다.
314. 실존주의
실존주의(實存主義, 프랑스어: Existentialisme)는 개인의 자유, 책임, 주관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철학적, 문 학적 흐름이다. 실존주의에 따르면 인간 개인은 단순히 생각하는 주체가 아니라(not merely the thinking subject), 행동하고, 느끼며, 살아가는 주체자(master)이다. 19세기 중엽 덴마크의 철학자 키르케고르에 의하 여 주창된 이 사상은 후에는 야스퍼스, 마르셀 등으로 대표되는 유신론적 실존주의와 하이데거, 사르트르, 메 를로퐁티, 보부아르 등의 무신론적 실존주의의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나게 되었다.[1]
‘실존’이란 말은 이들의 사고양태(思考樣態)나 표현에 따라서 여러 가지로 표현되고 있으나, 공통된 사상은 인간에 있어서 ‘실존은 본질에 선행(先行)한다’는 것, 다시 말해서 인간은 주체성으로부터 출발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와 같은 실존은 ‘인간’이라고 하는 개념으로 정의되기 이전에 이미 존재하고 있다는 것 이다. 이러한 실존주의는 니힐리즘이 ‘자아’를 강조한 나머지 세계를 부정하기에 이르는데 반하여, 같은 ‘자 아’의 실존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어떤 형태로든지간에 ‘자아’와 세계를 연결지으려고 노력한다. 즉, ‘내가 있 다’고 하는 전제로부터 출발하여 그 ‘나’를 세계와 연결지음으로써 그 전제를 확인하려고 하는 것이다. 따라 서 데카르트가 말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하는 논리가 역전되고, 어떻게 하면 ‘내가 존재’한다 고 하는 사실을 먼저 파악할 수 있는가가 추구된다.[1] 실존주의 철학은 바르트, 브루너, 불트만, 그리고 틸리 히와 같은 많은 신학자들에게도 큰 영향을 주었다.
'실존(existence)'은 원래 이념적인 본질(Essence)과 대비하여 상용되는 철학용어로서 '밖에' '서 있는(Sistere)' 현실적인 존재를 의미한다. '실존'은 첫째로 이념적 본질 밖에 빠져나와 있는 현실적 존재를 의미한다. 현실적 존재에도 여러가지가 있으나 "지금, 여기에, 이렇게 있다"는 것이 결정적인 중요성을 갖는 현실 존재는 다른 것에 의해 대체될 수 없는 독자적인 '지금, 여기'를 사는, 이 현실의 '자기 자신'이라고 한다. '실존'은 둘째로 인 간으로서의 진실한 존재방식을 현실의 생존방식을 통해 실현해 가는 자각적 존재(自覺的存在)로서의 자기 자신을 의미하기도 한다. 무자각적 존재는 모두 이미 지정되어 있는 본질에 따라서 그 현실의 존재방식이 결 정되는 것에 반하여, 자각적 존재인 인간은 '실존이 본질에 선행'하므로 현재의, 이 현실의, 자기의 생존 방식 에 의해서 인간 독자의 본질 ―― 그 인간을 그 인간답게 하는 개성 ―― 이 시시각각으로 새겨져 가는 것이 다. 따라서 그 실존이 그 본질을 결정하고, 실존하는 것을 그 본질로 하는 자각적 자기가 진실한 '실존'이라는 이름에 맞는 것이다.
이와 같이 실존에 의해 그 본질을 결정해 가는 존재는 자유로운 존재이므로 실존의 본질은 자유라고 할 수 있 다. 그러나 여기서의 자유는 선택하는 것도 가능한 선택 이전의 '관념적' 가능성으로서의 자유가 아니라, 일정 한 선택의 필연성을 스스로 인수하는 '실존적' 자유이다. 그것은 현실의 자기가 무력하며 더럽혀져 있다는 것 을 직시하고, 이러한 기존(旣存)의 일상적 자기를 넘어서서 '밖에 서 있는다'고 하는 무한의 자기초극(自己超 克)과 자기초월이라는 과제를 적극적으로 인수함으로써 진실한 본래적인 자기 자신이 되려고 결단하는 것이 다. 따라서 실존주의는 기성관념이 나타내는 형식적 보편성을 돌파하고 유한한 단독적 자기의 입장으로 되돌 아와 거기서부터 재출발함으로써, 현존하는 자기의 유한성 밖으로 빠져나가는 탈자적(脫自的)인 자기초월의 결단이 인간 본래의 존재방식이며, 이러한 결단을 바탕으로 비로소 구체적인 진리도 결정된다고 주장한다.
무한한 자기초극의 노력으로써 진실한 자기를 실현하려 하고, 이러한 자기의 결단으로 선택하는 것이 근원적 진리라고 하는 실존철학의 주장은 추상적 관념이나 객관적 제도나 대중문화의 노예가 되어 개성과 주체성을 상실해 가고 있는 인간들에게 강력한 경종의 역할을 하고 있다. 실존철학은 모든 도그마의 절대화 경향에 반 항하고 인간실존의 진실을 우선시킴으로써 현대 휴머니즘 철학으로서의 진가를 발휘한다. 특정한 주의, 주장 이나 중우적(衆愚的)인 당파성에 의존해서 안이한 수면을 즐기려 하는 자에 대해 자유로운 선택의 필요성과 책임감을 각성시키는 부단한 문제 제기자로서 실존주의는 커다란 의의를 갖고 있다.
그러나 기존의 일상성에 대한 비판만으로는 문제 해결이 불가능하며, 선택의 자유와 책임의 강조만으로는 행 동의 구체적인 내용이나 방향의 명확화는 불가능하다. 여기에서 상식이나 과학과의 적극적인 결합이 요구된 다. 이러한 객관적 요구에 등을 돌리고 실존의 주관적·내면적인 입장에서 절대화시켜 실존의 '교설체계(敎說 體系)'를 쌓아 올리고 그 안에 묻혀 있으려 할 때, 실존철학은 본래의 체계외적(體系外的)인 실존성을 상실하 고 스스로 극복하려고 했던 낡은 추상적 관념론의 입장으로 역전하는 위험성을 초래하게 된다. 여기에 실존 철학의 커다란 한계가 있다. 실존 철학의 탄생을 일찍이 간파하고 크게 평가했던 철학사가 하이네만(1889- 1970)이 '실존'은 사상의 방향을 설정해 주는 규제 원리일 수는 있어도 사상의 내용체계를 만들어 가는 구성 원리는 아니라고 한 것도 이 때문이다.
315. 카르마
업(業)은 산스크리트어 낱말 카르마(कम0 Karma)의 번역어이다.
원래는 행위를 뜻하는 말로서 인과(因果)의 연쇄관계에 놓이는 것이며 단독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의 행위는 그 이전의 행위의 결과로 생기는 것이며, 그것은 또한 미래의 행위에 대한 원인으로 작용한다. 거 기에는 과거 · 현재 · 미래와 같이 잠재적으로 지속하는 일종의 초월적인 힘이 감득(感得)되어 있으며 흔히 시 간(時間: Kala) · 천명(天命: Daiva) · 천성(天性: Svalhava) 등의 말로 표현되고 있다.
그러므로 《마하바라타》에서는 "업은 어떤 사람도 피할 수가 없으며 그림자가 형체에 따라다니듯이 업은 서 있는자의곁에서있고가는자의뒤를따라가며,행위하는자에게작용을미친다"고말하고있다.[1] 이러한인 과관계에 입각한 행위론은 당연히 선업선과(善業善果) · 악업악과(惡業惡果)와 같은 윤리적인 인과의 법칙 을 낳게 하였다.
바라문교 사회에서는 어떤 특정의 카스트에 태어난다는 것도 그에 상응하는 전생의 행위가 있었기 때문이라 고 한다. 업 사상은 광범위하게 인도 제종교의 전체 속에 들어 있어서 불교 및 자이나교에서도 특색있는 업설 (業說)을 전개하였으나, 인도사상의 정통(正統)인 브라만교나 힌두교에서 가장 강조되었다.
다르마 진리법 : 발현업, 성적업, 미래업
316. 홀로코스트
홀로코스트(Holocaust, 그리스어 hólos(전체)+kaustós(타다)에서 유래) 또는 쇼아(히브리어: השואה, 이디 시어: חורבן)는 제2차 세계 대전 중 아돌프 히틀러가 이끈 나치당이 독일 제국과 독일군 점령지 전반에 걸쳐 계획적으로 유태인과 슬라브족, 집시, 동성애자, 장애인, 정치범 등 약 1천1백만 명의 민간인과 전쟁포로를 학 살한 사건을 의미한다. 사망자 중 유태인은 약 6백만여명으로, 그 당시 유럽에 거주하던 9백만 명의 유태인 중 약 2/3에 해당한다. 유태인 어린이 약 백만 명이 죽었으며, 여자 약 2백만 명과 남자 약 3백만 명이 죽은 것으로 파악된다. 유태인과 기타 피해자들은 독일 전역과 독일 점령지의 약 4만여개의 시설에 집단 수용, 구 금되어 죽게 되었다.
이러한 박해와 학살은 단계적으로 진행되었다. 먼저, 1935년 제정된 뉘른베르크법을 비롯하여 유태인을 사 회에서 배척하는 각종 법령들이 세계 대전 발발 전에 제정되었다. 또한 집단 수용소를 지은 후 수감자들을 각 종 노역에 동원하였고, 이들은 대부분 과로사하거나 병사하였다. 동유럽 점령지의 경우, 특별행동부대라는 불법 무장 단체가 100만 명이 넘는 유태인과 정치사범을 총살했다고 알려졌다고한다.
독일군은 유태인과 집시들을 게토에 수용한 후 화물 열차에 실어서 집단 학살 수용소로 이송했다. 화물 열차 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데, 살아남은 이들은 차례대로 가스실에서 죽음을 맞이하였다. 이 학살에는 독 일 관료제 전체가 관여했다고 알려져 있고, 한 홀로코스트 학자는 이 때문에 독일의 제3제국을 “학살국가”라 고 칭하기도 하였다.
홀로코스트(Holocaust)는 그리스어 holókauston에서 유래하는데, 이는 고대 그리스에서 신에게 동물을 (holos) 태워서(kaustos) 제물로 바치는 것을 의미한다. 196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홀로코스트는 대량 학살 을 지칭하는 데 쓰였지만, 1960년대부터 학자들과 유명작가들에 의해 특별히 나치의 유태인 학살을 지칭하 는 개념으로 쓰이기 시작하였다. 특히 1978년 방영되었던 TV 시리즈 홀로코스트 Holocaust는 이 개념을 대 중적으로 널리 알리는 계기로 평가받는다.
성서 히브리어로 재앙을 뜻하는 쇼아(Shoah(שואה), Sho'ah, Shoa라고도 표기됨)는 1940년대부터 유럽과 이스라엘에서 홀로코스트를 지칭하는 히브리어 단어가 되었다. 많은 유태인들은 홀로코스트보다 쇼아라는 표현을 더 선호하는데, 이는 종교학적으로 홀로코스트가 그리스 이교도의 문화에 어원을 두고 있다는 사실에 서 기인한다.
나치당은 홀로코스트를 순화하여 완곡법을 통해 “유대인 문제의 궁극적 해결”(영어: Final Solution to the Jewish Question, 독일어: Endlösung der Judenfrage)이라고 표현하였고, “궁극적 해결(Final Solution)"이 라는 표현은 유태인 학살을 지칭하는 개념으로 널리 쓰였다. 또한 나치당은 살 가치가 없는 생명 (lebensunwertes Leben)이라는 표현으로 유태인 학살을 정당화하고자 하였다.
317. 낭만주의
낭만주의(浪漫主義, 영어: romanticism, 문화어: 랑만주의)는 서유럽에서 발생한 미술적, 문학적, 지적 사조(思 潮)이다. 18세기 말부터 시작하여 1800년~1850년 사이에 정점을 찍었다. 18 ~ 19세기 계몽주의와 신고전주 의에 반대하여 나타난 낭만주의는 로맨티시즘(Romanticism)이라는 단어의 기원에서 알 수 있듯이 비현실적 인, 지나치게 환상적이라는 어원을 가지고 있으며 이성과 합리, 절대적인 것에 대해 거부한 사조였다. 낭만주 의의 첫 주자는 계몽주의 시대에 독일의 루소라고 불리던 헤르더이다. 헤르더는 감정과 감성, 민족역사를 강 조하였으며, 그의 저서 "인류 역사의 철학적 고찰"은 후에 러셀과 헤겔로 이어지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느낌 과 감정을 강조하였으며, 계몽주의들이 설파 했던 이성에 대해 강한 회의를 품었지만, 낭만주의자들은 결코 이 성이라는 것을 무시하거나 거부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과거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의미로 파악 되었던 이성 을 역사적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것으로 수정하여 고려하였다. 또한 이 낭만주의는 개성을 강조하고, 사회를 과거와 달리 하나의 “유기체”로 보았다. 탄생과 성장, 쇠퇴와 소멸을 겪는 것은 사회의 한 특징이라 말하였으 며, 이것은 후에 《문명 형태학》(아놀드 토인비)을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 현대 자유주의 신학의 아 버지라고 불리는 독일의 슐라이에마허에게 큰 영향을 주어서 자신의 신학방법으로 감정(Gefühl, feeling)을 기독교 종교의 본질로 보았다. 계몽주의의 최고의 성과가 이성에 의한 비합리적인 정치체제의 타파였는데, 혁명을 통하여 드러난 인간의 취악한 면을 보고는 절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주변이 어지럽게 변 하는 데 당혹하였으며, 모든 원리가 붕괴되는 것을 보고 일체에 대한 불신감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정신의 폐허 위에 자신의 심성(心性)에 맞는 문화를 이룩하려고 한 것이 낭만주의 정신의 본질이며, 그 결과 자 아에 대한 확인과 그 내부에로의 침잠(沈潛)이 시작되었다. 내면에야말로 진실이 있다고 주장하고 1798년 독 일의 예나에서는 A.W.슐레겔과 W.슐레겔 형제가 《아테네움:Athenäum》지를 창간하였으며, 영국에서 는 워즈워스와 콜리지가 자연의 관조(觀照) 중에 상상력에 의한 우주와의 영적 합일감을 노래한 《서정민요 집》을 간행함으로써 각기 자국 낭만주의의 효시(嚆矢)를 이루었다.
318. 파블로 피카소
파블로 루이즈 피카소(스페인어: Pablo Ruiz Picasso, 1881년 10월 25일 ~ 1973년 4월 8일)는 스페인 말라 가에서 출생하였고 주로 프랑스에서 미술활동을 한 20세기의 대표적 큐비즘 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대 표작으로 《아비뇽의 처녀들》, 《게르니카》 등이 있다.
피카소는 1만 3,500여 점의 그림과 700여 점의 조각품을 창작했다. 그의 작품 수를 전부 합치면 3만여 점이 된다. 피카소 작품의 개수와 다양성 때문에 많은 예술사가들이 그의 작품들을 시기별로 분류하는 작업을 시 도해왔다. 하지만 각 시기의 명칭을 정하고 시기를 몇 개로 나눌 것 인가를 놓고 계속 의견이 대립되고 있다.
1904년 피카소는 이른바 '장밋빛 시대'를 맞는다. 이 시기의 작품들 역시 피카소가 파리에 머물 때 그려졌지 만, 오늘날 그것들은 그의 초기 작품들과는 달리 스페인 화풍이 아니라 프랑스 화풍에 가까운 것으로 평가되 고 있다. 이 2년의 기간 동안 피카소는 전과는 달리 붉은 색과 분홍 색을 많이 사용했다. 이러한 변화가 일어 난 것은 그가 많은 그림들의 주제로 삼았던 페르낭드 올리비에와의 로맨스 때문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피카소는 주로 프랑스에서 활동하였지만, 프랑스 정부에서 사회주의자로 분류되어 프랑스 시민권을 갖지는 못했다.
피카소는 스탈린을 익살스럽게 그린 그림이 스탈린에 대한 조롱으로 해석되어 1957년에 제명되기까지 프랑 스 공산당원으로 활동한 사회주의자였으며, 한국 전쟁에서 벌어진 미국의 잔학행위(예:미군이 충청북도 영동 군 노근리에서 한국인들을 전투기와 기관총으로 학살한 노근리 학살)에 대해서 비판하였다. 1951년 그는 '한 국의 학살'(Massacre in Korea)을 발표하였고, 유엔과 미국의 한국전쟁의 개입을 반대하였다. 1973년 92세 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피카소는 미술 활동을 통하여 사회적 문제를 알렸다. 대표적으로 스페인 내전에서 게르니카 민간인들이 나 치 독일 공군의 폭력으로 학살당한 게르니카 학살사건(1938년)을 고발한 《게르니카》가 있다.
319. 피타고라스 정리
기하학에서, 피타고라스 정리(문화어: 세평방의정리, 영어: Pythagorean theorem)는 직각 삼각형의 빗변의 제 곱이 두 직각변의 제곱의 합과 같다는 정리이다.
직각 삼각형의 두 직각변 를 각각 한 변으로 하는 정사각형 면적의 합은 빗변 를 한 변으로 하는 정사각형의 면 적과 같다. 이를 피타고라스 정리라고 한다.
즉, 의 제곱은 와 의 제곱의 합이다. 다시 말해, 를 변으로 하는 정사각형의 넓이는 를 변으로 하는 정사각형의 넓이와 를 변으로 하는 정사각형의 넓이의 합이다.
피타고라스 정리의 관계를 만족시키는 세 양의 정수의 쌍을 피타고라스 삼조라고 한다. 예를 들어, 는 피타고 라스 수이다.
바빌론인은 많은 쌍의 피타고라스 삼조를 알고 있었다.
검증되지 않은 일화에 따르면, 이집트인은 밧줄을 비율로 매듭내어 직각삼각형을 만들었다.
피타고라스 학파는 피타고라스 삼조를 구하는 방법을 고안하였다. 즉, 홀수 에 대하여, 는 피타고라스 삼조이
다. 또한, 피타고라스 학파의 히파소스는 이 과정에서 통약 불가능 비율을 발견하였다고 여겨진다. 에우클레이데스는 원론에서 피타고라스 정리를 서술 및 증명하였으며, 이는 발견된 최초의 증명이다.
인도인 역시 피타고라스 정리를 "직사각형의 대각선의 제곱은 두 이웃변의 제곱합과 같다"는 내용으로서 알 고 있었다. 이는 적절한 모양의 제단을 만드는 데 응용되었다.
유휘는 《구장산술주》에서 원주율을 계산하는 데 피타고라스 정리를 사용하였다.
피타고라스 학파가 피타고라스 정리를 발견 및 증명하였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프로클로는 원론의 주해를 쓸 때, 정리의 발견과 최초 증명에 대한 공로를 피타고라스에게 돌렸다. 이에 대하여, 모리스 클라인은 다음과 같이 적었다.
320. 쇤베르크의 달에 홀린 피에로
달에 홀린 피에로(Pierrot Lunaire 피에로 뤼네르[*])는 아르놀트 쇤베르크가 작곡한 멜로드라마이다. 알베르 지로의 동명의 시집을 원작으로 한다.
내레이터가 무조 형식의 곡에서 말을 하듯이 가사를 전달하는 것이 특징인데, 이러한 형식은 12음기법으로 발 전하게 된다.
아르놀트 쇤베르크(독일어: Arnold Schönberg, 1941년 이후: Arnold Schoenberg, 1874년 9월 13일 ~ 1951 년 7월 13일)는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귀화한 작곡가, 음악이론가이자 음악교육가이다. 쇤베르크 의 가계는 빈에 기반을 둔 유대인 집안이다. 1933년 독일에서 국가사회주의 노동자당이 정권을 획득하자 미국 으로 도피하였으며, 1941년에 미국 국적을 취득하였다.
쇤베르크는 20세기 전반기의 가장 영향력있는 작곡가 중의 하나였으며, 조성음악의 해체에 기여한 중심인물 중 하나이다. 장조와 단조에 기반한 조성의 해체는 시기적으로 1906년과 1909년 사이에 이루어졌다. 쇤베르 크는 12음기법을 확립한 장본인 중의 한 명이며, 12음기법은 음렬주의 음악으로 발전하여 현대음악에서 많은 작곡가들의 음악에 계승되었다.
321. 분석철학
분석철학(分析哲學, Analytic philosophy 애널리틱 펄라서피[*])은 철학 연구에서 언어 분석의 방법이나 기 호 논리의 활용이 불가결하다고 믿는 이들의 철학을 총칭한 것이다. 그러므로 분석철학은 특정한 인생관이 나 세계관을 토대로 하여 고정된 이데올로기를 내세우는 학파가 아니라 철학하는 방법이 논리적 언어적 초 점에 맞추어진 경향이 유사한 학파를 지칭한다. 실존주의나 현상학 그리고 토미즘(Thomism)과 막시즘과 같은 대륙의 철학들과 대조적이다.
분석철학은 초기 논리 실증주의(논리 경험주의)와 동일시되었다. 이에 따르면 과학적 명제가 유의미할 수 있는 조건은 바로 (1) 경험적, 실증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야 하고 (2) 논리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다보 니 (논리적인 언어 분석을 중시한다는 이유에서) 분석철학을 '언어철학'으로 부르거나 (과학적 명제의 분석 을 중시한다는 이유에서) '과학철학'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분석철학, 더 나아가 철학 일반에 대한 오해와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엄밀히 보면 '분석철학'은 철학의 학파적 성격을 지닌 데 반해 '과학철학'은 철학의 한 '분과'를 지시하므로 양자를 동일시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 이런 명칭의 혼란은 언어적 철학(linguistic philosophy)이나 과학적 철학(scientific philosophy)이란 표현을 언어철학 (philosophy of language), 과학철학(philosophy of science)과 혼동하면서 생겨난 오해일 뿐이다.
'언어적 철학'이나 '과학적 철학'은 분석철학의 방법론이나 성격을 다른 측면에서 강조한 명칭이다. 그러나 ' 분석철학'이라고 해서 (과학적 명제에 대한 언어적) '분석'만을 주된 방법론으로 삼는 것은 아니다. 일찍이 논 리실증주의자들은 '분석의 방법' 못지않게 '종합'과 '통일'의 방법을 모색하였다. 1935년부터 1939년까지 노 이라트, 카르납, 모리스 등이 주축이 되어 파리, 코펜하겐, 케임브리지, 보스턴 등지에서 '통일과학에 관한 국제회의'를 다섯 차례나 연차적으로 개최한 바 있으며, 노이라트는 1937년 네덜란드 헤이그에 '국제통일과 학연구소'를 설립하였고 1938년부터 <통일과학 백과전서>라는 총서를 기획, 미국에서 이를 계속 발간하였 다. 노이라트가 편집하던 <통일과학 논단>은 그가 사망한 직후(1946), <종합>(Synthese)이라는 이름으로 네덜란드에서 속간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특히 1959년부터 현재까지 <종합총서>(Synthese Library)가 계속 출간되어 분석철학 4기의 특징을 뚜렷이 나타내고 있다. 이처럼 오늘의 분석철학을 대표하는 잡지나 총서 중 하나가 '종합'이란 명칭을 지니고 있는 점으로 미루어 보더라도 분석철학이 편협하게 일방적으로 '분 석'만을 일삼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322. 인도 서사시
마하바라타(데바나가리 문자: महाभारत)는 라마야나, 바가바탐과 함께 인도의 3대 고대 서사시 가운데 하나 이다. 비야사가 저술한 이 서사시는 세계에서 세 번째로 긴 서사시이기도 하다. 고대문학의 중요한 유산이 며, 인도인들에게는 종교적으로나 철학적으로 커다란 의미를 지닌다. 마하바라타의 제6권 <비스마파르바> 의 일부인 바가바드 기타는 힌두교 사상의 정수를 담고 있다.
마하바라타는 "위대한 바라타 왕조"라는 의미이며 더 넓게는 "위대한 인도의 역사"로도 번역할 수 있다. ("바 라트"는 인도 정부에서 사용하는 자국의 공식 명칭이기도 하다.) 총 20만 개가 넘는 운문, 250만여 개의 단 어로 이루어져 있다. 바라타 왕국의 왕 산타누의 후손인 판다바 형제들과 두료다나 형제간의 전쟁이 주요 줄 거리이나 등장인물에 얽힌 이야기와 등장인물들이 다르마와 카르마에 대해 노래하는 게송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마하바라타는 이후 인도의 문학과 문화 전반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인도 사람들은 흔히 "세상의 모든 것이 마하바라타에 있고, 마하바라타에 없는 것은 세상에도 없다"고 말한다. 비야사는 왕들과 영웅들의 이야기에 인도의 신화를 함께 엮어 넣었으며 이야기의 전개를 통해 힌두교의 기본 교의인 다르마(법)와 카 르마(업), 아트마, 모크샤(해탈) 등의 의미를 설명한다. 이 때문에 마하바르타는 영웅 서사시의 면모와 함께 경전으로서 지위를 갖는다.
라마야나(산스크리트어: रामायण)는 고대 인도의 산스크리트의 대서사시이다. 7편 2만 4천의 시구로 되어 있
다. 발미키의 작품이라 하는데 아마도 그는 편자인 것 같다. 코살라국의 왕자 라마(Rama)의 무용담에다 왕 비 시타(Sita)의 정절과 원숭이족의 왕인 하누마트(Hanumat)의 충성, 마왕 라바나의 포악 무도함을 서술한 웅대한 작품으로, 먼 옛날부터 구전되어 오던 이 사화가 하나의 형태를 갖추게 된 것은 기원전 수세기경으 로, 현존하는 7편 중에 제1편과 제7편은 2세기경에 추가, 보충된 것으로 해석된다. 이 증보된 두 편에서 역 사적 인물인 라마를 비시누 신의 화신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은, 이 역사시에 종교적 의의를 부여하여 라마 숭배를 북돋움으로써 후세의 문학 · 종교 · 사상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이 책은 "최초의 카비야"라 불리며 고전 산스크리트 문학에 있어서 미문체 작품의 기원이라 평가되어, 후세의 인도 문학은 물론이고 나아가서는 자바 · 말레이시아 · 타이 · 티베트 · 코탄 등에 전파되어 커다란 영향을 주었고, 한역 불전을 통해 한국에도 전래되었다.
323. 미드웨이 해전
미드웨이 해전(영어: Battle of Midway)은 1942년 6월 4일부터 6월 7일까지 벌어진 태평양 전쟁의 결정적 인 해전이다. 이 해전은 진주만 공격이 있은 지 6개월 뒤, 그리고 산호해 해전이 있은 지 1달 뒤에 발생했 다.[1][2][3] 체스터 니미츠, 프랭크 잭 플레처, 레이먼드 A. 스프루언스가 이끄는 미국 해군은 야마모토 이소로 쿠, 나구모 주이치, 곤도 노부타케가 이끄는 일본 제국 해군의 공격함대를 미드웨이 환초에서 격퇴하였고 일 본군 함대에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혔다. 군사 역사학자인 존 키건은 미드웨이 해전을 "해전 역사상 가장 놀랍고 결정적인 타격"이라고 불렀고,[4] 해전 역사학자인 크레이그 사이먼즈는 미드웨이 해전을 "전술적으 로 결정적이었고 전략적으로 영향을 남긴 살라미스, 트라팔가르, 쓰시마와 더불어 세계사에서 가장 중대한 해전 중 하나"라고 불렀다.[5]
이전의 진주만 공격 때처럼 일본의 작전은 태평양의 전략적 강국인 미국을 제거하여 일본이 대동아공영권 을 자유롭게 설립하는 것을 추구하였다. 일본은 사기를 저하시키는 또 다른 패배로 인해 미국이 태평양 전쟁 에서 항복하기를 바랐고, 일본이 태평양에서 우세를 점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미국 항공모함을 함정으로 끌 어들여 미드웨이를 점령하는 것은 도쿄를 공습했던 둘리틀 공습에 대응하여 일본의 방어 교두보를 확장하 는 전체적인 "장벽" 전략의 일부였다. 또한 이 작전은 피지, 사모아, 하와이를 공격하는 더 넓은 작전의 사전 작업으로 여겨졌다.
작전은 일본이 미국의 대응을 잘못 가정하고 초기에 부대를 잘못 배치하여 불리하게 바뀌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미군 암호해독자들이 일본군이 계획한 공격의 위치와 날짜를 판단할 수 있게 되어 사전에 경고를 받은 미국 해군이 매복을 준비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일본군 항공모함 4척과 미군 항공모함 3척이 전투에 참여 했다. 일본 제국 해군은 진주만을 공격했던 중형항공모함 아카기, 가가, 소류, 히류를 잃었고, 중순양함 미쿠 마도 이 해전에서 잃었다. 미국 해군은 중형항공모함 USS 요크타운과 구축함 USS 해먼을 잃었다.
미드웨이 해전과 솔로몬 제도 전역의 소모전 이후, 증가하는 사상자들에 대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일본은 항공 모함을 비롯한 물자와 숙련된 조종사들과 같은 인원 대체 능력이 떨어지게 되었다. 한편 거대한 산업 능력 및 부대 훈련방식 덕분에 미국은 미드웨이 해전에서 입은 손실을 쉽게 대체할 수 있었다. 과달카날 전 역과 더불어 미드웨이 해전은 태평양 전쟁에 전환점을 마련한 전투로 평가받는다.
324. 소네트 18
여름날과 비교 해볼까요?
너는 더 아름답고 더 온대하다 .
거친 바람이 5 월의 사랑스러운 새싹을 흔들고, 여름의리스는 날짜가 너무 짧다.
때때로 하늘의 눈이 너무 뜨겁다. 그리고 종종 그의 금색 안색이 흐려진다.
그리고 공정에서 나온 모든 박람회는 우연히 또는 자연의 변화하는 과정에 따라
사라지지 않습니다 . 그러나주의 영원한 여름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죽음이 그의 그늘에서 방황하지 말아라. 영원한 선에서 네가 자라날 때 :
사람이 숨을 쉴 수 있거나 눈을 볼 수있는 한, 이렇게 오래 살면 이것이 너에게 생명을 준다.
Sonnet 18 은 영국 극작가이자 시인 William Shakespeare가 쓴 154 개의 소네트 중 가장 잘 알려진 것 중 하나입니다 .
에서 소네트 , 스피커는 그가 여름날에 젊은 사람을 비교해야하는지 여부를 묻는하지만, 젊은 사람이 여름의 날을 능가하는 자질을 가지고 노트. 또한 여름날의 자질은 변경 될 수 있으며 결국에는 감소 할 것이라고 지 적했습니다. 화자는 청년이 읽을 수있는 한시의 선에서 영원히 살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소네트에는 아이 러니 한 표현이있다 : 그것은 영원 할 실제 청년이 아니라, 그시에 포함 된 그의 설명이며, 그시에는 청년에 대한 설명이 없거나 적지 않다. 여름날에 대한 생생하고 지속적인 설명을 포함합니다. 그 젊은이는 살아남아 야합니다.
325. 게르니카
〈게르니카〉(Guernica)는 스페인 내전 당시 나치군이 스페인 게르니카 지역 일대를 1937년 4월 26일 24대 의 비행기로 폭격하는 참상을 신문으로 보고 파블로 피카소가 그린 그림이다. 독일군의 폭격으로 수많은 사 람들이 희생되었으며 250~1,600명 그 이상의 사람들이 사망하였고 또한 부상당하였다.
거대한 벽화의 형상을 띤 이 그림은 사실 1937년 파리 세계 박람회의 스페인 전용관에 설치되도록 스페인 정 부가 피카소에게 의뢰한 작품이었다. 그림은 사실 이 사건이 일어나기 수년 전에 의뢰된 것이었는데 어떤 이 유에서인지 게르니카의 참상이 그에게 영감을 주었던 것으로 보인다. 폭격의 공포와 피카소가 화폭에 담아내 고자 했던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대한 저항이 근본 이유인 것으로 보인다. 그 당시 프랑시스코 프랑코 (Francisco Franco)의 독재 체제에 대해 엘리트로서 느꼈던 비애도 그림에 잘 나타나 있다.
크기는 349.3 X 776.6 cm 이고 현재 스페인 마드리드의 레이나 소피아 국립 미술관에 소장 되어있다. 그림에는 부상당한 사람들과 절규하는 사람들 등이 그려져 있으며, 전쟁의 참상을 알려주는 작품이다.
326. 황금비
황금비(한국 한자: 黃金比, Golden ratio) 또는 황금분할(黃金分割)은 어떤 두 수의 비율이 그 합과 두 수중 큰 수의 비율과 같도록 하는 비율로, 근사값이 약 1.618인 무리수이다. 수학적으로 로 정의된다.
유클리드(원론 3, 141)가 그 특징을 연구한 이래로 많은 수학자들이 자연에서 찾을 수 있는 황금비율을 연구 해 왔다.
327. 12음 음렬주의
12음주의(Dodecaphonism, Twelve-tone technique)는 아르놀트 쇤베르크가 창시한 작곡 기법이다.
쇤베르크는 1908년의 《현악 사중주 2번》의 끝악장에서 무조의 서법을 사용한 뒤부터 몇몇 음 그룹의 음정관 계를 카덴차 구조에 대신하는 1종의 악곡통일을 위한 형식으로서 쓰는 ‘음렬기법’을 써왔으며, 마침내는 옥타 브 안의 12반음을 전혀 중복없이 써서 음렬을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하여 전곡의 모든 선율적, 화성적 요소를 구성하는 작곡법에 도달하여 이를 ‘12음기법’이라 불렀다. 12음기법은 무조음악을 이론화한 것이라고 볼 수 있 다. 쇤베르크가 12음기법으로 음렬을 구성할 때에 자연배음에서 유도된 조성이 지니는 자연의 근거를 무시하 지 않고 배음이 주는 협화도나 도미넌트 관계를 고려한 점이라든가 바로크나 고전형식을 쓰고 있음은 신고전 주의적 정신과 관계가 없진 않다.
12음기법은 제1·2차 세계대전 동안은 제자인 안톤 베베른과 알반 베르크가 계승하였으며 제2차 세계대전 후 에 보편화하여 이 기법을 사용한 작곡가는 급격하게 늘어났다.
328. 진리
진리(眞理, 영어: truth)이란, 현실이나 사실에 분명하게 맞아 떨어지는 것, 또는 보편적·불변적으로 알맞은 것 을 뜻한다. 참, 진실 등으로도 불린다. 진리에 대한 정의는 다양하여 철학, 논리학, 수학에서 다양한 개념으로
쓰인다. 논리학에서는 명제가 정해진 사유의 법칙에 맞아 오류(거짓)가 없는 정당한 명제를 일컫는다. 진리는 철학, 특히 서양 철학에서 매우 중요하게 여겨왔다. 고대 그리스의 소피스트 프로타고라스는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고 하며, 진리의 상대주의 주장하였다. 프로타고라스에 대항하여 플라톤은 현상은 현상 밖에 있는 불변 하는 이데아를 본으로 한다는 이데아론을 주창하기에 이른다. 특히, 회의주의에 대항하여 의심할 수 없는 명제 를 찾기 위하여, 데카르트는 분명하지 아니한 것들을 소거하여 가장 확실한 진리를 찾아 나서려고 하였고, 결 국 ‘사고하는 나’ 가 가장 확실하다고 하여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말을 남겼다. 진화론의 등장으 로 불변하는 진리에 대한 회의가 만연하게 되었으며, 미국에서는 고정된 진리는 없으며 유용한 것이 진리라는 실용주의가 발흥하였고, 독일의 철학자 니체는 "신은 죽었다"고 선언하기에 이른다.
논리학이나 형이상학에서 진리란 논리적 공리, 추론법칙, 구조 따위에 어긋나지 않는 정당한 사고를 말한다. 진 리가 무엇인가,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에 대하여 다루는 이론을 진리론이라 하며 수학, 철학, 언어학의 다양한 분야에서 여러 논의가 있다. 수리 논리학에서, 구문론적으로는 정해진 추론규칙에 따라 올바르게 증명한 명제 를 참이라고 하며, 의미론적으로는 정해진 논리적 구조 안에서 충족가능한(이치에 맞는) 명제를 참이라 한다. 괴 델의 완전성 정리는 술어 논리에서는 이러한 양측의 진리론이 서로 일치한다는 내용의 정리이다.
329. 카스트 제도
카스트(Caste) 또는 신분제는 세계의 수많은 전근대 사회에서 나타났던 문화·사회적 현상으로, 일정한 신분 계 층 집단의 지위를 자손 대대로 세습하도록 하는 제도이다. 신분의 분류는 주로 집단의 경제력, 정치적 권력, 사 회 문화에 기인되어 이루어진다. 카스트 아래에서, 특별한 정변이 일어나거나, 개인적 능력이 매우 우수한 사례 등의 예외가 일어나지 않는 한 계층 이동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일부 국가에는 아직 카스트의 풍습이 남 아 있고, 대략 2억 5000만 명의 세계 인구가 카스트로 인하여 차별받고 있다.
일반적으로, 카스트는 주로 인도의 신분계층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인도에서는 카스트 제도를 합 법화한 적이 없고 1947년에 카스트 제도에 의한 사회적 차별을 법적으로 금하였지만 아직 카스트 제도 자체는 폐지되지 않았다.
인도에는 산업화에 따라 도시에는 카스트가 유명무실하나 소도시에는 아직 사회문화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 다. 인도에서는 카스트를 산스크리트어로 색이라는 뜻에서 바르나(Varna)라고 부른다. 인도의 카스트 계급에 는 주요 4개의 계층이 있다.:
계층 명칭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자영농, 상인, 수공업자, 하급 관리, 연예인 등 수드라 소작농, 어민, 노동자 등
종사 직업 성직자, 학자, 승려 등.
사회적 업무
사회인의 교육과 힌두교의 신들에게 기도를 드리는 일 사회 제도와 안보를 유지하며 국가를 통치하는 일
생산 활동과 관련된 일 육체 노동과 관련된 일
무사, 관료, 군인, 경찰관 등.
330. D-데이
D-데이(D-Day)는 전략적 공격 또는 작전 개시 시간을 나타내는 데 자주 사용되는 미국의 군사 용어이다. 어 두의 ‘D’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지만, 막연한 날짜를 나타내는 Day의 약자라는 해석이 있다.
역사상 가장 유명한 D-데이는 1944년 6월 6일 노르망디 상륙 작전이며, 2차 세계 대전 중 나치 독일 점령하 의 유럽에 연합군이 침공을 개시한 오버로드 작전의 결행일이다. 노르망디 상륙 작전의 D-Day는 당초 1944 년 6월 5일이었지만, 악천후로 인해 연합군 최고 사령관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는 다음날인 6월 6일로 작전 을 연기했다. 이후 1944년 6월 6일은 일반적으로 D-Day라고 호칭되게 되었다. 이것이 일반적으로 널리 사용 되어 이후의 군사 작전 계획 담당자는 작전 개시 날짜를 D-Day라고 호칭하는 것을 피하게 했다. 예를 들어, 더 글러스 맥아더 지휘의 레이테 섬 침공 작전은 "A-Day"로 호칭되고, 오키나와 침공 작전은 "L-Day"라고 했다.
331. 톨스토이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백작(러시아어: Граф Лев На́евч Тсто́ 듣기 (도움 말·정보), 문화어: 레브 똘스또이, 영어: Leo Tolstoy 또는 Lev Nicolayevich Tolstoy, 1828년 9월 9일 ~ 1910 년 11월 20일)은 러시아의 소설가이자 시인, 개혁가, 사상가이다. 사실주의 문학의 대가였으며 세계에서 제일 위대한 작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전쟁과 평화》(1869년), 《안나 카레니나》(1877년)가 그의 대표적인 작 품이다. 러시아 문학과 정치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톨스토이는 ‘인간의 심리 분석’과 ‘개인과 역사 사이의 모순 분석’을 통하여 최상의 리얼리즘을 성취해 냈다. 이 작가는 일상의 형식적인 것을 부정하고 인간의 거짓, 허위, 가식, 기만을 벗겨내고자 했다. “톨스토이 이전에는 진정한 농민의 모습이란 없었다”는 레닌의 말처럼, 톨스토이는 러시아 제국에서 혁명이 준비되고 있던 시기를 적확(的確)하게 묘사하면서, 그의 문학과 사상을 사회혁명에 용해시켰다. 나아가서 전 인류의 예술적 발전을 한 걸음 진전시키는 데 그의 문학과 사상이 큰 역 할을 담당했다.
332. 마르크 샤갈
마르크 샤갈(Marc Zakharovich Chagall, 1887년 7월 7일 ~ 1985년 3월 28일)은 러시아 제국(현 벨라루스) 에서 태어난 프랑스의 화가이다. 파블로 피카소와 함께 20세기 최고의 화가로 불린다.
333.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영어: Fermat’s last theorem)는 정수론에서 3 이상 지수의 거듭제곱수는 같은 지수의 두 거듭제곱수의 합으로 나타낼 수 없다는 정리이다. 즉, 가 양의 정수이고, 이 3 이상의 정수일 때, 항상이다.
이 정리는 1637년 프랑스의 유명한 수학자였던 피에르 드 페르마가 처음으로 추측하였다. 수많은 수학자들 이 이를 증명하기 위해서 노력하였으나 실패하였다. 페르마가 자신의 추측을 기록한지 358년이 지난 1995년 에 이르러서야 영국의 저명한 수학자인 앤드루 와일스가 이를 증명하였다. 이 방법이 페르마가 살던 시기에 는 발견되지 않은 데다가 매우 복잡하기 때문에 수학자들은 페르마가 다른 방법으로 증명했거나 증명에 실패 했다고 추측한다.
이 정리를 증명하기 위한 수학자들의 각고의 노력 덕분에 19세기 대수적 수론이 발전했고 20세기에 모듈러 성 정리가 증명되었다. 앤드루 와일스의 증명은 기네스북에서 가장 어려운 수학 문제로 등재되었다.
사실 이 문제는 고대 그리스의 저명한 수학자인 피타고라스가 증명한 피타고라스 정리가 세제곱, 네제곱 등에 서도 성립할까라는 질문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334.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소련 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난 스트라빈스키는 페테르부르크 대학교에서 법률을 배우다가, 1903년 독일에 서 니콜라이 림스키코르사코프를 만난 후 음악에 뜻을 두고, 그에게서 작곡 개인지도를 받았다.
1908년 관현악곡 《불꽃》으로 러시아 발레단의 디아길레프에게 인정을 받고, 그의 의뢰로 발레곡 《불새》 (1910), 《페트루시카》(1911)를 작곡하여 성공을 거둠으로써 작곡가로서의 지위를 확립하였다. 1913년 발 표한 《봄의 제전》으로 파리악단에서 찬반 양론의 소동이 일어났으며, 이 곡으로 당시 전위파 기수의 한 사 람으로 주목받게 되었고, 그의 대표작이 되었다.
러시아 혁명으로 조국을 떠난 그는 제1차 세계 대전 후 신고전주의 작풍으로 전환하였는데, 이 시기의 작품으 로 《풀치넬라》(1920)가 있다. 그리고 고전 시대와 바로크 시대 음악의 정신을 부흥시키려고 한 음악풍조는 제1·2차 세계대전 사이에서 유럽 음악의 주류를 이루었는데 그는 이 시기의 풍조에 선도적 역할을 하였다.
1934년 프랑스에 귀화했다가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1945년 미국으로 망명, 귀화하여, 한때의 침체기를 거쳐 《3악장의 교향곡》(1945)과 《미사》(1948) 등으로 재기, 다시 제2의 전기(轉機)를 맞이하였다. 그리 고 말년에는 종교음악에 관심을 두어 《설교, 설화 및 기도》(1961), 칸타타 《아브라함과 이삭》(1963), 합 창곡 《케네디의 추억을 위하여》(1965) 등의 작품을 남겼다.
335. 정의
정의(正義,Justice)는 사회를 구성하고 유지하기 위해 사회 구성원들이 공정하고 올바른 상태를 추구해야 한 다는 가치로, 대부분의 법이 포함하는 이념이다.철학 영역에서는 정의의 올바른 뜻을 확립하고자 많은 고민을 해왔다.
조리는 경험칙, 사회통념, 사회적 타당성, 신의성실, 사회질서, 형평, 정의, 이성, 법에 있어서의 체계적 조화, 법 의 일반원칙 등의 이름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다른 많은 도덕적인 가치, 특히 ‘선’(善)과 비교할 때 정의는 비교적 현대에 와서 더욱 중요성이 강조되는 가치 이다. 정의는 으레 평등의 실현을 중심으로 하는 가치로 여겨진다. 그래서 정의의 뜻을 해설할 때에는 ‘각자에 게 그의 몫을 돌려주고자 하는 항구적인 의지’(울피아누스), ‘정당화될 수 없는 불평등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 를 추구하는 것’(존 롤스)과 같은 주장이 있었다. 예부터 전해 오는 가장 뛰어난 정의론은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한 다음 세 가지 정의의 분류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의의 본질이 평등이라고 주장하면서 정의를 ‘평균적 정의’와 ‘일반적 정의’와 ‘배분적 정의’로 구분했다. 평균적 정의는 모든 사람이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가치로 현대에서는 정치·사법 분야에서 강하게 적용된다. 평균적 정의는 개인 상호간의 매매와 손해 및 배상 또는 범죄와 형벌의 균형을 찾아 내려는 것이다. 둘째, 사회의 일원으로서 개인이 사회 때문에 져야 할 의무에 관한 일반적 정의이다. 셋째, 배분적 정의는 각자가 개인의 능력이나 사회에 공헌·기여한 정도에 따라 다른 대 우를 받아야 한다는 가치로 사회·경제적인 측면에 적용된다.
336. 도교
도교(道敎, 영어: Taoism)는 고대 중국에서 발생한 종교로서, 신선사상을 근본으로 하여 음양 · 오행 · 복서 · 무 축 · 참위 등을 더하고, 거기에 도가(道家)의 철학을 도입하고, 다시 불교의 영향을 받아 성립했다. 도교는 하 나인 도(道)의 세 가지 모습인 옥청(玉清: 원시천존) · 상청(上清: 영보천존) · 태청(太清: 도덕천존)의 삼청(三 清)을 최고신으로 하는 다신교이다. 경전으로는 도교 성전의 집성인 《도장(道藏)》이 있다. 도교의 신자를 도 교인 또는 도교도라고 하며, 우화등선(羽化登仙)을 목표로 하는 무리라는 뜻에서 우류(羽流)라고 하기도 한 다. 도사(道士)는 도교의 전문적 종교가이며 여성 도사는 여관(女冠)이라고 한다.
도교는 크게 도교 경전으로서의 《도장》, 도교 사원으로서의 도관, 도교의 성직자 또는 전문적인 종교인으로 서 도사 · 여도사의 체제를 갖춘 교단 도교(敎團道敎) 또는 성립 도교(成立道敎)와 이에서 벗어난 도교 단체 또는 도교 신앙을 통칭하는 민중 도교(民衆道敎)로 구분한다. 현세이익적인 면도 있지만 수행을 통해 신선이 되는 길을 가르치는 것을 중심으로 하는 교단 도교에 비해 민중 도교는 전적으로 현세이익적이라는 특징을 지 닌다.
도교의 창시자는 오두미도 또는 천사도의 창시자인 후한(25~220)시대의 장도릉(34~156)으로 알려져 있다. " 도교"라는 말을 최초로 사용한 사람은 북위(386~534)의 구겸지(365-448)로, 구겸지는 도교를 집대성한 사람 또는 최초의 교단 도교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다.
고대 중국의 전설상의 통치자인 황제(黃帝)와 도가의 이론가라 할 수 있는 노자(老子)를 신봉한다고 하여 황로사상(黃老思想) 또는 황로교(黃老教)라고도 한다. 노자와 장자(莊子)를 중심으로 한 도가(道家)사상과는 구별되어야 한다.
337. 맨해튼 프로젝트
맨해튼 계획 또는 맨해튼 프로젝트(영어: Manhattan Project)는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미국이 주도하고 영국 과 캐나다가 공동으로 참했던 핵폭탄 개발 프로그램이다. 맨해튼 계획은 레슬리 그로브스 소장이 지휘하는 미국 육군 공병대의 관할로 1942년부터 1946년까지 진행되었다. 민관 합동으로 진행된 맨해튼 계획의 군 사 부문은 맨해튼 지구(영어: Manhattan District)라 불렸고, 전체 프로젝트를 총괄하는 공식 이름은 대체 자 원 개발(영어: Development of Substitute Materials)이었다. 맨해튼은 공식명을 대신하는 미국측 암호명이었 고, 영국 측 참가 조직의 암호명은 튜브 앨로이스(영어: Tube Alloys, 특수강관(特殊鋼管))이었다.
맨해튼 계획은 1939년에 극소수(처음 예산은 6천 달러였다)로 출발하였지만 1945년에는 고용 인구 13만 명, 사용 예산 2억 달러(인플레이션을 감안한 2011년 화폐가치로 환산하면 약 24억4천만 달러가 된다[1])로 성장 하였다. 비용의 90% 이상은 공장의 건축과 핵분열 원료의 구입에 사용되었고, 10% 정도는 무기 개발에 사용 되었다. 연구 개발과 제조는 미국, 영국, 캐나다 등에 있는 30곳 이상의 지역에 분산되어 진행되었고, 일부는 기밀 지역이었다.
전쟁 기간 동안 두 종류의 핵폭탄이 개발되었다. 하나는 우라늄-235를 탄두로 사용한 포신형 핵분열 무기로, 자연에 존재하는 우라늄 가운데 0.7%를 차지하는 우라늄-235를 농축하여 탄두로 제작한 것이다. 우라늄- 235는 동위 원소인 우라늄-238과 원자량이 거의 같기 때문에 이 둘을 분리하여 농축하는 것은 매우 힘든 작 업이었다. 핵탄두의 제조 공정은 농축 우라늄을 생산하는 공정과 캘루트론(영어: Calutron)이라 불린 동위 원 소 분리 공정, 그리고 기체확산법과 열영동을 이용한 우라늄-235의 농축 공정이 있었다. 이 공정들은 대부
분 테네시주 오크리지에서 이루어졌다.
또 다른 종류의 핵폭탄은 플루토늄을 탄두로 사용한 것이었다. 플루토늄은 워싱턴주 핸포드 사이트에 있는 반 응로에서 만들어졌다. 플루토늄의 제법으로는 우라늄-238에 중성자를 조사(照射)하는 핵 전환이 사용되었다. 핵 전환으로 생성된 플루토늄은 화학적 분리 방법으로 농축되었다. 한편, 폭탄의 개발 및 제작은 뉴멕시코주에 있는 로스앨러모스 연구소에서 진행되었고, 포신형 보다 복잡한 내폭형으로 설계되었다.
1945년 7월 16일 사상 최초의 핵폭발 실험인 트리니티 실험이 진행되었다. 실험 이후 두 종류의 핵폭탄이 만 들어졌다. 포신형 핵폭탄에는 리틀 보이라는 이름이 붙었으며, 내폭형 핵폭탄은 팻 맨이라 불렸다. 미 국방부 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핵폭탄 투하를 결정하였다. 1945년 8월 6일 리틀 보이가 히로시마에 투하되었고, 8 월 9일에는 팻 맨이 투하되었다.
맨해튼 계획은 매우 엄정한 기밀을 유지하며 진행되었다. 그러나 소련의 핵기술 첩보원들은 이미 프로그램각 부분에서 암약하였다. 소련은 나치 독일의 독일 핵에너지 프로젝트에도 첩보원을 두고 있었고 양측의 정보 를 수집하였다. 소련은 독자적인 핵무기 개발을 위해 독일의 핵 기술자를 납치하는 러시아 알소스 작전을 진 행하였으며, 향후에는 맨해튼 계획의 핵 기술자를 납치하려는 계획도 세우고 있었다.
맨해튼 계획은 핵무기 제조가 최대 목표이긴 하였으나, 방사능의 의학적인 이용이나 핵추진력을 이용한 해군 력 확보와 같은 방사선학의 다양한 적용에도 관심을 두고 있었다. 1947년, 맨해튼 계획의 업무는 미국 원자력 위원회로 이관되었다.
338. 나 또한 미국(아메리카)를 노래하네
나는 어두운 피부의 형체 손님이 오면 그들은 내게 부엌에 가서 먹으라고 하지. 그러나 나는 웃고 또 잘 먹고 그리고 강하게 자란다.
내일 손님이 오면 난 식탁에 있을 거야. 그러면 아무도 함부로 내게 말하지 못할 거야. “부엌에서 밥 먹어.”라고
더욱이 그들은 내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게 될 것이고 부끄러워하겠지.
나 또한 미국이라네. -랭스턴 휴스-
339. 아메리칸 고딕
그랜트 데볼슨 우드(Grant DeVolson Wood, 1891년 2월 13일 - 1942년 2월 12일)는 미국의 화가이다. 1930 년대 미국의 전개된 중서부 지방주의 미술운동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아메리칸 고딕》(1930)이 잘 알려져 있는 작품이다.
그의 작품 《아메리칸 고딕》(1930)은 미국의 미술 작품 중에서 매우 잘 알려져 있다.
340. 죄수의 딜레마
죄수의 딜레마(罪囚-, prisoner's dilemma, PD)는 게임 이론의 유명한 사례로, 2명이 참가하는 비제로섬 게 임 (non zero-sum game)의 일종이다. 이 게임은 용의자의 딜레마 또는 수인의 번민(囚人의 煩悶)이라고도 부른다. 이 사례는 협력할 경우 서로에게 가장 이익이 되는 상황일때 개인적인 욕심으로 서로에게 불리한 상 황을 선택하는 문제를 보여주고 있지만 이후 이러한 딜레마의 '반복되는 죄수의 딜레마'로 지속적으로 일어 날 경우 긍정적인 협동이 가장 최선의 선택지가 된다는 시회행동의 전략적 진화를 보여준다.
상황은 다음과 같다. 두 명의 사건 용의자가 체포되어 서로 다른 취조실에서 격리되어 심문을 받고 있다. 이들 에게 자백여부에 따라 다음의 선택이 가능하다.
- 둘 중 하나가 배신하여 죄를 자백하면 자백한 사람은 즉시 풀어주고 나머지 한 명이 10년을 복역해야 한다.
- 둘 모두 서로를 배신하여 죄를 자백하면 둘 모두 5년을 복역한다.
- 둘 모두 죄를 자백하지 않으면 둘 모두 6개월을 복역한다.
341. 에런 코플런드
에런 코플런드(Aaron Copland, 1900년 11월 14일 ~ 1990년 12월 2일)는 순음악에 미국의 이미지를 심어 놓은 작곡가이다.
1900년 11월 14일 뉴욕 브루클린에서 유대계·러시아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파리에 유학했고, 귀국 후 현대음 악과 대중이 유리되어 있음을 보고 멕시코 여행의 인상을 바탕으로 한 <엘 살롱 멕시코>(1937)를 발표하여 넓은 음악층을 사로잡았다. 그 뒤로 코플런드는 미국적인 요소를 순음악으로 살려, 미국이라는 이미지를 클래 식 작품에 심는 데 성공하였다. 1990년 12월 2일 향년 9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반면 코플런드에게는 < 제3교향곡>을 비롯한 절대음악적인 작품 계열이 있어 2가지 면을 지닌 작곡가이다. 이 계열의 작품은 발레곡 <로데오>, <애팔래치아의 봄>, <빌리 더 키드>, 오페라 <텐더 랜드>, 영화음악에 <생쥐와 사람들>, <빨간 망 아지>, <우리의 거리> 등이 있다.
342. 언어철학
언어철학(言語哲學)은 언어에 대해 다루는 철학의 한 분야이다. 언어철학은 넓게는 언어적 철학과 언어학의 철학, 언어의 철학을 모두 포함한다. 이 세가지는 근본적으로 서로 연관이 된다. 영어의 linguistic philosophy 의 번역어. linguistic philosophy는 (1) 드물게는 "언어 철학 philosophy"와 동의어로 쓰이기도 하지만 (2) 주로 20세기 영미권의 철학적 경향을 가리키는 분석철학과 유사어로 사용된다. 분석철학은 프레게의 논리 학과 러셀의 언어 분석으로부터 방법론적 영감을 받아들인 철학의 유파로 볼 수 있는데, 철학적 문제들을 다 루기 위해 언어 분석으로부터 출발하려는 태도를 취한다. 언어적 철학에는 크게 논리실증주의와 일상철학, 이렇게 두 유파가 있었다. 러셀과 초기 비트겐슈타인으로 대비되며 콰인 등으로 계승된 논리실증주의는 (1) 경험적으로 실증가능하며 (2) 논리적으로 명확한 언명만이 (과학적으로) 의미 있는 언어라고 생각하며 언어 비판에 의한 형이상학의 거부를 주된 모티프로 삼았다. 후기 비트겐슈타인, 라일, 오스틴 등과 그들의 후예 들을 포함하는 일상언어철학은 논리실증주의의 좁은 견해를 벗어나 언어의 비지시적 사용에 대해서도 시야 를 확대했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 분석철학의 발전은 다양한 흐름과 주제들이 공존하고 있다.
343. 유교
유교(儒敎)는 중국 춘추시대(기원전 770~403) 말기에 공자(孔子)가 체계화한 사상인 유학(儒學)의 학문을 이르는 말이다. 시조 공자의 이름을 따서 공교(孔敎)라고도 한다.[1] 지켜야 할 인륜의 명분(名分)에 대한 가 르침이라고 하여 명교(名敎)라고도 한다.
유교의 특징 또는 핵심 사상은 수기치인(修己治人)으로, 유교가 실현하고자 하는 진리 구현의 방식이 수기 치인이다. 수기치인은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닦은 후에 남을 다스리는 것으로서 위정자가 갖추어야 할 덕목이 다. 즉, 유교는 자기 자신의 수양에 힘쓰고 천하를 이상적으로 다스리는 것을 목표로 하는 학문이며 또한 그 것을 향한 실천이라고도 할 수 있다.
유교는 전국시대(기원전 403~221)에는 제자백가의 하나인 유가(儒家)로 등장했지만, 전한의 무제(재위 기 원전 141~87) 때 국가 정통의 학문이 된 후로는 중국의 학문과 사상계를 대표하게 되어 현대의 중국에 이르 기까지 중국의 정치와 국민생활에 영향을 주었다.
유교의 주류는 전국시대에는 맹자로 대표되는 내성파의 학문과 순자로 대표되는 숭례파의 학문, 한나라와 당나라 시대의 훈고학과 경학, 송나라 시대의 성리학, 명나라 시대의 양명학, 청나라 시대의 고증학 등으 로 발전 또는 변천되었다이라고 말하였다.
344. 마오쩌둥
마오쩌둥(중국어 간체자: 毛泽东, 정체자: 毛澤東, 병음: Máo Zédōng 듣기 (도움말·정보), 모택동, 1893 년 12월 26일 ~ 1976년 9월 9일)은 중화인민공화국의 군인이다. 초대 중앙위원회 주석을 지냈다. 자(字)는 룬즈(潤之), 융즈(咏芝)이며, 호(號)는 쯔런(子任). 후난성 샹탄 출신. '마오쩌둥주의'를 창시한 사상가로도 족적을 남겼으며 시인, 서예가로도 이름이 있다.
초기 중국 공산당의 최고 지도자였으며 1945년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뒤인 중앙 제7차 전국대표대회 이후 로 장제스와 당시 중화민국 정부에 대항한 국공 내전에서 승리를 거두고 1949년 중국 대륙에 중화인민공화 국을 수립하였다. 1949년 중국 공산당 군사혁명위원회 위원장 겸직과 1949년에서 1950년까지 중국 공산 당 국가수반 권한대행과 1950년에서 1959년까지 초대 중국 공산당 국가원수를 거쳐 1945년에서 1976년까 지 초대 중국 공산당 제1대 중앙위원회 위원장으로 권력을 행사했다. 초대 중국 공산당 국가원수 재직 중 제 2차 5개년계획의 개시와 더불어 3면홍기 운동을 폈고 문화 대혁명을 일으켜 많은 사람들을 학살했고 자신 의 권력을 강화하였다. 1959년 중국 공산당 국가원수에서 물러난 뒤에는 후임 중국 공산당 제2대 국가원수 직위에 오른 류사오치와 갈등하다가 중국 공산당 부총리 린뱌오 등을 사주하여 1969년 류샤오치를 실각시 키고 그 후 1975년에서 1976년 사망 직전까지 중국 공산당 국가주석 권한대행을 지내는 등 막후에서 영향 력을 행사했다.
마오 쩌둥이 중국 현대사에 큰 영향을 미친 데에는 이견이 없으나, 오늘날까지도 그에 대한 평가는 아직도 논쟁이 분분하다. 일각에서는 장제스를 격파하고 중국 대륙에 공산주의 국가를 건설한 혁명가이자 전략가 로 평가하고 있지만, 대약진 운동 실패와 문화대혁명으로 약 4천 5백만 명의 인명 피해를 초래하였다. 대약 진 운동과 문화 대혁명에 이르기까지 계속된 급진적인 정책이 중국의 문화, 사회, 경제, 외교 관계에 입힌 물 적, 인적, 문화적 피해는 수치로 계산이 힘들 정도다. 1931년 이후 중국 공산당의 지도적 역할을 맡아 왔으 며, 1949년부터 1959년까지 중화인민공화국의 국가주석을 지냈다. 국가주석직에서 물러난 후에도 중국 공 산당 주석에 전임하며 사망할 때까지 실권을 행사했다.
345. 예이츠의 ‘재림’
" 다가오는 재림 "은 1919 년 아일랜드 시인 WB Yeats 가 1920 년 11 월 다이얼 에 처음 인쇄 한 후 1921 년 Michael Robartes와 Dancer 구절에 포함 된시입니다 . 이시는 묵시록 과 재림 에 관한 기독교 이미지를 사용하여 전후 유럽의 분위기 를 비 유적으로 묘사합니다. 현대시 의 주요 작품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현대 시 의 노턴 선집을 포함하여 여러 컬렉션으로 재 인쇄되었습니다.
나선모양으로 점점 큰 원을 그리며 돌고 또 돌다보니 매는 매부리의 소리를 듣지 못한다.
중심은 지탱되지 못하고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다. 무질서만이 세상에 풀어지고 피로 얼룩진 바닷물이 넘치고, 모든 곳에서 순결의 의식이 그 물에 빠진다. 갖아 선한 자들은 모든 신념을 잃고 가장 약한 자들은 격정에 차 있다. 분명 어떤 계시가 가까워졌다. 분명 재림이 가까워진 것이다. 재림! 입 밖으로 내기도 어려운 말 세계령에서 나온 한 거대한 형상이 나의 눈을 어지럽힌다. 저 사막 모래 속 어딘가에서 몸은 사진인데 얼 굴은 사람의 것을 한 형상이 태양처럼 명하고 비정하 눈길로 응시하며 자신의 느릿한 허벅지를 움직이고 있 다. 성난 사막 새들이 그림자가 주변을 빙빙 돌고 어둠이 다시 드러워진다. 그러나 이제 나는 안다. 바위처럼 잠들어 있던 이천 년이 흔들리는 요람 때문에 악몽이 시달렸음을 그리고 마침내 제때를 맞이한 어떤 거치 야 수가 세상에 태어나려 베들레헴을 향해 느리게 가고 있는가?
346. 살바도르 달리
살바도르 도밍고 펠리페 하신토 달리 이 도네메크(스페인어: Salvador Domingo Felipe Jacinto Dalí i Domènech, 1904년 5월 11일~1989년 1월 23일)은 스페인의 초현실주의 화가이자 판화가, 영화 제작가이 다. 그는 카탈루냐의 피게레스(Figueres)에서 출생하였는데, 그의 형 이름 또한 '살바도르'였다. 그가 태어나 기 9개월 전인 1903년 8월 1일 죽었기 때문에, 그의 아버지가 같은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의 아버지의 이름 또한 살바도르였는데 중산층 변호사였다.
마드리드의 미술 학교에서 공부하였다. 1928년 파리로 가서 초현실주의 화가와 작가들과 사귀고, 초현실주 의 운동에 참가했다. 그의 수법은 '환상적 사실주의'라고도 불린다. 또, 영화 <황금시대>를 제작한 외에 로트 레아몽의 시집 <말도로르의 노래>의 삽화를 그렸다.
뒤에 미국에 건너가 정통적 초현실주의를 떠난 후, 가극·발레의 의상 등 장식 예술 분야에서도 활약하였다. 또 디즈니와 협력하여 영화 제작에도 종사하였다. 귀국 후의 작품으로 <잉태한 성모>가 있다.[1] 제 2 차 세계 대전 후에는 로마 가톨릭교회에 귀의하고 그의 아내인 갈라(Gala Eluard Dalí)를 성모 마리아에 비유한 종 교화를 연작했다. 갈라는 달리의 뮤즈이자 통치자이자 매니저였다. 그는 또한 독일의 히틀러를 찬양해 다른 초현실주의자들의 비난을 받았다.
347. 팩토리얼
수학에서, 자연수의 계승 또는 팩토리얼(階乘, 문화어: 차례곱, 영어: factorial)은 그 수보다 작거나 같은 모든 양의 정수의 곱이다. n이 하나의 자연수일 때, 1에서 n까지의 모든 자연수의 곱을 n에 상대하여 이르는 말이 다. 기호는 을 쓰며 팩토리얼이라고 읽는다. 팩토리얼을 줄여서 팩이라고 읽기도 한다.
348. 코플런드의 애팔래치아의 봄
애팔래치아의 봄은 에런 코플런드의 발레음악이다. 1944년에 초연되었다. 13명의 실내악 오케스트라를 위 해 만들어졌으며, 이 곡을 통해 1945년 퓰리처 상을 받았다. 1800년대 펜실베이니아에 미국 개척민들이 새 로운 농가를 세운 후 즐기는 봄 축제를 묘사한다. 핵심 인물은 신혼 부부, 이웃, 부흥 운동의 설교자와 신도들이다.
349. 버트런드 러셀
제3대 러셀 백작 버트런드 아서 윌리엄 러셀(영어: Bertrand Arthur William Russell, 3rd Earl
Russell, OM, FRS, 1872년 5월 18일 ~ 1970년 2월 2일)은 영국의 수학자, 철학자, 수리논리학자, 역사가, 사 회 비평가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천재이자 지성인으로 여겨진다. 화이트헤드와 함께 《수학 원리》를 저술 하여 수리논리학의 성립에 크게 공헌하였으며, 이후 평화주의 운동과 저술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1950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350. 신도
신도 (神道, しんとう、しんどう[1] )는 일본의 종교로 유신도 (惟神道, かんながらのみち)라고도한다. 경전 의 가르침이나 개조가 없고, 신화, 가미, 자연 신앙과 애니미즘, · 조상 숭배가 혼합된 민족 종교이다.[2] 자연과 신을 하나로 보고 신과 인간을 잇는 도구와 방법이 제사이며, 그 제사를 지내는 곳이 신사이고 성역화되 었다. 메이지 유신부터 2차대전이 끝날때까지 있었던 국가신토는 그 이전까지의 신도와는 다르게 왜곡되었다.
351. 브라운 대 교육위원회
브라운 대 교육위원회 재판(Brown v. Board of Education, 347 U.S. 483, 1954년)은 미국 연방 대법원의 획 기적 판례다. 이 판례는 당시 남쪽 17주(states)에서 백인과 유색인종이 같은 공립학교에 다닐수 없게 하는 주(state)법을 불법이라고 판정했다. 브라운 대 교육위, 브라운 사건이라고도 불리는 이 판례로 "분리하되 평 등"이라는 인종차별 정책을 정당화 하게된 플레시 대 퍼거슨 (1896년)이 58년 만에 뒤집히게 된다.
352. 마술적 사실주의
마술적 사실주의(Magical Realism)는 하나의 문학 기법으로 현실 세계에 적용하기에는 인과 법칙에 맞지 않는 문학적 서사를 의미한다. 이 개념은 20세기 미하일 불가코프, 에른스트 윙거,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 케스 등의 많은 라틴 아메리카 작가들의 등장과 함께 유명해졌다.
마술적 사실주의라는 용어는 독일의 예술 평론가 프랑크 로(Frank Roh)가 1920년대 종래의 사실 표현을 뒤 엎는 화가들을 이르기 위해 처음 만들어냈다. 오늘날 마술적 사실주의라는 용어는 특히 라틴 아메리카 문학 에 대해 쓰이는데 이 뜻으로는 비평가 우슬라르 피에트리(Uslar Pietri)가 처음 사용했지만 노벨 문학상 수상 자 미겔 앙헬 아스투리아스가 자신의 소설들이 마술적 사실주의 양식을 사용한다고 정의한 후로부터 널리 쓰이게 되었다.
전통적인 허구적 사실주의와 마술적 사실주의를 구별짓기는 어렵다. 무엇보다도, 전통적인 픽션은 플롯이나 인물, 서술자가 완전히 사실적이지 않다. 그러나 마술적 사실주의의 이야기들은 리얼리티를 완전히 고정적 이지 않은 것으로 다루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아내의 죽음을 알리기 위해 피의 흐름이 멀리 있는 그녀의 남편에게까지 흘러갔다든지 하는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상황이 일어나고, 글 속의 인물들은 그러한 상황 을 대수롭지 않다는 듯 받아들이는 것이다.
주목할 만한 점은 마술적 사실주의가 억압적이고 권위주의적인 독재 사회에서 자주 나타나며 정치적으로 매 우 위험한 표현이 순화되어 나타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
물리 법칙을 따르는 - 적어도 따르는 척이라도 하는 - SF 류의 문학이나, 작품 내에 일관된 규칙을 갖고 있 는 판타지 문학과 달리, 마술적 사실주의는 예측 불허의 스토리로 구성되거나, 적어도 묘사하는 사회가 매우 특별하다.
353. 잭슨 폴락
폴 잭슨 폴록(영어: Paul Jackson Pollock, 1912년 1월 28일 ~ 1956년 8월 11일)은 미국의 화가로 추상표 현주의의 주요 예술가 중 한 명이다. 부인은 추상화가 리 크래스너다.
와이오밍주에서 태어나 로스앤젤레스와 뉴욕에서 공부하였다. 1930년대부터 표현주의에서 초현실주의로 선회했다. 1947년 마루바닥에 편 화포 위에 공업용 페인트를 떨어뜨리는 기법을 창안해 하루 아침에 유명해 졌다. 이것은 작가의 제작 행위를 직접 화포에 하는 기록이라고 하여 '액션 페인팅'이라 불렀다. 대표작으로 〈가을의 리듬〉이 있다.
1942년 그는 뉴욕의 맥밀런 화랑에서 열린 '미국·프랑스 청년화가 미술전'에 첫 출품을 하였다. 이듬해인 1943년에는 유명한 여성 수집가인 페기 구겐하임이 주최한 '금세기의 미술' 화랑에서 최초의 개인전을 가졌 고 그 개인전은 1950년 유럽에서도 개최하여 이목을 집중시켰다. 또 그 해에 열린 베네치아 비엔날레 전시 회에서는 아실 고키와 빌럼 데 쿠닝과 함께 미국을 대표하는 젊은 화가로 각광을 받았다. 그 후에 그는 액션 페인팅의 대표적인 화가로서 미국과 유럽에서 정력적인 활동을 계속하였으나 1956년 뉴욕 교외인 서퍽 군 의 스프링스에서 자동차 사고로 사망하였다.
354. 정규 분포 곡선
확률론과 통계학에서, 정규 분포(正規 分布, 영어: normal distribution) 또는 가우시안 분포(Gauß 分布, 영 어: Gaussian distribution)는 연속 확률 분포의 하나이다. 정규분포는 수집된 자료의 분포를 근사하는 데에 자주 사용되며, 이것은 중심극한정리에 의하여 독립적인 확률변수들의 평균은 정규분포에 가까워지는 성질 이 있기 때문이다.
정규분포는 2개의 매개 변수 평균 과 표준편차 에 대해 모양이 결정되고, 이때의 분포를 로 표기한다. 특히, 평균이 0이고 표준편차가 1인 정규분포 을 표준 정규 분포(standard normal distribution)라고 한다.
355. 클래식과 팝 음악의 다리 : 조지 거슈원과 레너드 번스타인
레너드 번스타인(영어: Leonard Bernstein, 1918년 8월 25일 ~ 1990년 10월 14일)은 미국의 지휘자, 작곡 가, 작가, 음악 교육자이자 피아니스트이다. 미국에서 태어나고 교육받은 지휘자 중 전 세계에 걸쳐 명성을 얻은 첫 지휘자인 레너드 번스타인은 뉴욕 필하모닉에서 장기간 음악 감독으로, 세계의 저명한 오케스트라 를 지휘하였고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캔디드, 원더풀 타운, 온 더 타운을 쓰기도 했다. 1954년에서 1989년 까지 청소년을 위한 콘서트 시리즈를 위시한 텔레비전 프로그램 다수에 출연한 첫 번째 고전음악 지휘자 로 고전 음악 대중화에 기여한 레너드 번스타인은 뛰어난 피아노 테크닉을 구사했고 다수한 교향곡과 다양 한 연주회용 음악을 남겼다.
조지 거슈윈(George Gershwin, 1898년 9월 26일 ~1937년 7월 11일)은 현대 음악이라 불리는 20세기 전 반에 있어서 미국적인 성격과 수법을 가장 잘 발휘시켰다고 평가 받는 작곡가이다. 그는 가난한 유대계의 러시아 이민 장사꾼의 아들로 미국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났다.
356.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루트비히 요제프 요한 비트겐슈타인(독일어: Ludwig Josef Johann Wittgenstein, 1889년 4월 26일 ~ 1951 년 4월 29일)은 오스트리아와 영국에서 활동한 철학자이며, 논리학, 수학 철학, 심리 철학, 언어 철학 분야 에 업적을 남겼다. 많은 사람들이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철학자로 손꼽는다.
비트겐슈타인은 논리 실증주의와 일상 언어 철학에 영향을 끼쳤고 분석 철학을 대표하는 인재로도 알려져 있다. 20세기 말 한 철학 포럼이 정리한 세기를 대표하는 철학에서도 비트겐슈타인의 《논리 철학 논고》와 《철학 탐구》는 상위 5위권에 모두 선정되었다.[4] 비트겐슈타인의 사상은 후일 인문학과 사회 과학의 여러 방면에 영향을 주었고 분석 철학자로서는 예외로 예술가들에게 전파되었다. 비트겐슈타인이라는 이름은 종 종 천재를 가리키는 낱말로 쓰인다.
비트겐슈타인의 사상은 《논리 철학 논고》로 대표되는 전기와 《철학 탐구》로 대표되는 후기로 나뉜다. 《논리 철학 논고》에 나타난 전기 사상이 명제에 사용된 낱말의 은유다운 관계를 분석하여 기존 철학에서 잘못된 개념 탓에 빚어진 논리에 상충하는 점을 지목하는 데 집중된 반면, 후기 사상은 언어-놀이에서 상호 변환되는 자연 언어가 논리에 부합한 구조로 정형화한 언어와는 다른 의미가 있다는 점을 역설하는 데 중심 이 놓여 있다. 비트겐슈타인은 “단어의 의미는 주어진 언어-놀이 안에서 그 단어들이 사용될 때 가장 잘 이 해된다”라고 주장하였는데 이것은 비트겐슈타인의 후기 사상을 대표하는 말이다.
357. 시크교
시크교(영어: Sikhism,펀자브어: ਿਸੱਖੀ)는 15세기 후부터 18세기 초에 걸쳐 인도의 펀자브 지방에서 발전한 종교이다. 시크라는 용어는 산스크리트어로 '교육' 또는 '학습'이라는 뜻의 시스야(sisya)에서 전례했다는 설과 '가르침'이라는 식사(siksa)에서 유래했다는 두 가지 설이 있다. 모든 사람 안에 자리하고 있는 하나뿐인 신 의 메시지, 모든 인류의 평등함과 하나됨 – 신의 창조물과 영원한 진리 –를 전파하기 위해 대륙과 대륙을 오간 구루 나낙에게서 부터 시작되었다. 구루 나낙은, 신을 보려면 ‘마음 속의 눈,’ 혹은 사람의 ‘가슴’으로 봐야한다고 강조했다. 5대 시크 구루인 구루 아르얀은 1708 년에 구루 근본 성전으로 거듭날 성서에 다른 종교 성인들의 말씀을 집어넣었다. 신자수는 2500만 명에 이르고, 주로 펀자브 지방에 있다. 전 인도의 총 리 만모한 싱이 시크교도이다.
358. 넬슨 만델라
넬슨 롤리랄라 만델라(영어: Nelson Rolihlahla Mandela, 1918년 7월 18일 ~ 2013년 12월 5일)는 남아프 리카 공화국에서 평등 선거 실시 후 뽑힌 세계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었다. 대통령으로 당선되기 전에 그 는, 아프리카 민족회의(ANC)의 지도자로서 반아파르트헤이트운동 즉, 남아공 옛 백인 정권의 인종차별에 맞선 투쟁을 지도했다. 1962년 8월 5일 반역죄로 체포되었고 1964년에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으나, 27년 만인 1990년 2월 11일에 출소했다. 1993년 데 클레르크 대통령과 함께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다. 1994
년 실시된 평등 선거에서 ANC는 62%를 득표하여 ANC의 지도자인 넬슨 만델라는 1994년 5월 27일 남 아프리카 공화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취임하였고 진실과 화해위원회(TRC)를 결성하여 용서와 화해 를 강조하는 과거사 청산을 실시했다. TRC는 성공회 주교인 데스몬드 투투 주교가 참여하였으며, 수많은 과거사 관련 자료들을 수집하여 조사하였다. 인종차별 시절 흑인들의 인종차별 반대투쟁을 화형, 총살등의 잔악한 방법으로 탄압한 국가폭력 가해자가 진심으로 죄를 고백하고 뉘우친다면 사면하였으며, 나중에는 경제적인 보상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또한 피해자 가족들의 요청에 따라 피해자 무덤에 비석을 세워줌으로 써, 아파르트헤이트 시절의 국가폭력 피해자들이 잊히는 일이 없도록 하였다. 저서로 뉴욕 타임스가 뽑은 20세기 최고의 책에 선정된《자유를 향한 긴 여정》이 있었다. 2013년 12월 5일 향년 95세를 일기로 타계 했다.
359. 그리스 항아리에 부치는 노래
너 아직도 겁탈당하지 않은 정숙의 신부여,
너 침묵과 느린 시간의 양자여,
우리들의 시보다 더 감미로이 꽃다운 이야기를 이처럼 표현할 수 있는 삼림의 역사가여:
무슨 가장자리 앞으로 꾸며진, 신들 혹은 인간들 혹은 둘 다의 전설이 네 모습에 떠도는가,
템페인가 혹은 아카디아의 골짜기인가?
이들은 무슨 사람들 혹은 신들인가? 무슨 처녀들이 수줍어하는가? 얼마나 미친 듯한 추격인가? 도망치려 얼마나 몸부림치는가?
무슨 피리며 북들인가? 얼마나 미칠 듯한 황홀인가? 오 아티카의 형체여! 아름다운 자태여!
―대리석 남자와 처녀들과
숲의 나뭇가지와 밟힌 잡초로 온 표면이 수놓인―; 말없는 형상이여, 너는 영원처럼
우리를 생각이 미칠 수 없게 괴롭히는구나. 차가운 목가여! 늙음이 이 세대를 황폐케 할 때
너는 우리의 고통과는 다른 고통의
한복판에서, 인간에게 친구로 남으리, 그리고 말하리, "아름다움은 진리이고, 진리는 아름다움.―이것이
너희들이 이 세상에서 아는 전부고, 알 필요가 있는 전부다.”
존 키츠(John Keats, 1795년 10월 31일~1821년 2월 23일)는 가장 나중에 태어난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이 다. 퍼시 비시 셸리, 조지 고든 바이런과 함께 18세기 영국 낭만주의 전성기의 3대 시인 중의 한 사람이다. 하지만 폐결핵으로 25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했다. 그의 시는 그의 일생 동안 비평가들에게 높게 평가받지 못했지만, 그의 평판에 대한 영향력은 점점커져서, 사후 많은 후대의 시인들에게 중대한 영향을 끼치게 되 었다. 그에게 영향을 받은 가장 대표적인 인물들로는 앨프리드 테니슨과 윌프레드 오언이 있다.
360. 팝아트
팝 아트(영어: pop art)는 1960년대 초엽에 뉴욕을 중심으로 출현한 미술의 한 장르이다. 릭턴스타인, 워 홀, 올덴버그 등이 그 대표적인 작가로 알려져 있다.[1]
1950년대 중반에 영국에서 그리고 1950년대 말 미국에서 등장한 예술 사조이며, 당시 주류를 이루던 추상 표현주의에 반작용 또는 확장으로 등장했다는 의견도 있다.
1950년대 미국과 영국에서는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가 최고치에 이르게 되었다. 이와 더불어 사람들이 자 연, 환경이 아니라 광고판, 대중매체와 친해지게 된 것에 착안해 추상주의에 식상함을 느낀 화가들이 TV나 잡지, 광고에 등장하는 이미지를 작품의 재료로 채택하였다.
팝 아트의 발단은 매스 미디어에 주목한 1950년 초의 리처드 해밀턴 등의 영국 작가였으나,[2] 미국의 팝 아 트는 도시의 정보문화가 만드는 대중적인 이미지를 대폭적으로 받아들여 미술을 대중적인 영역으로서 독 자적으로 확대해 갔다.[1] 뉴욕의 팝 아티스트들은 반예술을 지향하면서 신문의 만화, 상업 디자인, 영화의 스틸, 텔레비전 등 매스미디어의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주제로 삼았다.[2] 더욱이 1960년 프랑스의 비평가인 피에르 레스타니에 의하여 결집된 누보 레알리즘(신레알리즘)도 제2의 자연으로 화해 버린 도회적인 현실 에 대응한 파퓰러(popular) 아트를 추진하였다. 아상블라쥐(모아 합치기)와 정크 아트(廢品藝術)는 네오 다다이즘을 더한 이세 유파(流派)에 공통되는 기법이다.
361. 핵분열
핵분열(核分裂, nuclear fission, 문화어: 핵분렬)은 보통 우라늄, 플루토늄같이 질량수가 큰 원자핵이 중성 자와 충돌해 가벼운 원자핵 2개(핵분열 생성물)로 쪼개지는 핵반응의 한 유형이다. 1938년 독일 과학자 프 리츠 슈트라스만과 오토 한의 실험으로 확인되었다. 이 실험에서 에너지가 낮은 중성자(열중성자)를 우라 늄-235()에 충돌시키자 우라늄은 바륨과 크립톤으로 분열되며 그 과정에서 2~3개의 중성자와 함께 막대 한 양의 에너지가 방출되는 현상이 관측되었다.
일반적으로 핵분열 가능성은 물질의 특성 중 하나인 반응단면적(입자가 물질 속을 진행 시 화학 반응을 수 반하는 충돌이 일어나는 확률을 표적의 면적으로 나타낸 양)에 따라 결정되는데, 우라늄-233(), 우라늄- 235(), 플루토늄-239() 등이 핵분열 반응단면적 값이 커서 주로 핵분열 물질로 분류된다.
핵분열 물질이 핵분열을 통해 가벼운 원자핵들로 쪼개지는 방법은 40가지 이상으로, 주로 질량수 90~100 과 130~140에 속한 원자들에 집중된다. 이때 핵분열 전과 후에 에너지가 보존되지 않아, 막대한 양의 에너 지가 방출된다. 즉, 질량이 감소하며, 그 감소한 질량만큼의 에너지가 방출되는 것이다.
우라늄이 스트론튬과 제논으로 쪼개지는 것으로 표현하게 되는데, 이때 발생하는 에너지 Q가 바로 핵분열 반응 전후의 질량결손에서 전환된 것으로, 아 인슈타인의 질량-에너지 등가원리의 의한 식 로 계산할 수 있다. 다른 원자핵들로 쪼개지는 경우에도 대부 분 200MeV정도의 에너지를 방출하므로 핵분열 시 방출되는 에너지는 일반적으로 200MeV로 표현한다.
한편, 핵분열 시 평균 2MeV의 운동에너지를 가진 고속중성자 2~3개가 방출되는데, 이 고속중성자들은 주 변 핵분열물질에 대해 연속적으로 핵분열을 유발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을 '연쇄반응'이라고 한다.
원자력발전의 원리는 이러한 핵분열의 연쇄반응을 원자로 내부에서 지속되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우라늄 -235를 핵연료로 이용할 경우 우라늄의 핵분열 반응단면적은 충돌하는 중성자의 에너지가 낮을수록 커지 므로 핵분열 시 발생되는 고속중성자의 속도를 반드시 감소시켜 주어야 한다.
핵분열 생성물은 주로 질량수 90~100과 130~140일 경우에 집중적으로 생성되는데, 핵분열 생성물의 원 자핵은 아직 불안정한 상태이므로, 더 안정한 상태로 가기 위해 계속 방사성 붕괴가 이루어진다. 이러한 연 속적인 방사성 붕괴로 핵분열 생성물에서는 끊임없이 에너지가 방출되는데, 이를 '붕괴열'이라고 한다. 원자 로에서 사용하고 난 핵연료를 물속에 담가 냉각시키는 이유가 바로 이 붕괴열 때문이다.
362. 20세기 음악
20세기 음악은 음악 녹음 및 음악 형태와 스타일의 음악뿐만 아니라 극적인 혁신을 배포하는 첨단 기술의 갑 작스러운 출현에 의해 정의된다. 음악이 더 이상 콘서트, 오페라 하우스, 클럽, 국내 음악 제작에 국한되지 않 았기 때문에 음악 아티스트들이 빠르게 전세계적인 인정과 영향력을 확보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20세기 음악은 기존 음악의 틀에 벗어난 새로운 자유와 이전 기간의 음악의 규칙이나 금기에 도전, 새로운 음악 스타일과 음악 형태의 다양한 실험을 가져왔다. 뮤지션과 마니아와의 교류가 활발해졌고 듣고 더 광범 위하게 여행. 접근하기 어렵고 비싼 오페라와 달리 거대한 콘서트가 유행하였으며, 이러한 대중음악은 다양 한 음악 방송 등은 고품질의 음악 공연에 상류층이 아니더라도 더더욱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363. 도덕적 상대주의
도덕적 상대주의는 도덕적 절대주의와 비교하면 더 쉽게 이해됩니다. 절대주의는 도덕이 보편적인 원칙 (자 연 법칙, 양심)에 의존한다고 주장합니다. 기독교 절대주의자들은 하나님은 우리의 보편적인 도덕의 궁극적 인 근원이며, 그러므로 보편적인 도덕은 하나님처럼 변함이 없다고 믿습니다. 도덕적 상대주의는 도덕은 어 떤 절대 표준에 근거하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오히려 윤리적 “진리”는 상황, 문화, 사람의 감정 등과 같은 변수에 달려 있다고 주장합니다.
의심스러운 특징을 가지고 있는 도덕적 상대주의에 대해 몇 가지 반론을 말할 수 있습니다. 첫째, 상대주의를 지지하기 위해 사용된 많은 논점들이 처음에는 맞게 들릴 수는 있지만, 모두가 따라야만 하는 “올바른” 도덕 적 체계를 제안하기 때문에, 그 자체로 논리적인 모순이 있게 됩니다. 즉, 그 체계 자체가 절대주의인 셈입니 다. 둘째, 심지어 소위 상대주의자들도 대부분의 경우 상대주의를 거부합니다. 그들은 어떤 살인자 또는 강간 범이 자기 자신의 기준을 위반하지 않는 한 무죄라고 주장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상대주의자들은 다른 문화들 사이에 있는 다른 가치들을 볼 때, 도덕도 사람들에 따라 다르다고 주장할 것입 니다. 그러나 이 주장은 개인의 행동 (그들이 행하는 일)과 절대 표준 (그들이 행해야 하는지의 여부) 사이에 서 혼동을 빚습니다. 문화가 옳고 그름을 결정한다면, 우리가 나치를 어떻게 정죄할 수 있습니까? 결국 그들 은 단지 자신들이 속한 문화의 도덕을 따랐던 것이 아닙니까? 오직 살인이 보편적으로 잘못이라고 여겨져야 만 나치가 틀린 것이 됩니다. 그들이 "그들 나름대로의 도덕성"을 가졌다는 사실이 그러한 보편적인 잘못에 대한 정죄를 취소할 수 없습니다. 더우기, 많은 사람들이 다른 도덕 관행을 가지고 있지만, 그들은 여전히 공 통적인 도덕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낙태 지지자와 반대자는 모두 살인이 잘못이라는 점에 대해 동 의하지만, 낙태가 살인인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다릅니다. 따라서 여기에서도 절대적인 보편적 도덕이 존재한 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364. 조로 아스터교
조로아스터교(Zoroastrianism), 마즈다교(Mazdaism) 혹은 배화교(拜火敎)가 창시된 시기는 기원전 1800 년에서 기원전 640년경으로 다양하다. 이 종교는 중동의 박트리아 지방에서 자라수슈트라가 세웠다. 차라 투스트라(Zarathustra)가 그리스어에서 변한 게 조로아스터다. 기원전 600년경 페르시아의 왕 다리우스 1 세 때 오늘날 이란 전역에 퍼졌으며, 기원전 5세기 이미 그리스 지방까지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조로아스 터교는 창조신 아후라 마즈다(Ahura Masda)를 중심으로 선과 악 이분법으로 세계를 구분한 게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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